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마니산에서 기를 받다.

함허동천에서 시작하여 참성단을 올랐다가 정수사로 내려오다.

by 김기만

강화도 하면 우리는 마니산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마니산 하면 참성단이고 참성단은 전국체전의 성화를 채화하는 곳이다. 그리스 올림피아 신전에서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듯이 우리의 단군 신앙에 기초하여 성화를 채화한다. 내가 잘못 알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았는지 강화도 마니산 꼭대기에 있는 제단 이름을 첨성단으로 알고 있다. 참성단인데 경주의 첨성대를 생각해서 그런지 발음이 어려워서 그런지 참성단을 첨성단으로 잘못 알고 있다. 참성단은 사적 136호로 관리되고 있다. 참성단은 "마니산 제천단"이라고도 한다. 자연석으로 기초를 둥글게 쌓고 단은 그 위에 네모로 쌓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매년 개천절에 이곳에서 제천행사를 개최한다고 한다.


강화도 마니산을 많은 사람들이 갔다 왔을 것이다. 다만, 마니산을 쉽게 오를 수 있는 강화도 화도의 마니산 국민관광지 입구에서 시작하여 참성단을 오르는 것이 대부분이고 나도 그러한 경험이 있다. 3, 4번 마니산을 갔지만 함허동천에서 시작하여 끝까지 가본 기억은 없다. 오늘은 한번 함허동천에서 시작하여 능선이 끝나는 지점까지 가보려고 한다.


마니산 하면 ‘기(氣)’라는 존재에 끌려 마니산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마니산이 남한에서 가장 기가 센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이를 받기 위하여 산을 오르는 사람도 있다. 마니산(摩尼山)의 본래 이름은 ‘마리산’이었다고 한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태종실록’ 등에는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嶽)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마리’란 ‘머리’라는 뜻의 고어(古語)로 온 겨레,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명칭을 마니산으로 명명되면서 현재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지명을 일제 강점기에 너무 많이 바뀌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이 한동안 있었는데 너무 오랜 기간 그렇게 불리어져 어려움이 있다.


지난겨울 이곳을 왔는데 코로나 19가 급격히 확산되어 마니산도 입장을 할 수 없게 되어 아쉬운 발길을 돌린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니산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는지 조사해보고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이곳을 올라본다.


추석도 지났고 연휴가 계속되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새벽을 깨우면서 승용차를 몰아간다. 연휴에 일찍 움직이는 자동차가 거의 없다. 1시간도 안되어 함허동천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약간만 일찍 왔으면 일출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밤새 비가 내려 이곳도 그 흔적이 역력하다. 나뭇가지가 부러져 바닥에 뒹굴고 있고 나뭇잎에는 마르지 않은 물방울이 아침해를 맞아 빛을 발하고 있다.


아침 7시 매표소는 아직이다. 입장료를 받는 곳에서 7시에 등산객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정시 출근인 것 같다. 강화도에 군립공원은 입장료를 곳곳에서 받는다. 무료로 입장한 것이 그렇게 즐거운 것도 아닌데 마니산의 안전시설을 지속적으로 보완하여야 하는 입장인 이곳은 한 푼이 아까울 것이지만 인건비가 더 만만치가 않아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더 먹듯이 나는 일찍 일어나 입장료 없이 마니산을 들어갔다. 마니산 매표소는 3곳이 있다고 하는데 한 곳은 국민관광지, 한 곳은 함허동천, 한 곳은 정수사 쪽에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오늘은 함허동천에서 시작하여 능선 등산로를 따라 걸을 것이다. 정수사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면 바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봉우리이고 칠선녀 계단, 바위능선, 헬기장, 참성단, 372계단, 단군로 끝까지 갔다가 자동차를 회수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면서 칠선녀 계단을 지난 후 정수사 쪽으로 하산을 할 것이다. 처음에는 종주를 한 후 버스를 타고 자동차를 회수하려고 하였으나 참성단에서 칠선녀 계단까지 이어지는 바위능선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어서 원복 하기로 하였다.


계곡길과 능선길이 있는데 함허동천의 능선길로 정상으로 간다. 함허동천은 조선 전기의 승려 기회가 마니산 정수사를 중수하고 그의 당호인 함허를 따서 계곡 이름을 함허동천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도 기하가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 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함허동천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함허 대사가 이곳을 찾아 "사바세계의 때가 묻지 않아 수도자가 삼매경이 될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함허동천에는 야영장이 있고 그곳은 사전에 예약을 하여야 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하여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


함허정에 오르면 서해의 영종도와 크고 작은 섬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른 아침이라 생략하고 오른다. 계곡을 따라가는 것이 더 함허동천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몰랐다. 나는 능선길을 걸어서 올랐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것을 싫어해서 능선길을 오른다. 능선길을 오르면서 전망이 보이는 곳에서 주변을 돌아본다.

