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인 나는 종종 남자도 여자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27년을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나이지만, 언제나 남자도 여자도 아닌 주변인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자는 동성이어서 부담스럽다. 이성애자들 중에서 남성들 앞에서 한없이 쑥스럼 타는 이성애자 여성 분이 있듯이, 여성들 앞에서 한없이 쑥스럼 타는 이성애자 남성 분이 있듯이, 나는 동성인 남성들 사이에 한없이 낯을 가린다. 조금만 친해지고 더 이상 친해지면 부담스럽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더 친해지기도 한 지인들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자는 부담스럽다.
반면에 나는 여자들에게 쑥스럼 타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애 중심적 행동양식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분들께 적극적으로 친해지려 다가가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이어도 주변의 눈 때문에 적극적으로 친해지기 힘들다.
10대 시절에 나는 여초 고등학교를 다녔다. 한 반에 35명가량이었고, 7명이 남성이었고 28명이 여성이었다. 남성미 뿜뿜하는 남자 애들과 깊게 어울리지 못했다. 대신에 여자애들 중에 친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친해지면 항상 뒤에서 남자애들 여자애들이 "쟤 관심 있나 봐", "쟤 들이대더라", "사귀고 싶어 하나 봐" 등 구설수에 올랐다. 나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결국 여자애들과 친하게 지내던 것도 거리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와 깊게 관계 맺지 않았다. 고등학교 찐친(진짜 찐하게 친한 친구)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교에 왔는데, 대학교도 여초과였다. 과동기 45명 중 33명 정도가 여성이었고 12명 정도가 남성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와 다르게 교실에 15시간씩 같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친구 관계도 자유로웠고 자신이 좋아하는 동아리에 가서 사람들과 폭넓게 어울릴 수 있었다. 너무 좋았다. 그래서 대학 동기들 중에는 친한 여자애들도 만들고, 동아리에서도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자애들과 친해지고 친해질수록 보이지 않는 벽이 보였다. 무척 친해지고 나서 내가 아무리 커밍아웃하고 나의 일상을 공유해도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친구들이 차별적인 친구였다는 말이 아니다. 친구들도 오픈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무척 친해졌다.
하지만 존재가 너무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너무 달랐다. 나는 생리도 하지 않고, 그렇게 빈번히 성폭력 경험에 노출되지 않았고, 군대도 다녀와야 했고, 나는 상상할 수 없는 혼인신고, 결혼 이야기, 미래 이야기 등... 남성과 여성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과 성소수자와 성다수자는 너무 다름을 종종 느꼈다. 친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여성&이성애자 친구들은 무척 공감하였고, 게이인 나는 무척 공감하지 못했다. 점점 나와 이야기하는 부분들은 한정되었다. 그래서 종종 벽이 보였다. 모두가 바쁘고 취업 준비하고 직장 다니며 힘들다 보니 연락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하는 관계들이 되었다. 베프가 되지 못한 채.
이렇게 거리감을 느끼고 상처(?)도 느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성 여성 모두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래서 어른들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힘들어하나,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 하나 싶었다.
주변인. 나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주변인이다. 근데 주변인이면 뭐 어떠한가. 혼자이면 뭐 어떠한가. 나 혼자 오롯이 잘 서서 내가 좋아하는 사회과학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고 등산도 하고 재밌게 지내면 다인 거 아닐까?
물론 모든 성소수자 분들이 나 같지 않다. 사회성 활발한 게이 분들, 유머러스한 트랜스젠더 분들 너무 많이 보았다. 그들의 사회성이 예전엔 부러웠지만 나는 나 스스로 오롯이 잘 서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은 배척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