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남태령에서 땅끝마을까지 걷는 삼남길을 끝내기 전 달마산 인근을 지났다. 도솔암을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길에서 달마산을 언제쯤 한번 와보아야겠다고 했는데 삼남길을 같이 걸었던 친구는 아내와 함께 이산을 등산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땅끝까지 버스로 가서 산을 가고 다시 서울로 오는 것은 신기할 따름이다. 상상도 못 할 세상이 온 것이다. 예전에는 보름이나 길을 걸어서 왔고 다시 보름을 걸어서 한양까지 갔는데 지금은 비행기로 12시간이면 미국도 간다. 예전에는 이렇게 걷다가 제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침부터 비는 온다. 남쪽 끝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를 신뢰하고 오늘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멀리 이동하는 산행 버스는 만원이다. 근교 산행에 재미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오늘의 일기예보를 보고 산에 굶주린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공포가 더 무서운 것 같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전 대구를 중심으로 확산될 때 누구도 만나지 않았으며 버스를 타지도 않았다. 기차도 타지 않았다. 공포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멈추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공포가 지금의 국회를 만들었고 지금보다도 덜 무서웠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때는 산행을 멀리 가는 것이 어려웠다. 사람들이 공포에 싸여 움직이지 않았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친구랑 둘이서 소백산을 가려고 했는데 빗줄기가 우리를 막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달마산 친구는 고향집으로 갔다.
참 멀다 서울에서 달마산까지 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서해안고속도로 시점에서 출발하여 종점까지 가고 다시 남해고속도로로 들어가서 강진 ic를 나온 후 월출산을 슬쩍 보여주고 해남읍을 거쳐서 미황사 주차장까지 5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한 것이다. 누군가가 시내버스에서 정류장에 내려주지 않았다고 감금죄로 고발했다고 하는데 스스로 감금당한 것이다. 10분을 자기 불찰로 목적지를 지나고 정류장에서 하차 벨을 누르지 않았는데 감금죄로 고발했다고 한다. 스스로 5시간 넘게 즐겁게 강금당해서 서울에서 해남까지 왔다. 5년 전 걸어서 왔는데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때에는 걸었던 길을 슬쩍 쳐다볼 뿐이다. 마봉리 약수터는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점심도 먹지 않고 걷는다. 행동식으로 먹으면서 이동을 한다. 5시간이 여유가 있을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은 5시간에 이동을 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이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 산행대장이 열심히 설명한다. 그런데 결론은 10명이 이를 지키지 못하여 어떻게 할 수가 없어 20분이 지연되었다. 한두 명이 지연을 하면 어떻게 정리가 되는데 동시에 많은 사람이 문제를 유발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고가 나면 한두 명인 경우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고가 동시에 나면 사회문제가 된다. 그리고 조직에 있는 사람이 사고가 나면 사회문제가 된다. 약속을 지킨 사람들에 대한 기회의 공정이나 이러한 부분은 사라진다.
달마산은 경전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 어떤 곳에는 달마대사가 머물렀다하여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높이는 489m이지만 바다에 바로 인접한 곳으로 해발이 그렇게 녹녹지 않다.
달마산은 미황사에서 출발을 하여 관음봉 달마봉 떡봉 도솔봉 등을 거쳐 종주할 수 있고 해남에서 달마고도라는 둘레길을 복원하여 이를 종주하기도 한다. 모두 미황사에서 출발한다. 달마고도를 걷는 사람들이 좀 있다. 이들에게 인증서와 기념품을 해남군에서 보내준다고 한다, 거리가 17km이고 이 거리도 오늘 5시간에 완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뭐 중한데 하지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다. 달마고도는 고려 때 달마산 둘레에 건립되었던 12개 암자를 연결한 순례코스였다고 한다. 2017년 복원하였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다고 한다.
미황사는 사적비에 따르면, 749년 8월 한 척의 석선(石船)이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났는데, 의조가 제자 100여 명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고 배에 오르니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법화경』·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40성중(聖衆)·53선지식(善知識)·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一萬佛)을 모실 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토(因緣土)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미자(美字)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자(黃字)를 택한 것이라 한다.
1264∼1294년 사이에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와 관리들이 이 절에 내왕하였다고 하므로 당시 미황사가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598년 만선(晩善)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미황사의 모습을 달마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아름답다.
이제 달마봉으로 간다. 달마봉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도 표시가 없다. 지도를 보고 움직일 뿐이다. 달마고도에 대한 안내판만 있을 뿐이다. 지도를 보고 달마고도 길을 따라가다가 삼거리에서 달마봉으로 가면 된다는 인식을 하고 걷는다. 너도나도 걸을 뿐이다. 달마봉 올라가는 삼거리 이정표가 그저 그렇다 알바하기 좋게 길이 되어 있다.
이곳까지 달마고도 길은 산길이라기보다는 비포장 오솔길을 걷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정상으로 간다. 양옆은 대밭이다. 남쪽이니 북쪽에서 보든 산죽보다는 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그대로다.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면서 가파르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1시간이면 올라갈 수 있지만 힘들게 올라간다. 전망이 없다. 전망이 보이는 곳에서 멀리 볼 수 있다. 남해안이 보인다. 저수지 다음에 남해안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멀리 있는 전경을 보면서 뒷바다라고 한다. 앞바다를 보기 위하여 올라간다고 한다.
이곳에서 10분 만에 올라가니 정상이다. 정상석보다 바로 위가 더 높은데 갈림길에 정상석을 설치하여 놓았다. 그곳은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렇다. 이곳의 봉화가 한양까지 갈 것인데 얼마나 걸렸을까 궁금하다. 이곳에서 완도의 모습이 아름다울 뿐이다. 완도를 넘어가는 완도대교가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겠지만. 오늘은 그냥 달마보에서 내려본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다도해 전체를 보는 것 같다. 두륜산도 보이고 그 너머에 월출산도 보인다.
