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워지지 않는 편견의 말들

성소수자로 살기 험난한 세상

by 배즐

가끔씩, 10대 때 중고등학교를 다닐 시절 선생님들이 반동성애, 반성소수자 발언을 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왜 떠오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선생님 닮은 사람을 본 것인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기사 및 댓글을 봐서 나중에 생각난 것인가... 떠오르는 이유는 모르겠다.


1. 중학교 2학년 학원을 다닐 때였다. 자석과 자성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과학 선생님은 "동성애자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이라고 운을 띠웠다. "N극과 N극은 이어지지 않는다. S극과 S극은 이어지지 않는다. N극과 S극은 이어진다. 따라서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못하다"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대신에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맥락을 그대로 학습했다. '내가 동성애자인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구나. 주변에 말하고 다니면 안 되는 것이구나.'를 학습했다. 과학 선생님의 말씀은 나의 존재와도 직결되는 이야기였기에 곧바로 나의 뇌 해마에 들어가 장기기억으로 보존되고 있다.


2. 고등학교 1학년 학교 사회 수업 시간 때였다. 그때 남자 두 명 친구들이 부둥켜 놀고 있었는데, 사회 선생님이 "너희 때는 성장해가면서 동성에게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고 커가면서 동성애적 감정은 사라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도 발언에 상처 받지는 않았다. 대신에 '아 동성애적 코드는 사회적으로 사춘기 시절의 일시적 현상이라고 간주되는구나. 말하면 안 되는 것이구나'라고 학습했다. 나의 영구적인 동성애적 코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학습했다. 이 일화 또한 뇌 해마에 들어가 장기기억으로 보존되고 있다.


3. 중고등학교 다닐 때 10대 시절 내내 친구들은 서로 "게이 같다" "게이냐?"라고 장난치며 말했다. "게이"라는 낱말에는 가치가 개입되어있었다. '사회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일정 정도의 남성성'을 보이지 않을 때 "게이 같다"라는 말장난을 서로 했다. 쓸데없이 예민하고 섬세하고, 쿨하지 못하고,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고, 키가 작고 호리호리하는 등 남성성이 충족되지 하면 "게이냐"라고 조롱 섞인 장난이 이루어졌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았다. 1, 2 이야기와 달리 이것은 나를 향한 조롱 섞인 장난이었다. 나는 따라서 남성성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다. 1번 이야기는 N극과 S극 이야기이지 성정체성 및 성적지향성 이야기가 아니다. 동물들에게도 동성애 현상이 나타난다. 자연에서도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어떻게 누가 자연과 비자연으로 나누어 말하는가. 2번 이야기도 어이가 없다. 이성애 중심사회에서 이성애가 정상이고 옳다는 관념이 들어있다.


3번은 뭐라 할 말이 없다. 남성성 및 여성성이 보편적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임을 방증한다. 내가 키가 181이고 몸무게가 80이고 어깨가 훨씬 넓은 편이다. 병무청 조사 결과 한국 20대 남성 평균 키는 173 임을 고려해볼 때, 이제는 더 이상 그 누가 나에게 "게이냐?"라고 조롱 섞인 장난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소심했던 10대 때는 불가능했다.


언제 우리 사회가 포용적인 사회가 될까? 흔히 인권 운동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유럽이나 미국조차 이런 게이 및 퀴어 비하가 많은 것 보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남자도 여자도 부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