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페이스북 피드에 "남성만의 병역의무제에 관한 남성들의 마음" 연구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았다. 이 모집 공고를 보며, 나의 군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2015년 상근예비역을 포기하고 대학생활을 즐겼던 기억, 17년 공군에 입대했던 기억, 18년 공군 인권모니터단을 했던 기억, 19년 전역했던 기억, 17-19년 군생활을 하며 주변에 무기력에 쩔어 살던 병사들에 대한 기억 등.
이 연구를 올리신 학자님의 글들을 보니, 페미니스트 학자 분께서 20대 남성, 징병제, 안티페미, 젠더갈등 등에 대해 연구하고자 올리신 글 같았다. 왠지 내가 군부대에서 고민했던 이야기들을 말씀드리면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젠더갈등을 푸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 자대에서 병사 인권에 대해 고찰해본 바 있다. 그리고 공군 커뮤니티 휴0000 토론방에 고찰한 내용들을 올리고, 많은 내용들을 공론화 한 바 있다. 나는 나의 글들의 유명세를 몰랐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글은 건너건너 후일에 입대한 내 지인들까지 알곤 했다. 혹여나 대외활동 하다가 만난 공군 근기수 전역자도 알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옛 추억이 떠올라서 그 당시 쓴 글들 중 기억나는 주제들을 옮겨놓아보고 젠더갈등 관련 짧은 생각을 옮겨 보고자 한다. 다음은 내가 공군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들의 요약들.
1. 병사들의 영내거주의무는 불가피할까?
2018년, 상황실에서 기동타격조로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편찬한 책 '불편하면 따져봐', '불편해도 괜찮아'를 읽고 있었다. 인권위에서 편찬한 이 책들은 장애인 인권, 동성애자 인권, 범죄자 인권 등을 다루고 있었다.
범죄자 인권 파트를 읽을 때였다. 북유럽 등 인권 선진국에서는 범죄자들을 감옥에 가두어 '자유권을 제약'하는 것이 일종의 형벌로 여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유권의 제약'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볼 수 없고, '자유권의 제약'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없고, 취미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읽다가 문득... '음..? 내 얘기 아닌가?'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병사들 또한 '자유권 제약'을 경험하고 있었다. 간부들이야 외부에 숙소 있고 퇴근 후 마음대로 외부 음식 먹으러 나가고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퇴근 이후에도 군대 내부에 (일종의) '유폐'된 형식이었다. PX(혹은 보라매마트)에서 팔지 않는 삼각김밥, 내가 좋아하는 아귀찜 등 나의 기호식품을 먹기 위해서는 휴가를 나가야했다. 휴가는 짧으면 한 달, 길게는 세 달을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군인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국방부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휴전국가이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른 징병제 국가들도 우리나라와 같은지 궁금했다.
싸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 군부대 내 컴퓨터들이 있는 공간)에 가서 열심히 자료조사를 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경우, 전투 요원들을 제외하고 비전투 요원들은 대체로 일주일에 한두번씩 휴가를 보내주고 있었고, 전투 요원들은 교대로 번갈아가며 외출 및 휴가 기회를 주고 있었다. 한국도 이래야하지 않나 생각들었다.
다른 병사님들의 견해가 궁금해서 위 내용들을 담아 '병사들의 영내거주의무는 불가피한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공감해서 좋았다. 하지만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했다.
전역 이후, 바로 국민신문고를 들어가 용산 국방부 본부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처리를 위해 어떤 소령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통화를 하는데... 군복무 당시에는 영관급 분들께서 병사들에게 항상 당연히 반말을 하셨는데, 전역하고 나서 민원처리를 위해 소령님이 나에게 "000선생님"이라고 존칭을 쓰셔서 너무 놀랐다. 어쨌든 나도 존칭하며 영내거주의무가 불가피한지 여쭈어보았으나, 특유의 군인 꼰대 느낌으로 나에게 "그러면 뭐 대안이 있나요?"라고 틱틱거리며 대답했다. 병사들에게 가해지는 일종의 인권침해는 모두 '휴전국가', '분단국가'의 이유로 다 사그러들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나 또한 할말이 없어 더 이상 이야기 나누지 않고 마무리했다.
2. 병사들은 1인 1실을 사용할 수 없을까?
우리 사회는 고등학교 기숙사도 그렇고, 4인 1실, 6인 1실을 당연히 여긴다. 1인 1실은 특별한 귀빈대우라고 생각한다. '효율', '예산'의 논리로 이렇게 되어버린다.
병사들의 1인 1실을 생각했던 이유는, 휴가 때 간호사인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환자 분들을 이야기하다가, 어르신들의 전립선암, 전립선염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은 2주일에 한번 정도 성생활을 해주셔야해. 안그러면 전립선암 혹은 전립선염이 걸릴 확률이 있어지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 군인들은 휴가를 한달~세달에 한번 나온다. 자위든 섹스든 성생활을 하기 위해 한달~세달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생활관에서 아무도 없을 때, 혹은 화장실에서 홀로 성욕구를 풀 수 있다. 하지만 눈치보이고, 별로 인간답고 존엄한 성생활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성생활을 즐기고 싶겠는가. 엄마에게 "우리 군인들은 어떡해?"라고 물어보니, "에이, 니네는 젊어서 운동만 해도 괜찮을껄?"이라고 답했다.
