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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Nov 13. 2023

월악산 그리고 덕주산성

버스시간에 애를 태우다


충청도에 반원을 그리면 중심선에 있으며 그 중심선에 컴퍼스의 한축을 두고 둘러보면 충청도의 동쪽은 어디보다 산악지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호수가 있고 멋진 산이 있다. 동쪽 끝에 있는 산을 보면 월악산, 소백산, 도락산, 금수산, 감악산, 황정산, 가은산 등이 있다.  그 산과 어울려져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그 남한강을 이용하기 위하여 충주에 댐을 만들었고 호수가 형성되어 있다. 호수이름은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충주호, 청풍호, 단양호다.


월악산은 제천에 있다. 제천의 남한강변에 있는 유명한 산이 있다. 금수산이 있고, 가은산이 있고 월악산이 있다. 단양과 제천의 경계에는 옥순봉과 구담봉이 있다. 최근에 금수산, 옥순봉, 구담봉, 가은산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산인 월악산을 간다. 금수산, 옥순봉, 구담봉과 월악산을 합쳐서 월악산 국립공원지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런 만큼 월악산이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국립공원 공단에서 월악산을 가리키기를 "월악산은 기암절벽이 치솟아 산세가 험준하고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주봉은 영봉(1,097m)으로 불리고 있다. 만수봉, 금수산, 신선봉, 도락산 등 22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산과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충북 제천시, 단양군, 충주시와 경북 문경시가 접해 있으며 수도권에서 가깝고 충주 호반과 어우러진 탐방지로 사계절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월악산을 가기 위하여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본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을 해결하고 배낭도 꾸리고 낮에 먹을 식량도 챙기고 자동차도 한번 확인한다. 겨울이 시작되는 만큼 따뜻하게 입는다. 그리고 겨울용 장비도 챙기다. 그런데, 지난밤에 겨울용 장비를 다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장갑이 없다.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를 못한다 8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다가 사용을 하려고 하니 못 찾겠다. 그냥 출발하였다. 결과적으로 하루종일 손이 추워서 월악산의 차가운 데크는 살짝살짝 잡았을 뿐이다.

 

지인이 도착하였다. 이웃 아파트에 거주하는 거주하기에 1달에 한번 정도 같이 산행을 한다. 합류하기 쉽고해서 아파트 앞의 도로상에서 기다리다가 지인을 태우고 월악산으로 이동을 한다. 월악산을 가면서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이용한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우회구간이 길어지는 만큼 단거리로 이동을 한다. 국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 이용을 자주 한다. 오늘도 주 도로는 36번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른 아침 출발을 하면 좋을 것이 있다. 첫째는 교통이 원활하다. 이른 새벽에 움직이는 자동차가 적어서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들이 아직도 침대 속에 이불속에 있는데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 결과 목적지에 남들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올라오는 그 붉으스레 한 아침미명을 보고 둥근 태양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아침이 경이스럽게 시작되고 있다. 그 모습을 자동차에 설치된 블랙박스가 담고 있다. 그것을 스틸해 본다.


3번 국도를 지나 36번 국도로 충주호 호반을 달린다. 대전 근교의 대청호를 휘둘러 나가는 코스가 환상적이지만 이코스도 환상적이다 산과 호수와 그리고 중간중간에 있는 농가들이 목가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다. 월악산을 바로 앞에 두고 선착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월악산의 풍경이 경이롭다. 그곳을 지나치고 그곳 사람들이 숫갓이라고 이야기하는 수산 1리 마을 입구에 도착하였다. 자동차를 다리를 건너자마자 주차하는데 자동차가 겨울을 알린다. 겨울이 되면 친환경자동차인 내차는 물을 자동차에 가지고 있을 수 없어 배출을 한다.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 같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수산 1리에서 출발하여 보덕암을 지나 하봉, 중봉, 영봉을 오르고 하산을 하면서 마애불, 덕주사를 지나고 덕주골에서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와서 자동차를 회수하는 것이다.


보덕암으로 올라가는데 자동차들이 계속 올라간다. 주차장이 그렇게 넓지 않은데 이렇게 많은 자동차가 올라갈까 생각하였는데 주차장 인근에 도착하니 길옆 공간에 주차를 시켜놓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콜택시를 하는 사람이 교통을 정리하면서 자기 명함을 돌리고 있다. 그 비용인지 얼마인지 몰랐는데 덕주골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추워서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서 물어보니 이것은 너무 비싸다. 팀당 3만 원이라고 한다. 거리와 거의 관계없다. 너무 비싸다. 덕주골에서 4 km아래에 있는 송계까지도 3만 원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것을 바가지라고 하고 탑승을 하지 않았다.

