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다_켄타
얼마 전, 교보문고를 갔다. 에세이 코너에서 책들을 살펴보던 중, 표지에 남성의 얼굴이 감각적으로 있는 책이 있었다. 제목은 “천 원뿐이라도 재밌는 인생”, 부제는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K-POP 아이돌이 된 이야기”였다. 저자는 “타카다 켄타”. 연예계•아이돌에 관심이 적어서 그런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2023년에 도쿄 여행 후 평소 일본 콘텐츠를 즐기고 있던 터였다. (그전까지는 한국 근현대사 등을 공부하며 후안무치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반일민족주의•식민지민족주의를 철저히 쌓아왔었으나 여행 후 폐쇄적인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어쩌다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케이팝 아이돌이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심지어 노재팬 운동 때 한국에 계셨던 거 같았다..) 교보문고 독서 자리에 앉아 홀린 듯 타카다 켄타님의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켄타님은 책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풀어주셨다. 군마 현 출신이셨고, 부모님께서 이혼하셔서 어머니와 누나와 자랐고, 어릴 적에 틴탑의 리키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집이 가난한 건 아니었으나 노래와 춤을 하기에는 가정에서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배우기 위해 고등학생 때부터 도쿄를 오가며 케이팝 언더커버 활동을 했고, 대학도 진학하지 않고 바로 도쿄의 지하아이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 서울에 왔고,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하며 우여곡절을 겪었고, 어느 소규모 소속사에 나름 정착하며 활동했다고 한다. 이후 프로듀스 101에 참가했고(??!) 24등을 했다고 한다(??!). 이후 코로나 기간 때 활동이 어려워서 소속사와 갈등을 빚다가 소속사가 켄타님을 고소했고 최근에 법원은 3억 원(??)을 배상하라 판결했다도 한다(?????). 통장이 정지되어서 친구에게 돈을 빌렸고 천 원뿐이라도 인생이 재밌다며 에세이는 마무리되었다.
뭐야 이런 사건이 있었어??? 프로듀스 101에 나왔었다고???? 나는 당장 타카다 켄타가 누구인지부터 검색했다. 1995년 1월생이었다. 나와 같은 95년생이었다(만 한국식으로 치면 켄타님이 빠른년생이므로 형님..). 나는 2017년에 군대에 있었다. 군대에서 프로듀스 101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난 잘 보지 않았다. (보지 않은 이유는 밑에 말할 예정이다) 그러나 강다니엘이 굉장히 귀엽고 멋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당시 23살에 강다니엘 같은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유튜브에서 타카다 켄타님이 나온 영상들을 봤다. 되게 붙임성 좋은 강아지상 ENFJ 느낌이었다. 춤을 진짜 잘 춰서 한 편의 행위예술 같았다. 동시에 173cm 켄타님이 커다란 한국인들의 거대한 춤사위 사이에서 춤추는 모습이 좀 아련해보이기도 했다.
타카다 켄타님이 너무 대단해보였다. 가정의 경제적 지원이 부족해도 춤과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걸 극복했고, 심지어 한국에 와서 언어장벽까지 극복했다. 문화차이도 심했으나 극복했다. 한국인들 벌떼처럼 나오는 조작방송 프로듀스101에서 24위까지 했다. 소속사 상대로 소송까지 하고 있다. 일본인이 에세이 책까지 냈다.
나와 너무 대조되어보였다. 나는 10대 때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공부만 했고, 20대 때는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경제적 지원을 박으며 대학 공부와 대외활동만 했다. 대학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지는 않았던 편이었으나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응원 및 지지를 받으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편이었다. 가끔 나의 현실이 녹록지 않을 때 어리석게도 속으로 가정 탓, 사회 탓을 했다. 타카다 켄타님의 책과 영상들을 섭렵하며 스스로 반성했고, 그의 미래의 활동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프로듀스101
그리고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갑자기 7~8년 전 프로듀스 101 영상들을 추천해줬다. 홀린 듯 “Never" 영상을 봤다. 가수들이 한 편의 행위예술을 하고 있었다. 안무도 너무 완벽했고 노래도 너무 좋았고,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고 나는 왜 이걸 이제야 보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안무도 노래도 너무 좋아서 수십번 반복재생하며 보았다.
