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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Sep 06. 2021

자아실현과 방황에 대하여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바탕으로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이 쓴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현대 사회 속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중세를 벗어난 이후 우리는 개인과 자유를 발견하였다. 개인에게 족쇄를 채우던 기독교 가치관은 그 의미를 상실했고, 개인에게는 자유가 주어졌다. 하지만 기독교 가치관이라는 맹목적인 가치관의 부재로 만들어진 이 자유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독교적 의무가 없는 상황 속에서, 개인은 종종 자유를 무겁게 느낀다.


  저자에 따르면 개인이 이 불안함,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부담스러운 자유로부터 벗어나, 맹목적으로 믿을 하나의 권위를 찾는 것, 두번째는 개인이 자아실현을 통해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내에서 정치적-경제적 혼란과 함께 독일 국민들이 부담스러운 자유를 벗어던지고 '나치', '히틀러'라는 권위에 맹목적으로 자신을 내던졌다고 분석했다.



  이제 이 분석을 한국 사회에 적용시켜보자. 현재 5060세대는 및 그 이상의 세대는 유교 및 권위가 지배적인 사회에 살았다. 한국전쟁(이승만 정권), 산업화 시대(박정희, 전두환 정권)를 겪고, 유년시절 그 시기에 사회화를 이루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인권', '개인', '개인주의'라는 가치가 무척 적었다. 가족을 위한 희생, 장남/장녀의 형제를 위한 희생, 부모를 위한 희생 등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를 살았다. 유교 및 가족의 권위라는 맹목적 가치관을 갖고 살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87년 민주화를 이룩한 뒤, 민주주의 사회로 변모한다. 개인은 유교나 전통적-맹목적 가치관으로부터 점점 해방된다. '장남으로서의 의무', '며느리로서의 의무', '무비판적-맹목적인 가족의 유대'는 완화/해방되고 있다. 90년대생인 나 또한 집안 내 아들로서의 의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개인'의 선을 침범하는 것은 '오지랖' 혹은 '꼰대'라고 욕을 먹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렇게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나', '개인'의 가치관이 만들어진 세대가 도래했다. 윗 세대는 '이기적이다', '애국 좀 해라'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우리 세대는 기존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나'가 중요하다. 물론 '집단'에 반할 정도로 '나'만 챙긴다는 것은 아니다.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 즉 '나', '개인'으로서의 영역을 침범받지 않는 민주시민 세대가 탄생했다.


  에리히 프롬의 책 속 내용처럼, 한국은 80-90년대에 비로소 현대화, 민주주의, 계몽주의를 이루었다. 과거 유교, 보수적 가치관의 유산은 200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2010년 즈음부터 해서 더욱 해체되고 와해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한국도 나름 온전한 '개인'과 '자유'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한국의 시스템에 아직도 봉건적인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교육을 들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개인'과 '자유'가 주어졌던 것과는 다르게, 한국의 초중고 학습과정은 '수능'과 '학벌'이라는 지위적 재화, 지위적 권위에 모든 걸 내던지곤 한다. 학생들에게는 '공부'가 세상의 전부인 것 마냥 여겨진다. 공부는 '맹목적 가치관'이다.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적어도 초중고 학습과정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중세시대를 살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혹은 맹목적 권위를 가진 '공부'라는 '나치즘'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던진 것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10대 때 중세시대를 살고 나온 2030세대는 2010년대, 2020년대에 들어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더 이상 '정해진 정답'이라는 '맹목적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방황하기 시작했다. 20대가 되어서야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기가 어떤 분야에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지, 자기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하는지 등 자아고찰을 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중세시대를 살며 '나', '자아'보다는 '공부'가 중요했던 인생이기에, 자아정체감을 찾고 쌓아야 하는 10대 때 이것을 미루고 20대 때 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10대 때 좋은 부모님 혹은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던 사람은 괜찮다. 혹은 10대 교육과정 중에 어떤 특정 '공부'로부터 학문적 흥미를 느꼈던 사람은 괜찮다. 이 경우, 중세시대 삶 속에서도 나름의 '개인'을 발견하고, 어느 정도 '자아실현'의 방향을 잡은 경우이므로 괜찮다. 중세시대 속에서 '자아실현', '적극적 자유 실현'을 할 수 있는 물꼬를 트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지 모르겠고, 개인이 나름의 '개인'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무겁고 부담스러운 '자유'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 제일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경우에도 '나'를 찾는 과정을 겪으며 나름의 물꼬를 찾아나서 자아실현의 길, 혹은 자신의 선택지 중에 자신의 삶에 맞닿아있는 합리적으로 선택지로 나선다면, 고민은 해결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 과정을 망각한 채, 나치즘 같이 하나의 '맹목적 권위'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길은 바로 '남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 혹은 '연봉이 높은 곳만을 추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들이 되겠다. 남들이 안정적이다, 좋다 말하는 길을 따라가고, 서열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들이 모두 추구하고 일종의 '지위'인 연봉을 따라간다.