보덕암 화장실에서 오늘도 몸을 정리한다. 산을 가면서 의식처럼 산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의식을 치른다. 보덕암 화장실은 성인지가 그래도 잘되어 있다. 남성 화장실보다 여성화장실이 크다. 통상적으로 비슷한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성인지가 잘되어 있어서 더 크게 되어 있다. 보덕암으로 올라간다. 데크로 올라가도 되고 옆길로 올라가도 된다. 옆길은 사람이 다닌 길이 아니고 보덕암 스님이  OFF  Road 자동차를 이용하는 길이다. 그래도 그 길이 나는 좋다. 보덕암 스님은 여름날 이곳을 지날 때 멋지게 색소폰을 연주하였는데 오늘은 요사체에서 조용히 쉬시고 계시고 암자를 지키고 있는 개가 손님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통상적으로 보덕암을 둘러보거나 그냥 지나치는데 보덕굴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100m 남짓이라고 표기되어 있어서 둘러보기로 하였다. 보덕암의 오른쪽에 있는 동굴로 마의태자의 전설이 있는 동굴이다. 그 동굴을 찾아 보덕암 오른쪽으로 간다. 그리고 동굴로 가는 길을 찾아간다. 그냥 사람이 거주할 수 있을 정도의 큰 동굴이 있다. 그것을 그동안 왜 지나쳤는지 아쉽다. 그 동굴 앞에서 보는 경치가 장관이다. 마음의 수양이 저절로 될 것 같다.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고 여름날 이곳은 그냥 선계가 되었을 것이다. 마의태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에 귀의한 후 신라가 없어지면서 왕이 될 자격이 있었으나 이제는 망국의 왕자로 바뀌었고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도 경주를 떠나서 이곳에 사찰을 세우고 이곳에 거주하였다. 경순왕도 경주에서 개경으로 이동하기 위한 길목인 이곳에서 머물면서 좀 더 고민을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사실 수산리 입구에 자동차를 세우고 이곳까지 2km 정도 걷는 길도 해발을 상당히 높이고 있지만 이곳까지는 준비운동으로 보고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월악산은 1만 개의 계단이라고 한다. 그 계단을 걷다가 보면 어느새 산 정상이고 산행이 끝이 난다고 하였다. 오늘도 그 길이 시작된 것이다. 보덕암을 지나자마자 오르막이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산입구에서 추워서 옷을 많이 입고 온 사람들이 옷을 하나둘 벗어서 배낭 속에 넣고 있다. 배낭이 두툼해지고 있다. 하봉을 오르기 위하여 쉼 없이 오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망이 나타나고 있지만 떨어진 낙엽사이에서만 보일 뿐이다. 탁 트인 전경은 없다. 어느새 오르다 보면 등산로 없음이라 표시가 되어 있는 지역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하봉을 오르지 못하고 우회하였는데 지금은 국립공원공단 측에서 데크를 설치하여 오를 수 있게 해 놓았다.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면 멋있는 경치를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하여 하나둘 데크에 서 있다. 그리고 전망대가 있다. 소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고 그 아래로 충주호가 멋진 경치를 폼내고 있다.

데크를 오르내리면서 하봉을 지난다. 올라야 할 하봉이 우리 눈에는 멋있게 보여서 사진으로 담아보려고 하는데 사진기술이 아직인지 그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사진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은 담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한봉을 오르고 내려오면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데크가 있다. 구름다리인데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것이 없다면 봉우리를 끝까지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름다리를 지나면서 밑을 내려보면 고소공포증이 저절로 나타난다. 중국에 있는 산들의 등산로를 인터넷으로 보면서 그 길을 어떻게 걷는지 궁금하다. 나는 도저히 그곳을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오르고 내리면서 그러한 길을 걷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산행은 건강을 즐기는 운동이다. 그러한 건강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중봉이다. 예전에 무서운 철계단이 있었는데 어느새 안전한 데크길로 변모되어 있다. 그 철계단이 나에게는 공포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철계단을 오르면서 한 발짝 오를 때마다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걸어서 올라갔는데 그렇지 않다. 그 중봉을 그렇게 쉽게 오르고 다시 뒤를 돌아 하봉과 함께 충주호를 담는다. 오늘은 앞으로 방향보다 뒤로 돌아서서 사진을 담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방향은 거의 없고 뒤로 돌아서서 올라온 길을 돌아본다.

중봉을 지나고 영봉을 올라간다.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한다. 요즈음은 신륵사 쪽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 같다. 단체 산행객들이 올라오고 있어서 물어보니 대부분 신륵사 쪽이다. 예전에는 송계계곡에서 많이 올라왔는데 그 계단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회피하는 것 같다. 영봉을 오르면서 우리가 갈 길을 바라다본다. 아름답게 길이 그려져 있다. 그 길을 따라 덕주사까지 갈 것이다.

