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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Oct 09. 2021

테세우스의 배

논술고사 현장을 보며

  지난 2018년, 군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때 문득 테세우스의 배 설화가 떠올랐다. 테세우스의 배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아테네의 젊은 사람들이 목조 배의 낡은 널빤지 부분을 새 널빤지로 교체한다. 한두개 교체하고, 한두개 더 교체하고, 그렇게 계속 교체하며 배를 쓰다보면, '과연 배는 기존의 배와 같은 배일까?'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고 한다.


  이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바로 내가 군부대에서 느끼는 이야기였다. 먼저 들어왔던 병사들은 한두달마다 계속 전역하고, 전역한 사람의 TO로 계속 신병들이 들어온다. 비단 병사들 이야기 뿐만이 아니다. 부사관 및 장교들도 3~4년마다 보직이동을 한다. 기존에 계시던 간부님은 이동하시고, 새로운 간부가 들어오신다. 내가 속한 부대에서도 그렇게 사람들이 교체되었고, 또 교체되니, '내가 있는 이 부대는 3~4년 전과 동일한 부대인가?'라는 의문에 봉착했다. 동일한 부대이면서도 다른 부대인 것으로 보였다.


  오늘 학교 교정을 산책하러 가는데, 보니까 오늘이 우리학교 논술고사 날이었다. 군전역 후 복학하고 나서 19년 10월의 논술고사, 20년 10월의 논술고사 현장을 보았는데.. 또 21년 10월의 논술고사 현장을 보니.. 개인적으로 좀 끔찍했다. 03년생들이 대학에 오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학교 교정을 걷는데 논술 끝나고 나오는 고3 학생들의 물결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을 체감했다. 고3 학생들의 물결은 "얼른 졸업하셔야죠!"라고 말을 건네오는 기분이었다. 나이의 무게에 서러움을 느끼며 도망치듯 갈 길을 갔다.


  오늘 논술고사 행렬을 보면서도, 테세우스의 배가 떠올랐다. 15학번으로 우리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이제 마지막 학기가 되어 나갈 때가 되었다. 나처럼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약 4~7년 동안 대학교의 구성원이 되고, 학사 과정을 마치면 졸업자가 되어 대학교를 떠난다. 우리 학교 교직원 분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공무원이신 교직원 분들께서는 n년마다 보직이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보였고, 공무원이 아니신 교직원 분들 중 오래계시는 분들은 10년 정도 계시는 것 같았다. 이렇게 교직원 분들도 10년 이내에 계속 대체되고 있었다.


  길게 보면 교수님들도 마찬가지이시다. 박사 따고 빠르게 교수로 부임했다고 가정해도 35살 정도이고, 길게 잡아도 30년 이내에 정년퇴직하신다.


  이렇게 보면, 10년 전•20년 전•30년 전 우리학교는 현재 우리학교랑 같은 학교일까? 동일한 학교일까? 동일한 학교이지만 동시에 다른 학교로 보인다.


  군대에서 생각했던 것을 학교로 확대시켜보니, 그냥 세상이 테세우스의 배 같았다. 학교에서 사람들이 이직으로든 정년으로든 대체되듯이, 회사들에서도 사람들은 대체된다. 공직사회에서도 사람들은 대체된다. 어느 조직이나 사람들은 대체된다. 어느 조직이든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어도 20년 전 조직과 같은 동일한 조직일까?


  또한 조직을 넘어 사회•국가•역사도 다 테세우스의 배 같았다. 그냥 나도 이번 인생 7~80년 살다가 가는 하나의 널빤지 같다. 나는 현재 한국 사회에 살고 있고 5천만 국민 중 한명으로 존재한다. 내가 자녀를 낳는다면 나를 대체할 널빤지들을 만드는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한국과 10년 전 한국은 동일한 한국일까 아니면 다른 한국일까? 동일한 것이라는 개념은 무엇일까? 세상에 동일한 것은 존재하는 걸까?


  논술고사 현장을 보며 인생무상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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