그래도 나는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네이버와 구글에 전립선, 성생활, 섹스 등 다양한 키워드로 검색해보았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래서 구글에 영어로 전립선(prostate), 성생활(sex(섹스), masturbation(자위))을 검색해보았다. 영어로도 자료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어떤 저널의 글을 보게 되었다. 보니까 "성생활을 할수록 전립선 질환이 줄어든다"라는 것은 검증된 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립선 질환이 없는 사람들 중에는 성생활이 활발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는 많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또 공군 커뮤니티 토론방에 들어가 '병사들의 성생활 할 권리'를 말하며 '이래서 서양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사생활을 중요시하며 1인 1실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공론화를 펼쳤다. (개인의 사생활조차 없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했다. 내 글에 공감했다는 점에 즐겁긴 했는데 동시에 대안이 없다는 점에 슬펐다.
3. 병사들의 합리적인 봉급은 얼마일까?
내가 군복무 하던 당시, 군인 월급은 30~50만원이었다. 그 전에는 5~10만원 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군 월급을 올려주었다. 군 간부들 중 일부는 "그 돈으로 전투기 하나 더 사는게 낫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득, 군인 병사 월급을 어떻게 산정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 싸지방에 가서 열심히 문헌조사를 해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공무원 보수규정'이라는 대통령령을 발견했다. 공무원 보수규정은 국무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군 간부, 병사, 공무원들의 봉급을 정해놓은 대통령령이었다. 누군가의 봉급을 정하는 대통령령이라면, 봉급을 산정하는 기준 및 과정 또한 존재할 것 같아서 유심히 해당 대통령령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말은 즉슨, 군인 월급은 '인사혁신처장이 조사하여 합리적이라 생각하여 책정'한 봉급이라 생각들었다. 이게 어떻게 '합리적'이라고 결정한 것인지 당최 나는 이해가 가지않았다. 이게 '합리적'이라고 결정한 회의록, 의사결정과정, 근거들이 궁금했다. 참고한 '민간의 임금', '표준생계비'는 무엇이고 군인 월급에는 이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휴가 나가자마자 바로 인사혁신처에 민원을 넣었다.
2018년 5월 8일에 위 내용의 민원을 넣자, 2018년 6월 1일에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병사의 봉급 인상에 대해서는 우선 담당부처인 국방부에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안내드리오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인사혁신처가 자료조사해서 합리적으로 책정하는 것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음 휴가 나가자마자 바로 인사혁신처에 다시 민원을 넣었다.
2018년 8월 7일에 인사혁신처 담당임을 명시적으로 말하고 정리하는 민원을 넣었고, 8월 27일에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1. 안녕하십니까 ? 귀하께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질의하신 민원 (1AA-1808-071688) 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 2. 귀하의 민원내용은 " 병사 봉급 책정 " 에 관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 3. 귀하의 질의사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 첫째 ,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 이행에 따른 임금은 자율의사에 따른 계약을 전제로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구하는 임금과는 성격을 달리합니다 . 이를 바탕으로 병영생활을 전제로 하는 병사의 봉급은 병영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기준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 기존에 안내된 바와 같이 관련부처인 국방부와 재정부처인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결정됨을 알려드립니다 . 귀하께서 이미 언급하신 바와 같이 기존에 최선을 다해 답변을 회신한 바 있으며 , 상기와 같은 유사한 답변을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둘째 , 귀하의 민원은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제 23 조제 1 항에 의거 민원인이 동일한 내용으로 3 회이상 반복하여 제출한 경우에는 2 회이상 그 처리결과를 통지하고 , 그 후에 접수되는 민원에 대하여 종결할 수 있다는 근거에 의거 종결처리 될 수 있음을 고지 드립니다 . 4. 답변 내용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경우 인사혁신처 성과급여과 김민영 주무관 (☏044-201-8396) 에게 연락주시면 친절히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답변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속시원하게 말해주지 못할 망정 3회 이상 반복하여 제출하면 더이상 답이 없다니. 군인 병사 월급이 '합리적'이라고 결정되는 과정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인가? 비록 뉴스에서 보면 그것은 대통령이나 정치인 등 정치결정과정에 결정되는 것 같으나, 그래도 '합리적'이라 판단한 근거가 있어야할 것 아닌가. 나는 악성민원인이 되기를 결심했다.
다음 휴가에는 저 답변 주신 주무관에게 전화를 했다. 담당 주무관은 처음에는 성실히 말해주다가 푹푹 한숨을 쉬었다. 주무관님은 "인사혁신처, 기획재정부, 국방부가 논의하고 협의해서 결정하는 사항입니다"라고 말했고, 이에 나는 "그럼 논의한 과정, 근거들은 어디있나요?"라고 여쭈니, 주무관님은 "그런거 없어요"라고 답했다.
