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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소에 대한 기억

by 김기만

함백산을 가면서 도로 주변의 밭들은 그래도 농토로 활용되고 있는데 도로에서 떨어진 곳은 산이 되어 가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의 식량을 생산하던 농토였는데 하고 친구가 아쉬운 듯 이야기한다. 예전에 다락논이 있을 때 소를 몰고 가서를 모내기 준비를 하시는 아버지를 보았고, 산비탈에 있는 밭에 이랑을 만들기 위하여 소를 몰고 산을 오르고 비탈밭을 일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농사짓는 집에 한 마리씩 소가 있었다. 소를 가축으로 키웠다. 아니 동거를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0년이 된 소도 있었고 20년이 된 소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에서 소가 어르신과 30년을 동거 동락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소는 그 집의 일꾼으로서 역할에 충실하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어린 소가 그 집에 들어와 일소가 되고 그 집에 평생을 보내다가 팔려가기도 하고 워낭소리와 같이 생을 마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영화가 추억을 소환하면서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기도 하였다. 지금도 봉화에 가면 공원을 조성해서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출처:봉화군 홈페이지


소가 일꾼이 되어 일을 할 때는 도로와의 인접성이 농토의 필수 요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소를 길렀고 그 소는 아침에 잘 먹고 일을 하러 나가서 저녁까지 농우로 활동을 하였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아버지들은 소를 길들이기 위하여 빈 논에 소를 끌고 가서 며칠간 씨름을 하셨다. 길들여진 소가 있으면 집은 든든해진다. 이웃집도 빌려서 사용한다. 그 비용은 어른들이 품앗이를 하면서 2일에서 3일 정도를 일해주면 되었다. 요즈음은 트랙터가 그 역할을 하고 비용을 부담한다.


트랙터가 있어 이 모든 것을 한다. 트랙터가 들어가지 못하는 농토는 이제는 농토가 아니고 황무지가 된다. 사실 너도나도 농사를 짓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 소규모의 농토는 자작농이 될 수도 없을 만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농사를 포기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은퇴하고 연금, 즉, 모아논 자금에 기초하여 농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귀농을 하는 것이 요즈음의 실태다.


예전에 인력, 소의 힘을 이용하여 밭고랑을 만들고 했는데 이제는 안된다. 농촌도 고령화되어 쟁기를 끌 힘 있는 사람도 없고 농사를 짓기 위하여 소를 키우기보다는 그냥 한우를 축사에서 길러 우리들 입으로 들어갈 뿐이다. 한우가 아니고 육우다. 육우는 젖소의 수컷을 말하지만 한우도 길러서 먹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소를 키우는 우사는 집에 같이 있었고 심지어는 부엌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부엌에서 보면 소가 보였다. 그것이 위생적으로 안 좋아서 없어졌다.


그리고 우사는 사료를 먹어서 그렇고 대규모 시설이 되면서 냄새 등으로 인하여 혐오시설이 되어 동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예전에는 자기들 집에 1-2마리 정도 기르고 있고 하여서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아니디. 일을 하기 위한 소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워낭소리에서처럼 늙으신 아버지가 키우는 것을 제외하고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하는 소가 있으면 다락논도 농토가 되고 비탈밭도 농토가 될 수 있으나 이제는 추억일 뿐이다. 그렇게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을 것이 풍족한 사회다. 그렇게 애닮 게 농사를 지어도 흥부네 가족처럼 먹고살기 힘들었는데 놀부네 가족처럼 마음껏 먹고 배가 부르지만 삶의 여유는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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