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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 그리고 백양사

by 김기만

사람의 기억이란 존경스럽다.

20년 전의 기억도 한다. 산행기억도 그렇고, 친구에 대한 기억도 그렇다. 초등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를 60대가 지난 다음에도 기억을 하는 것이다. 같은 반 친구가 아니더라도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그리고 산행기억도 그 지역 근처에 가면 새록새록 돋아난다. 내가 1998년에 산행한 기억이 있는 곳이 전남 장성의 백암산이다. 그때는 백양산이라고 알았는데 백양산에 대하여 인터넷에 조회해 보면 장성의 백양산이 아니라고 부산의 백양산이 조회되고 장성군청과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 들어가면 백양산보다 백암사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는 백양산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도 공신력 있는 기관의 의견을 반영하여 백암산이라고 호칭을 한다. 예전에는 백양산이었지만 오늘은 백암산으로 기록한다.


백암산은 내장산ㆍ입암산(笠巖山, 626m)과 함께 1971년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백암산은 그 남부에 속한다. 장성군청 홈페이지(https://www.jangseong.go.kr/home/tour_new/spectacle/spectacle_03/spectacle_03_01/spectacle_03_01_10/spectacle_03_01_10_01)에 "백암산은 드넓은 호남평야를 마주하고 솟아오른 높이 741m의 산으로 내장산백암산국립공원에 속한다. 예부터 봄이면 백양, 가을이면 내장이라 했듯이 산 하면 내장, 고적하면 백암이라 할 정도로 백암산의 절경은 내장산에 뒤지지 않는다. 백암산의 봄과 가을은 노산 이은상 시인의 시구에 '백암산 황매화야 보는 이 없어/ 저 혼자 피고 진들 어떠하리만/ 학바위 기묘한 경 보지 않고서/ 조화의 솜씰랑은 아는 체 마라'라는 내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호남의 어느 산보다 으뜸으로 진녹색의 물감을 풀어놓았다 어느새 오색으로 갈아입은 듯한 백암산의 변신에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백학봉은 계절에 따라 그 색깔이 변하며, 육당 최남선은 백학봉은 "흰맛, 날카로운 맛, 맑은 맛, 신령스런 맛이 있다"라고 극찬하였다. 또한, 비자나무숲과 회색 줄무늬 다람쥐가 유명한 이곳에는 대한 불교 조계종 18 교구 본산인 대사찰 백양사도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는 다면 산을 왼쪽방향으로 올랐던 기억이 있고 마지막에 내려오면서 너무나 가파르게 내려와 그곳에서 내 무릎이 아작 났다는 생각으로 "내 도가니야" "내 도가니야"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오늘은 무조건 백양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오를 것이다.

대전에서 출발한다. 대전에서 출발할 때 백양사를 목적지로 설정하였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은 내장산 IC를 지나서 입암 터널을 지나면서 장성군으로 들어간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갈재를 넘어서 전남북을 오갔는데 요즈음은 그곳에 터널이 많다. 호남고속도로가 지나가고 1번 국도가 지나가고 고속철이 지나가면 일반철도 호남선이 지나간다. 그리고 옛날 호남선 철도가 터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곳을 지나면 장성으로 들어간다. 장성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백양사로 가는 길목에 접어들고 백양산 일주문 바로 전에 있는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시킨다. 백양사 일주문을 지나서 있는 주차장에도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다. 그곳은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지만 주차료를 내어야 한다. 우리는 일주문 바로 전에 있는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산책로가 좋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없고 자동차도 없다. 그 길 가운데 서서 인증샷도 남기고 걸어 본다. 그리고 그 경치를 사진으로 담았다. 가을날 그곳은 내장산 단풍 못지않게 절경을 이룰 것이다.