무언가 바쁜 사람 계속 붙잡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이 주무관님이 원흉의 원인도 아닌 것 또한 알기 때문에 미안하기도 했다. 민원 두번이나 받아주고 전화까지 20분 정도 받아주었으니 그만 괴롭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놓아드렸다. 하지만 동시에 '병사들의 인권이란 없다'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군대 문화, 근거조차 없이 이루어지는 군인 월급 등을 바라보며 병사들을 유린한다는 생각, 국가에 대한 빡침이 올라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이 글도 공군 커뮤니티 휴머000에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글에 대한 공감이 많아서 기분은 좋았으나 또다시 대안이 없기에 씁쓸했다.
최근에 젠더갈등이 핫하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살고 있었는데... 무척 이슈화된다.
나는 젠더갈등의 주요 변수 중 큰 변수는 이 군대 문제라 생각한다.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 아래에 '병사에의 폭력'이 너무나 당연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서 이 폭력의 과정을 버텨 살아남았다는 것에 '군필'이라는 타이틀을 주고, 미필에 비해 '사회성 좋고 힘도 쓸 수 있고 윗사람 말 잘 듣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및 일종의 지위적 재화를 부여하는 것 같다.
한국 사람 중 절반은 이런 폭력의 경험에 의무적으로 노출된다. 그러다보니 여성운동 진영이 사회 내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있으면, '여자는 군대도 안다녀오면서'라며 욕을 하기도 한다. 이는 '분단국가-휴전국가에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보았으면서, 폭력의 경험에 노출되지 않아보았으면서 권리를 요구한다'라는 의미를 부분적으로 담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나는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 편인데, 건너들어보면 여성 커뮤니티에서 '군무새' '군캉스'라는 조롱적인 어조도 존재한다고 한다. 나는 '그냥 별 말 많네'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들은 상처를 내면화하고 있었다. 성평등 교육세대에 있어 '여자는 군대도 안다녀오면서'라는 생각과 함께, 남성 또한 군대에서는 위에 내가 쓴 글처럼 일종의 인권유린을 당하는 상황에서 소수자성(?)이 발현되므로 이런 조롱적인 어조가 심각하게 내면화되고 젠더갈등이 증폭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정한울 박사님의 책 '20대 남자'를 보고도 너무 충격받아서 홍성수 교수님의 책 '말이 칼이 될 때' 또한 읽어보았다. 홍성수 교수님은 미러링이 '불쾌감'만 자아낼 뿐, '상처를 내면화'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적어도 군대만큼은 '상처를 내면화'하는 것 같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위 인권유린(?) 이야기들을 겪는 가운데 무기력한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 가운데 가끔씩 이루어지는 군 관련 미러링은 '상처를 내면화'하고 젠더갈등이 폭발하고 남녀가 갈라지는 데 정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조선 유교 500년, 20세기 남성 중심 사회를 거치며 여성 또한 이보다 더 한 비하발언들이 너무나 많이 이루어져왔고, (개선되어 왔으나) 현재도 자주보이며, 이 점들도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미러링과 젠더전쟁(?) 과정 속에서 전문가들은 '남성들의 백래쉬'라는 말만 하는데, 내가 볼 땐 적어도 군 이야기만큼은... 좀 아닌 것 같다. 소수자성(?)이 존재하고 심각하게 내면화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젠더갈등에 있어서 군대만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다들 군대 내 병사의 인권 상황에 대해 많이들 모르고 있는 것 같고, 남성도 군대에서 일종의 소수자성이 존재하지 않나 생각나서 써본 글.
책 '20대 남자'에 따르면, 안티페미가 이렇게까지 불거지는 현상은 한국에서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사회에서도 이렇게 특정 세대에 젠더 이슈가 타게팅되어 불거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책 20대 남자, p.235). 미국이나 유럽 등 여성인권운동이 활발했던 국가와 한국이랑 청년세대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점이 바로 징병제이지 않을까. 내가 볼 때 학자 분들께서 백인-이성애자-비장애인의 권력을 연구하는 것도 연구하는 것이지만, 유럽에서 징병제가 이루어지던 시기[냉전시기~21세기 초] 당시 여성인권운동이 일어날 때 청년 남성들의 반응을 살펴보아야 하지 않나 생각까지 들었다. 나또한 나중에 살펴보려고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이렇게 병사 인권을 당연히 존중하지 않는 군간부님들과 국방부가 문제덩어리라는 생각이 들고, 좀 더 근원적으로는 한국전쟁의 유산, 분단국가-휴전국가의 유산, 냉전 이데올로기 비극의 유산이 이렇게 젠더갈등으로 치닫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결론은 비극같다... 주변의 좋은 친구들조차 가끔씩 "여자는 군대도 안다녀오면서..."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정말 깜짝 깜짝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