  개인들이 '맹목적 권위'에 만족한다면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뉴스 및 주변 지인들로부터 볼 수 있었던 소식들 - 퇴사하고 한국에서의 삶을 때려치고 여행을 다니며 나를 찾으러 가는 이야기, 한 때 불던 'Yolo'족 이야기, 이유없는 잦은 퇴사와 이직 이야기, '이런 일을 하는 것인 줄 몰라서' 공무원-공기업 때려친 이야기 등 - 을 고려해보면,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연봉', '남들이 하는 직업' 등 나름의 '맹목적 권위'는 '권위'를 잃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국은 중세시대를 벗어났기에, '나', '개인', '자유'라는 존재는 '권위'를 덮는 것으로 보인다.



  철학, 사회학 문헌들을 읽으면 늘 그렇듯이, 나는 이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고 삶을 고찰해보았다. 내가 '맹목적 권위'에 호소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2019년, 3학년 당시, 우리 학과 교수님들 연구실에 찾아가며 대학원 상담을 받았다. 교수님들은 다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대학원 가고 싶으면 우리 대학 말고 SKY로 가야해", "너가 가난하더라도 공부하는 게 좋으면 해라", "박사 과정에서도 그만 두고 오는 사람 많다", "내가 이 분야가 유망하다면 특출난 애들에게 권유하는데, 아무래도 전망이 밝지는 않아서 권유는 못하고 있다" 등.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슬펐다. 코인노래방에 가서 자우림의 샤이닝을 부르며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 때 당시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조선시대처럼 내가 해야할 일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희망하는 자아실현, 적극적 자유 실현 전망이 밝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방황을 했다. '유교', '계급제' 사회 때처럼 내가 해야할 일이 주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1년 간의 고민 끝에 내가 내렸던 결론 또한 '공무원 시험'이었다. '남들 모두 하는 것'에 따라, '안정적인 일'에 따라 가기 위해 노력했다. 즉,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실행했다. 하지만 나는 성인 이후 이미 중세시대를 벗어나 '개인', '나'로 살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마음 속 깊숙이 적극적 자유 실현을 하고자 하는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솟아올라 '맹목적 권위'에 저항했고, 우울감을 자아냈다. 그렇게 몇 달 간의 방황 끝에, 나는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벗어나 다시 학문을 공부하며 '적극적 자유'를 어느 정도 이루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나는 현재 내가 나로서 오롯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관심있는 분야에 성취들을 이룰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



  나는 2021년 극동아시아에 위치한 남한에서 95년에 태어난 27살 사람이다. 10대 때 중세시대를 살아온 내 또래 친구들 중 몇몇은 취업을 준비하며, 졸업을 준비하며 방황을 한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내가 이 길이 맞나'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고, 피곤에 쩔어 좀비처럼 출근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다행히 나름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직장을 잡은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 및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무거워하고 불안감을 느끼거나 '내가 이 길이 맞나'라는 생각을 하며 심리적 방황을 하는 친구들도 많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1년 민주주의 사회 한국. '개인', '나', '자유'가 중요한 시대, 세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방황하는 사람들을 통해 볼 수 있듯, 우리 사회 속 봉건적 요소가 개인들을 '맹목적 권위'를 좇게 만들고 '적극적 자유실현'을 가로막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진보적인 교육감들이 중세시대 교육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혁신학교' 및 '자유학기제' 등 다양한 교과목을 도입했다. 또한 유튜브의 등장,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파면 성공하는 시대가 도래해 더 이상 공부의 중요성이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는다. 중세시대는 개혁되고 있다. 하지만 점수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고, 학벌을 중요시하는 경향은 존재한다는 점에 '맹목적 권위'는 아직도 강하게 살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중세시대에서 근현대 사회로 빠르게 이행한 한국 사회. 사회는 나름 봉건제도를 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중 낀 세대인 우리 2030세대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 이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고 든 생각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제가 에리히 프롬의 책을 오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풀면서 논의의 간편성을 위해 사회 모습들을 단편적으로만 풀어 서술한 경향도 있습니다. 이 책이 궁금하다면, 제 블로그에 인상깊은 구절들을 모아놓은 다음 글을 참고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https://blog.naver.com/kcljh5067/222488006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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