계곡에 올라온 길과 능선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전망을 볼 수 있다. 계곡길에서 올라온 사람은 바위를 돌아와야 하지만 능선길을 오른 사람은 그냥 오르는 길이다. 계곡을 올라온 사람 여럿이 주변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나는 능선길을 오르면서 다양한 바위들을 사진으로 담을 뿐이다.


저 사람들이 올라오기 전에 봉우리 정상까지 가야 한다. 3-4명의 사람이 좁은 등산로를 차지하고 떠들고 가면 나의 호젓한 산행을 방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길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3-4명이 가더라도 일렬로 가면 되는데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사람들은 옆에서 짝꿍처럼 움직인다. 산길은 넓지 않은데 둘이서 대화하면 지나가는 사람은 어떻게 지나갈까 생각이 없다.


함허동천에서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본 바위들은 특색이 있다. 대부분이 모자를 쓴 것처럼 바위가 형성되어 있다. 수락산에 있는 홈통바위와 같은 모양의 바위가 있다. 다만, 가파르지 않아 줄을 잡고 갈 필요가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수사에서 올라오는 길까지 길은 가파르고 길은 복잡하다.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은 바위를 타고 오르는 것이다. 화강암 바위라면 오를 수 없는데 이곳의 바위는 쉽게 오를 수 있다. 바위틈에 나 있는 길로 가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렵다. 그래도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바위능선을 계속하여 올라 정수사 갈림길을 놓쳤다. 어느쯤인지 모르고 우선 참성단으로 가기로 하였다. 능선을 올라 이제 아래를 내려다보고 가야 할 길을 보고 정수사 가는 능선도 보면서 영종도와 신도 그리고 장봉도를 본다. 영종도는 활주로가 보이고 비행기 소리가 들리고 장봉도는 길게 늘어져 있다. 신도는 영종도에 바로 이웃한 것 같은데 뱃길로 30분 정도 걸기고 장봉도는 1시간이다. 길게 늘여져 있는 섬 장보도를 걸으면 3시간쯤 걸린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영종도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계속 보였을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에 아쉽다. 2달 후에 미국에서 코로나 백신을 투여받은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고 하니 세계는 이제 팬더믹에서 서서히 열릴 것이다.

칠선녀 계단, 다리 그리고 바위능선은 여름에 갔다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가을 햇빛에 그곳은 그냥 강한 햇빛이 있을 뿐이다. 모자는 반드시 쓰고 다녀야 한다. 스틱을 사용하면 안전에 문제가 있는데 능선 봉우리를 올라오는 데 사용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두 손이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제발 자기 자신의 안전은 자기가 책임을 지면서 걸었으면 한다. 벼랑 끝에 서있는 소나무가 독야청청하고 있다. 비바람을 이겨내면서 전형적인 한국형 소나무가 되어 반기고 있다.

멀리 정상이 보이고 참성단이 기다리고 있다. 오르고 내리고 바윗길을 조심스럽게 지나가면서 섬 남쪽과 섬 북쪽 그리고 섬 동쪽을 본다. 섬 동쪽 육지와 섬과 사이에 있는 바다 즉, 염하강에서 안개와 구름이 섞여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바위길을 걸으면서 안전을 위하여 강화군에서 많은 투자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위험하여도 벼랑 위를 걷고 싶어 한다. 그 사람들의 심리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안전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어떤 곳은 우회를 표시하였지만 우회하는 사람은 드물고 벼랑 끝으로 간다. 그래도 벼랑 끝은 무섭고 떨어지면 위험하니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안전을 위한 시설에 의지하면서 걸을 뿐이다.