장성군은 Yellow City라고 하면서 홍보를 하고 있다. 사계절 "노란색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를 뜻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황룡강이 그 시발점이며, 꽃은 노란색 꽃인 유채화, 금계국 등으로 천변을 장식하고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아닌 노란 단풍이 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길을 지나면서 예전에는 주차장으로 사용되었을 공간에서 백학봉을 보고 그대로 담는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쌍계루 바로 전에 있는 연못에서 쌍계루와 백학봉을 동시에 담는 것이 더 아름다웠다. 아침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지만 오후가 되면 백학봉이 쌍계루 바로 앞의 연못에 쌍계루와 함께 얼굴을 담그고 있다.

쌍계루 바로 전에 갈림길에서 등산객들이 백양사 쪽에서 나와서 천진암 쪽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어서 우리도 따라가 보았다. 하지만, 그 길은 아니었다. 전자지도를 보니 백양사 바로 옆으로 난 등산로가 그려져 있다. 우리는 그들에 앞서 쌍계루 앞을 지나 백양사 소개된 내용을 읽고 그곳에 있는 비자나무의 원천을 읽고 등산로로 들어섰다. 우리 앞에 섰던 등산객들이 우리를 따르기로 하였다고 한다. 우리들은 그들보다 못한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길 안내자가 되었다. 백학봉 정상 바로 전까지 우리가 안내하였는데 그들이 백학봉 정상 근처에서 배꼽시계를 보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면서 알람을 누르는 사이 우리가 훨씬 앞섰다.

백양사 인근에는 70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비자나무의 북방한계선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기후 변화 영향으로 비자나무가 더 북쪽으로 갔을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을 하였다. 이곳의 비자나무는 고려시대 각진국사가 당시 구충제로 사용되던 비자열매를 나누어 주어 심게 한 것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비자나무 숲은 제주도, 전남 해남 고흥 화순 등에 분포되어 있으며 이곳은 가장 넓고 7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고 천연기념물로 관리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제주에는 비자림 지역이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


모든 나무들에 번호가 부여되어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자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특별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자나무는 백양사 주변을 비롯하여 계곡 전체적으로 식생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초기에는 비자나무를 심었으나 이제는 그 씨앗이 떨어져 자라고 그 나무가 오래되면 쓰러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주의 경우에는 비자나무를 관찰하기 위한 관찰로를 만들고 그것을 관광자원화 했으나 이곳은 식생대를 그대로 두어 더 보전이 잘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자나무 숲 속을 들어가는 등산로를 따라 걸어간다. 운문암까지 자동차가 올라가는 만큼 약사암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즉, 등산로로 들어서는 갈림길에 들어서기 전까지 도로를 따라 걷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전에 내가 그렇게 힘들게 내려온 구간 입구에 도착하였다. 그때도 이랬는지 모르겠지만 약사암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약사암을 오르는 길이 지그재그 갈지로 등산로 있다. 우리 뒤에 따라오는 등산객이 있다. 혹! 이 길을 모를 수 있어 이 길이 가파르다고 이야기하였지만 따라온다. 약사암을 가는 길에 이 길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구가 있다. "생각하며 걷는 오르막길 - 약사암 빨리 가면 30분 천천히 가면 10분" 그렇게 빠르게 올라가도 30분이 소요되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오르면 10분 같다는 얘기다.

오르고 오르다 보면 목표가 보인다. 그것인 인생이고 등산이다. 백학봉을 오르면서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그대로 느낀다. 약사암에서 한숨을 돌이키고 영천굴에서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영천굴에 조성된 관음전에서 불교신자들은 인사를 하고 다시 오른다. 이제는 진짜 힘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직선으로 그대로 놓인 데크는 끝없이 계단을 만들고 있다. 저 길을 그때는 내려왔는데 그때는 데크도 없이 일반적인 산을 돌아 돌아 내려왔다. 흙과 바위가 어우러진 계단을 지속적으로 내려왔으니 내 도가니가 도가니 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느꼈을 때 도가니에 열이 나는 것을 느꼈다. 오르면서 우리 뒤에 왔던 등산객이 우리가 약사암, 영천굴에서 지체하는 사이 앞서갔는데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지쳐가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잡고 또 오른다. 숨을 가다듬을 수 있게 계단을 오르고 쉬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주변을 돌아본다. 바로 옆에 백학봉의 깎아지른 절벽이 보인다. 그곳을 또 돌아서 올라가야 한다.

