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적 공감을 얻는 스토리의 힘
주변분의 추천을 받아 덜컥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Pachinko)를 영문판으로 구매했다. 영문판 책을 살때마다 다 읽지 못하곤, 결국 돌아서 나는 독서가가 아니라 도서수집가라고 고쳐말하며 나름 익스큐즈미.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그것도 영어로 읽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론 책 소개의 어떤 구절처럼 '책장이 넘어가는 (Page turning)' 덕분으로 삼주에 걸쳐 다 읽었다. 휴.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한마디는, "분노의 포도에 오마주"구만. 시대의 질곡을 넘어 세대는 이어 내려온다. 민족이란 무엇이고, 조국은 과연 진실하고 순수한 개념인지 질문한다. 작가 스스로가 경계인으로서 깊이 고민하고 사색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경계인이라는 표현은, 대학시절 읽었던 송두율 교수의 '경계인의 사색'에서 차용한다.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부산 영도-일본 오사카와 요코하마라는 지리적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 결국 해방이 되어서도 돌아갈 조국이 어디인지 알지못한채, 경계인이 되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겪는 부조리를 읽는다. 한국인에게도 생소한 주제로 긴 호흡의 소설을 써 내려간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야기 흐름 또한 지지부진 하지도 않고, 내용은 지나치게 깊지도 그렇다고 얕지도 않으며, 일정한 리듬과 속도감을 가진 전개 모두 눈이 부셨다.
파친코 완독 이후 몇 주 후. 지난 주말 한국을 다녀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올 초 개봉했던 '파묘'를 뒤늦게 시청한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두 개의 다른 매체를 통해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되거나 배태된 이야기를 소비하게 된 셈이다. 소재 측면에서 파묘 역시 신선했고, 단순한 오락영화로만 볼 수 없는 진지한 메시지를 함께 전달 하는 것 같았다. 의도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묘한 경계선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잘 해보려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제목에 썼듯, 일제강점기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파고, 파고, 또 파도 계속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의 근원적 소재로써 힘을 지니는 것 같다. 아마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부조리와 그보다 더 비참한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역사에 대한 화해는 아직도 요원하고. 한국에서는 이 영화를 두고 친일과 반일을 가르고, 나아가 좌파와 우파도 갈라치기 하는 모양이던데. 웃자고 한 귀신이야기에 정말 나가도 너무들 나갔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한차례 유행을 겪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이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곤 백가쟁명의 장면이 펼쳐진다. 그러다 금방 또 사그라들고. 잊혀질만하면 또 다른 매체와 작가가 비슷한 시기의 다른 화제를 들고 나오겠지. 일제강점기 시대의 이야기는 아무리 우려도 계속 우러나는 사골같은 주제 아닐까. 그러다 보니, 종종 아니 자주, 무리해서 우리는 경우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사실 파묘가 좀 그런 쪽에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하고. 2미터 장신의 일본 정령이라니 나가도 너무 나갔다. 물론 영화를 보는 많은 분들이 상식선에서 거를 것은 거르고, 남길 것은 남길 수 있겠지만.
요즘 한국문화에 대한 글로벌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높아진 요즘이다. 외국에 살다보니, 그런 관심의 열기를 더 가깝게 피부로 와 닿는다. 그런 면에서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와 그에 대한 여러 사람의 관심은 반갑고 감사하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대한 관심을 세계인에 환기시켜, 독일이나 이탈리아 홀로코스트 같은 사건에 치우쳐 있기 쉬울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관심의 편향성"을 넓혀 줄인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너무 나아가서 '사실에 가까울 그럴싸함'을 잃거나 지나치게 '자문화 중심주의'로 흐른다면 전지구적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일본인 친구에게 '파친코'는 읽어보라고 권할 수 있겠지만 '파묘'를 보라고 권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파도 파도 계속 회자 될 이야기가 비단 한국인에게 소구하는 주제와 내용뿐만 아니라, 세계시민에게 어필하는 내용이 된다면...그리하여 그들의 관심과 공감에 힘입어...누구로부터라도 위로받을 수 있다면, 우리 선조들의 억울함을 달래는데 좀 더 이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