참성단 중수비에 도착하면 마니산 정상이다. 참성단이 정상인지 현재 마니산 정상석이 있는 곳이 정상인지 모르겠다. 참성단은 개방시간이 제한적인데 최근에는 수리 중이라 폐쇄되어 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 참성단에 들어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고 참성단이 오래되어 무너져 이를 중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중수비를 새워 둔 것이다. 비바람에 많은 글자가 사라지고 얼마 남지 않았다. 비를 별도로 세운 것은 없고 있는 바위에 음각을 하여 놓았다. 음각은 쉽지만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한다. 유구한 역사를 남겨 두고 싶으면 양각을 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 숙종 때 참성단을 중수하고 강화유수가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서 제를 지냈고 단군 신앙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라 한다

(중략) 단군은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시어 실로 우리 동국 백성의 조상이 되시는데 (손수) 단을 쌓아 하늘에 청결한 제사를 드리든 곳 임이라! 수천 년이 지나도록 후손들이 우러러보며 공경할 곳이니 고쳐서 완전하게 하는 일을 어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헬기장이 있고 정상석이 있으며,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너무 많은 시설이 있는 것 같지만 이웃한 참석단은 굳게 닫혀 있다. 이곳에서 참성단을 바라보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늘날 칠선녀가 그곳에서 전국체전의 성화를 체화하는 사진이 있다. 선녀로 선발된 학생들이 이곳까지 오르기 위하여 힘든 여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곳이 성지라고 하여서 다른 시설물들은 못 설치하니 헬기라도 타고 올라와야 하는데 높은 사람이 아닌 이상 헬기를 타고 올라오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계단으로 올라와야 한다.

참성단 옆에 있는 나무가 그 멋을 내고 있다. 이 나무가 참성단 소사나무라고 한다. 전형적인 관목 모습이며 돌 단위에 단독으로 서 있기 때문에 한층 돋보이는데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수령은 150년쯤 되며, 높이가 4.8m라고 안내되어 있다. 소사나무는 잎이 작고 줄기가 고목의 모습을 가져 분재소재로 많이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다.


참성단을 지나면 계단길과 단군로가 있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단군로이며 계단길을 계단으로 치마를 입고도 올라올 수 있다. 그런데 계단이란 것이 힘들고 힘들다. 처음에는 쉽지만 오르고 그다음 날이면 완전히 녹초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내려가면 더욱 힘들다. 내려간다. 참성단의 뒷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능선 끝자락까지 가기로 한만큼 걸어서 내려간다. 372계단이다. 계단 이름을 재미나게 명명하였다. 칠선녀 계단도 있다. 계단 숫자에 따라 이름을 그렇게 붙여 놓았다. 칠선녀 다리도 있다.

계단 숫자가 372개나 되는데 내려갈 때 생각하니 또 이 길을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 많다. 중간에 힘들면 쉬어가라고 계단 중간에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멀리 석모도도 보인다. 영종도는 먹장구름이 있어 비가 오고 있고 석모도는 햇빛이 비추고 있다. 내 뒤편은 먹장구름 앞쪽은 맑음이다. 걸어서 앞으로 가야 하는 만큼 뒤에 오는 구름이 나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한 가족이 같이 올라오고 있다. 앞에 가는 어린 친구가 뒤에 오는 동생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지나가니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을 30분 후에 또 만날 것이다. 이 친구들이 372계단을 쉽게 올라가지 못하고 쉬다가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단군로가 끝나는 지점 직전에 바위길과 우회길이 있는데 나는 바위길을 선택한다. 좁은 바위틈을 지나가 본다. 어떤 부분가 지나간다. 그런데 아저씨는 지나갔는데 아주머니는 지나가지 못한다. 바위틈에서 배낭까지 메고 지나가는 것은 아저씨나 아주머니나 동일한데 아저씨가 약간 키가 크니 배낭이 바위틈에 있지 않고 바위틈 위에서 지나갔으므로 본인은 지나간 것을 간과한다. 이유는 간단한데 아저씨는 본인이 날씬하다고 한다. 다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차이가 있다고 인지한다. 우리 모두 전체를 보지 못하고 현상만 보아서 왜곡하거나 왜곡당한다.

이곳에서 마니산 정상을 바라본다 강화도와 영종도 사이의 바다를 보니 아침에는 바다에 바닷물이 가득하였으나 썰물로 물이 없고 갯벌이 그득하다. 세계적인 유산이다. 개발을 하지 못하는 갯벌로 보존되는 곳이다. 능선 끝에 도착하여 매표소로 가지 않고 이제 다시 정상으로 올라간 후 정수사를 거쳐 함허동천으로 간다. 예전에는 능선 끝에서 다시 내려갈 수 있었으나 요즈음은 이 표시에서 모두가 매표소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섬 끝까지 걸어갈 수 있으나 자제하고 돌아갈 뿐이다.