데크를 지나 능선에 도착하니 이제는 끝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등산 중 가장 힘든 구간을 올라온 것이다. 백학봉정상이 651m 상왕봉 정상이 741m니 이제는 오르고 내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정상으로 갈 것이다. 백학봉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지도가 잘못되어 있다. 백학봉 정상도 상왕봉정상도 651m 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는데 가면서 해발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제는 구암사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살짝 오르막이 있는 등 오르고 내릴 뿐이다. 2년 전 구암사에서 출발하여 내장사까지 간 기억이 있다. 그때 이 길을 따라 걸어 올라왔는데 오늘은 백학봉을 백양사에서부터 오른 것이다.

백학송이 있다. 백학송이라고 명칭이 붙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소나무가 있고 바위가 있고 낭떠러지가 있다. 그곳에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소나무에 올라가서 사진을 담는다. 그 소나무가 비바람과 세월을 이겨내면서 100년 이상을 이곳에서 묵묵히 세상을 둘러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소나무가 향후 100년 이상을 지켜볼 것이다. 우리에게도 알람이 온다. 그 알람스위치를 OFF 시켜야 한다. 알람스위치는 바뀐다. 예전에는 두 끼를 먹었다고 한다. 요즈음도 두 끼를 먹는다. 예전에는 점심을 걸렀으나 요즈음은 아침을 거른다.

다시 가면서 도집봉을 만난다. 어디에도 이정표는 없다. 다만,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만 있는 것이다. 도집봉을 가면서 이것을 살짝 오르는 것이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움을 가질 수 있고 색다른 식물도 보는 기쁨도 가져본다. 그리고 정상등산로에 들어서면 이제 상왕봉이 바로 앞이다. 상왕봉을 바로 앞에 두고 순창새재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예전에 구암사로 올라 이곳을 지나고 순창새재를 지나 내장산 능선을 거쳐 내장산의 신선봉을 간 기억이 있다. 가파르게 내려가서 새재까지 평탄한 길이 연속이었다.


구암사에서 올라온 산객이 있다. 수원에서 왔다고 한다. 그 젊음이 부럽다. 우리는 환종주이지만 그들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 자동차를 회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단체 사진을 남겨주고 떠났다. 이제 우리는 사자봉을 가기 위하여 내려간다. 그렇게 깊게 내려가지 않지만 또 올라가야 하는 부담이 있다. 상왕봉이 741m 사자봉이 723m다.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이다. 사자봉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이제 능선을 따라가면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데 너무 멀다고 느껴지고 백학봉을 오르면서 지친 심신이 문제인 것이다. 평안한 하산길이 우선인 만큼 다시 돌아 내려간다. 그리고 평안한 하산길을 선택한 것이다. 운문안 바로 전까지는 등산로이고 그다음부터는 자동차도 다니는 포장도로이다.

운문암을 뒤로하고 개울에서 모두 들어가서 세수한다. 산을 오르고 걷고 다시 내려온 흔적을 지운 것이다. 백양사까지 가면서 비자나무 숲을 지난다. 백양사 근처에 와서 백양사를 들어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백양사 안에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는데 그것이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 백양사는 오래된 사찰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는데,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염불을 하면 희양들이 몰려오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게 되어 백양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양사의 고불매는 수령이 350년이 되었다고 한다. 150년 이상된 매화나무를 고매라고 한다.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천둥번개가 치고 있다. 서둘러 주차장으로 가야 하는데 백양사에 들어간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 백양사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서둘러 주차장으로 이동을 한다. 그리고 쌍계루를 본다. 쌍계루는 사찰의 누각이지만 선비들이 많이 찾는 누각으로 불교와 선비들의 교류의 장이었다는 설명이 안내되어 있다. 연못이 있고 비자나무가 있고 정자가 있으니 누구나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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