앞바다 뒷바다 그리고 앞으로 갈길을 담아보았다. 달마산의 끝은 땅끝마을이다. 거기까지는 오늘은 가지 않고 도솔봉에서 끝을 내고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탑승하면 끝이다. 이곳까지 1시간이 소요되었다. 무조건 걸어야 한다. 사실 중간중간에 있는 바위도 구경하여야 한다. 내가 가장 앞에 나와 있어서 그래도 부담은 없다. 시간에 구애받기보다는 즐기면서 가면 된다. 어떤 사람들이 고생을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맨 앞에 있으니 무조건 빼야 한다. 다행히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아 일방통행이다.
등산로가 문제일 것 같지만 전자지도를 보면서 간다. 암릉으로 되어 있어 조심스럽게 다닐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이정표가 있는 곳에 가니 1km는 왔는 것 같은데 300m밖에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니 앞길이 캄캄할 뿐이다. 설악의 공룡능선을 지날 때 느꼈던 감정이 이곳에도 나타난다. 이렇게 힘들게 오르고 내리다 보면 도착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은 감정이다. 그래도 중간의 사잇길도 가보고 바위 위도 오르고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본다.
요렇게 생긴 바위를 찾아 줄을 잡고 오르고 내린다. 등산로를 벗어나 경치를 본다. 멀리 남해바다와 미황사 그리고 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내려간다. 데크보다는 줄을 잡고 이동한다. 자연 그대로 등산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즐거울 뿐이다. 데크를 설치하기에도 어려운 구간이 너무 많기에 어쩔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심조심이다.
그리고 데크라면 양방향이라도 문제없겠지만 줄을 잡고 이동하여야 하기에 반대편에서 등산객이 오지 않은 것에 감사를 하면서 시간을 저축한다.
봉우리를 넘으면서 지나온 방향을 돌아보고 갈길을 한 번씩 본다. 저능선을 어떻게 넘어왔을까 궁금할 뿐이다. 소금강이라 했는데 나는 금강산을 가보지 못하였다. 그래도 설악은 갔다 왔고 공룡능선도 걸어 보았다, 설악의 공룡능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봉우리를 지나면서 올라가 보고 내려다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곳곳에 있는 이정표는 미황사를 지속적으로 가리킨다. 중간에 힘이 들면 미황사로 탈출하는 것이 제격이다.
달마고도 이정표도 있고 그냥 이정표도 있다. 어느 것이 정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정표는 우리가 갈길을 안내해준다. 삶에 있어서 이정표를 찾기 위하여 책도 보고 스승을 찾아 공부하기도 한다. 이곳은 미황사가 중심이 되어서 운영이 될 뿐이다.
도솔암을 2km 정도 남겨두고 갑자기 고도가 낮아지고 산길도 암릉에서 흙길로 바뀐다. 도솔암 근처로 갈 때 오르막을 오르지만 산행시간도 줄어들고 걷는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멀리 도솔봉도 보이고 도솔암이 무엇이지 안보이지 만 그래도 1시간이면 도솔암까지는 갈 수 있고 시간적 여유가 나타난다. 주변의 야생화도 보이고 주변의 식생도 보인다. 우리가 여유가 없을 때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나 똑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살 때에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을 보고 오지랖이 넓다고 하였다. 오지랖이 넓어야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하면서 견문도 넓히고 새로운 것도 볼 수 있다.
이제 도솔암이다. 갑자기 컨테이너 막사가 있어서 고민을 하였는데 그것은 종무소이고 도솔암은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관악산 연주대보다는 덜 낭떠러지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비슷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도솔암 마당에서 바라보는 바위가 자연에 의하여 조각된 모습을 보여준다. 도솔암은 예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나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에게 패한 일본군들이 육지로 도망하다가 불을 질러 소실되었다가 30여 년 전 복원하였다고 한다. 도솔암이 수도권 인근에 있었으면 인산인해를 이룰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땅끝의 달마산 자락의 도솔봉에 위치하고 있어 그렇게 많은 사람은 없다.
이제는 도솔암 주차장을 거쳐 하산하면 된다. 도솔암 주차장은 버스는 못 올라오지만 승용차 등은 올라올 수 있다. 등산로는 좋다.
아쉬움이 있다. 한번 더 보고 싶다. 그래서 옛길을 찾았다. 헬기장이 있고 송신소 가는 길이 있는데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정글이 되어 있어 도솔봉 송신소는 포기하고 헬기장에서 나만의 휴식시간을 갖는데 멋진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을 담지 않을 수가 없다. 시간도 남았다. 여유가 있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2km 정도 걸어서 내려간다. 20분을 내려가다가 삼남길을 걸을 때 내려갔던 언덕길도 보고 지그재그로 된 길도 만난다. 마지막에 약수터다. 예전에 이곳을 지날 때 물이 많았던 기억이 있는데 여전하다. 예전에 그렇게 힘들게 올라 섰던 지그재그 길이 오늘은 무척이나 쉽게 내려온다.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차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아니면 힘들게 땅끝마을에서 걸어와서 다시 오르니 힘들다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이 만들어져서 그런 것일까? 궁금할 뿐이다. 도솔암 주차장에서 약수터 주차장까지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내려오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여서 더 가벼워진 발걸음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주차장은 없었는데 주차장도 만들고 이곳에 이제는 관광지로서 면모를 새롭게 하고 있다.
뒤를 돌아보니 달마산이 잘 가라고 인사하듯이 멋진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