“Never", "나야나”, “열어줘” 등 영상들을 보며 가수들의 열정들이 전해져서 대박이라고 느꼈다. 안무도 너무 좋고 노래도 너무 좋았다. 내가 왜 2017년에 이걸 일부러 안 봤고, 이제야 보게 되었는지 너무나도 의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 내가 경쟁을 정말 싫어했어서 프로듀스 101을 안봤었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경쟁
한국은 무한경쟁사회다. 학벌 계급사회이고, 외모도 경쟁력으로 칭송하며 외모지상주의가 다른 국가보다 심하고 면전에 외모 지적이 실례가 아니기도 하다.
내가 23살이고 군인일 당시, 나는 학벌 무한경쟁사회에서 갓 탈출한 20대 초반이었다. 경쟁에 질렸었다. 그래서 군대에서 사람들이 프로듀스101(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만들었을 때 모두 포람)을 보는 모습이 끔찍하다고 느꼈다. 경쟁을 통해 승자가 결정되고, 승자를 축하하고 환호하는 이 모든 과정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지금 프로듀스101을 한다면, 나는 23살 때와 다르게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겨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쟁체제 속에서 승자만을 바라보고 패자의 활동 또한 응원하는 사회적 분위기 및 사회적 제도가 존재해야한다고 항상 비판하며 볼 것이다.
2016~2018년 당시 프로듀스101에서 탈락했던 연예인들은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나는 연예인•아이돌에 관심이 없던 편이라 잘 모른다. 그리고 당시 우승해서 결성되었던 그룹 -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도 해체 후 멤버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모른다. 그나마 신문•뉴스에 가끔 뜨는 것처럼 강다니엘은 공황장애가 왔었고, 장원영은 탈덕수용소라는 사이버 렉카 유튜버에게 고소했다는 소식 등만 알고 있다. (죄다 안좋은 소식들이다)
나는 한국사회 속 경쟁시스템의 수혜를 받으며 살고 있다. 집•회사 근처 음식점•카페는 무한경쟁에 살아남을 정도로 음식•서비스가 좋은 편이다. 내가 나온 대학교는 스카이는 아니지만 서울 주요 대학교 중 하나로 어디를 가든 인정을 받는다. 패션•외모 또한 관련 기업들의 경쟁력있는 상품을 즐기며 가꾸고 다닌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경쟁사회는 무조건적으로 패자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폐업한 자영업자•기업, 저학력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자들은 자존감이 깎일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은 소수이고 다수는 패배자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계급적이고 육체노동자•중소기업 노동자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출생률은 1 미만의 지속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프로듀스101은 이런 한국의 줄세우기 문화, 경쟁사회의 시스템이 집약적으로 발현된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프로그램으로 연습생들은 실력이 발전했고, 청중들은 행복했다. 영상들을 7~8년 후에 본 나 또한 한 폭의 행위예술들을 보아 행복했고 즐거웠다.
하지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인간적으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시스템 형성도 필요하다. ”탈락해도 망한 게 아니야“ 말할 수 있는 분위기, 나이가 들어서도 진로가 맞지 않아서 직업을 바꾼다고 해도 존중해 줄 수 있는 분위기,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 향상이 필요하더라도 숨 막히게 살게 하지 않고 즐기며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타카다 켄타님의 에세이를 읽고 개인적 일취월장을 한 그의 모습에 대한 대단함을 느꼈고 동시에 과거 나 자신, 경쟁사회에 대한 비판을 생각했다. 타카다 켄타님의 활동을 응원하고, 우리나라 사회가 승자와 패자로 나뉘지 않고 모두가 포용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발전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이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타카다 켄타, 천 원뿐이라도 재밌는 인생 -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K-POP 아이돌이 된 이야기, 비밀신서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