372계단에서 가족들이 오르고 있는 모습을 찾았다. 엄마가 힘들다. 애들은 벌써 올라가서 엄마 이곳의 경치가 멋있다. 그래도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열심히 챙기면서 올라가고 있다. 쉼터에서 쉬고 있던 애들도 엄마를 응원한다. 사실 애들이 어리지만 몸이 가벼워서 그런지 산을 오를 때 보면 어른들보다 더 잘 오른다. 처음에는 엄마들이 잘 오른다. 엄마들은 모성애가 있어서 애들을 챙기느라고 잘 오른다. 어느 정도 가면 엄마들은 처음에 가족들을 챙기느라고 기를 다 써서 그런지 힘들어한다. 처음에 가족들을 챙기느라 너무 많은 힘을 사용한 것이다. 가족들이 같이 하는 것이 보기 좋다. 쉼터에서 가족들이 경치를 보면서 즐거워한다. 372계단을 다시 오르고 참성단에 도착한 후 바위길을 따라 다시 걸을 뿐이다.

아침해가 이제는 중천에 떠있다. 역광으로 담지 못하였던 풍경을 다시 담는다. 멀리 있는 섬의 그늘이 가까이 다가온다. 물이 빠진 바다는 갯벌을 보여주고 있고 영종도의 검은 비구름은 사라지고 이제 없다.

정수사를 내려가는 갈림길에 도착하기 전 암릉을 담고 암릉이기에 길을 폐쇄한다는 정보를 보면서 올라올 때 찾지 못하였던 정수가 갈림길에서 정수사로 방향을 잡는다. 곳곳에 암릉으로 가지 말라는 표시가 있다. "올라가지 마세요" 위험하다는 표시이다. 암릉을 올라오는 사람들이 힘겨워보인다. 함허동천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인지 정수사 쪽에서 올라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힘들게 올라온다. 그래도 나는 이곳을 보았다는 것이다. 정수사까지 거리는 줄었다가 늘었다가 제 맘대로다. 이정표를 세우면서 잘못 세운 것일 것이다. A지점에 세울 것을 B지점에 세우고 B지점에 세울 것을 A지점에 세워서 거리가 제 맘대로가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정수사를 내려가는 길을 놓쳤다. 능선을 따라가야 하는데 갑자기 오른쪽에 길이 있어서 5분 정도 내려갔다가 등산로는 있는데 거미줄이 있어서 다시 올라오니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넓은 바위가 있는 곳에서 정면으로 내려가야 한다. 함허동천과 정수사 갈림길에서 함허동천으로 내려가야 하나 정수사로 가본다.


정수사는 639년(선덕여왕 8) 회정대사(懷正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회정은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을 참배한 뒤 그 동쪽의 지형을 보고 불제자가 가히 삼매정수(三昧精修)할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고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1426년(세종 8) 함허화상(涵虛和尙)이 중창하였으며, 중창한 뒤 함허는 법당 서쪽에서 맑은 물을 발견하고 절 이름을 정수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1957년 보수공사 중에는 숙종 15년(1688) 수리 당시 세종 5년 에 중창되었음을 보여주는 상량문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수사는 매표소가 없다. 정수사의 법당이 유명하다고 한다. 정수사는 강화도에 전등사, 보문사 등과 같이 대표 사찰이다. 정수사를 돌아보고 함허동천으로 가는 길은 다시 올라가서 내려가는 것과 도록까지 내려가서 도로를 이용하여 주차장을 경유하여 가는 방법이 있다. 도로로 가서 함허동천의 계곡을 보기 위하여는 입장료를 내고 다시 들어가야 한다.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면 다시 500m를 올라가 함허동천 계곡으로 하산하면 된다. 네이버나 다음의 등산지도에 보면 정수사 조금 내려와 등산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폐쇄되어 사용할 수 없다. 나는 다시 올라가기도 싫고 하여서 도로를 내려와 도로를 이용하여 함허동천 주차장까지 걸었다. 도로를 걷는 것이 10분도 안되고 차도와 분리된 인도가 있어 안전하다.


정수사에서 도로까지 내려오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으며 이곳저곳에 자동차가 교행 할 수 있도록 여유공간을 두고 있어 차량을 중간중간에 주차시켜 놓고 여유를 찾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밤나무도 있어 알밤을 얻을 수도 있다. 아침 일찍 이 길을 올라오는 사람들이라면 알밤은 덤일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새벽에 밤나무 밑에 가서 밤새 떨어진 알밤을 얻은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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