brunch

"되도록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불편할 때 쓰는 방식

by 배즐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영화 「딸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봤다. 오미애 배우님이 주연인 영화로, 레즈비언 딸, 요양보호사 어머니, 요양원 내 어머니께서 맡은 치매가 온 어르신이 주 인물로 나오는 영화다. 퀴어 맥락이 들어가 있으며, 성소수자를 이해할 수 없는 보수적인 어머니가 딸의 동성애인과 갈등하는 장면도 나온다.


오미애 배우님의 연기에 감탄하며 보다가... 한 장면에서 보수적인 어머니가 함께 한 집에 살고 있는 딸의 동성 애인에게 "(집안에서) 되도록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동성애자로서 불편하다고 그렇게 발언해대는 것에 열받고 짜증났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것 같아 무릎을 탁 쳤다. (다들 너무 연기를 잘하셔서 더 몰입했다)


종종 한국 사회는 갈등 이슈, 사회적 이슈를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아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우리나라가 토론 문화권이기보단 서로 맞추고 존중해주려는 경향이 강한 사회라 그런지, 불편한 이슈가 나오면 토론하고 대안을 제안해보려는 노력보다는 기피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물론 나 또한 그런 경향이 있다.)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을 쐬며 기후위기를 생각하고 싶지 않고,

여성 인권을 보장해야한다는 말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페미니즘 등 갈등적 이슈는 쉬쉬하고 싶고,

차별에는 반대한다고 하지만 성소수자는 주변에 없었으면 좋겠고,

장애인 인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는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이외에도 이주노동자, 난민, 사회적 참사 이슈 등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소재가 된다.


이는 나 또한 어느 정도 마찬가지이다. 일상 속에서 이미 회사에서 일 하느랴, 이것저것 해야할 일들을 하느랴 에너지를 빼앗긴다. 쉴 때 재미있고 긍정적인 글/영상을 접하고 싶지, 갈등적 요소를 접하며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다.


하지만 포용적인 사회가 되고, 모두가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마주해야한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기후위기는 바로 눈앞에 닥친 문제이며, 여성 인권, 성소수자 인권, 장애인 인권 등 사회적 소수자 인권도 눈앞에 닥친 문제이다. 우리는 이 이슈를 마주해야 한다. 사람은 혼자만 살 수 없다. 내가 있기에 너가 있고, 너가 있기에 내가 있다. 우리는 또한 언젠가 사회적 소수자가 될 수 있도 있고, 한국 사회는 이미 지나치게 서열화되어 있어 포용적 사회가 절실하다.


되도록 마주치지 않고 싶어도,

되도록 마주해야 하실 것 같아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원래 결혼식이 이렇게 애틋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