영봉을 올라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에 동참한다. 너도나도 정상석을 배경을 인증샷을 남기고 한편으로 충추호를 뒷배경으로 중봉, 하봉이 같이 나오는 인증샷을 남긴다. 인증샷을 남기면서 남성과 여성을 구별할 수 있는데 남성은 밋밋하게 여성은 다양한 그림으로 자세를 잡는다. 그런데 MZ세대는 다르다. 남성도 다양한 자세를 잡고 있다. 고등학생들이 선생님과 같이 산행을 왔다. 그들은 다양한 자세를 보여준다. 영봉 바로 옆의 봉우리에서 사람들이 추운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따뜻한 곳을 찾기로 하고 하산을 한다. 영봉을 내려가면서 금년 겨울에 처음으로 보는 고드름도 보고 얼음이 얼은 것도 보았다. 월악산을 오르면서 서릿발도 보았다. 이제는 겨울장비로 아이젠도 챙기고 스패츠도 서서히 배낭 속에 보관하여 행동을 하여야 할 것 같다.

산을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이 신륵사쪽에서 올라오고 있다. 내려가면서 데크를 보니 만개의 계단아 저절로 생각이 난다. 10층이상의 높이를 계단을 통해 오르면 영봉 정상이라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물어보면 답변을 한다. 영봉 밑을 지나면서 돌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철망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세심함에 감탄을 한다. 영봉아래를 지나면서 옛 등산로와 울타리가 훼손된 것을 보면 낙석의 위험을 알 수 있다. 영봉을 오르면서 아름답게 보았던 등산로에 들어섰다. 하산길이라서 더욱 아름답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봉의 그 암릉이 보이는데 앙상항 나뭇사이로만 보일 뿐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 송계로 내려가는 동창교 안내판이 있고 안전산행 쉼터가 있지만, 언제 물을 열지 모르게 잠겨 있다. 코로나 시절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없애기 위하여 닫아 둔 것 같은데 그것이 아직도 닫혀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겨울이다. 추위와 바람에서 쉬고 픈 등상객들을 위하여 문을 열어야 될 것 같다.

헬기장이다. 헬기장에서 뒤를 돌아본다. 오늘은 하루종일 뒤를 돌아보면서 경치를 감상한다. 영봉의 우람한 자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산행을 올라온 손자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 손자들이 기특하게도  할아버지와 산행하는 모습이다. 만덕봉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비법정탐방로로 가지 말라고 안내되어 있으며 이제는 계단을 따라 하산이다. 하산을 하면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조망터가 있다. 그곳에서 너도나도 인증샷을 남기고 그 경치를 담아가지고 간다. 영봉, 중봉, 상봉 그리고 충주호가 그대로 보이면서 북바위 능선도 보여준다. 이러한 곳이 쉽지 않기에 너도나도 담는 것이다.

미륵불로 내려가는 계단이 가파르다. 조심스럽게 내려갈 뿐이다. 바위들이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다. 안전한 산행을 도모하고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준비를 하는 것이다. 미륵불에 도착하였다. 신라말 고려초에 유행하였던 미륵사상이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마애타자의 전설이 여기에도 있고 덕주공주의 전설도 있다. 미륵불 암자의 삼성각 밑에 있는 샘터가 있는데 그 샘터의 물을 먹기 위하여는 스스로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 샘터의 물을 먹는 사람들이 등산객도 있고 거주하는 스님도 있다. 스님의 요사체로 물을 전달하기 위한 호스가 있는데 어디에서 세는지 소리가 나고 있다. 이것이 지인에게 공덕을 쌓게 했다.

지인은 불교신자이다 미륵불을 보고 그리고 인사를 하고 요사체로 가고 있는데 요사체에서 몇 명의 여신도들과 스님이 무엇인가를 들고 나오면서 우리에게 호스를 수리하여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지인이 흔쾌히 수락을 하고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간다. 100m정도 이동하였는데 다시 돌아서서 미륵불 옆으로 간다. 호스의 연결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덕주골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여유도 있고 하여 그것을 수리한다. 나는 그것을 할 주 모르는데 지인은 그것을 해보았다고 하였다. 연결고리를 풀고 다시 연결하는 부품을 교체하였다. 30분 정도의 시간을 이곳에서 소비한 것이다. 사찰의 스님과 여신도들이 고마워하면서 차 한잔 하면서 여유를 가지라고 하였지만  버스시간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하고, 마음이 바쁜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호수 수리를 끝내고 하산을 하였다. 지인은 사찰에서 공덕을 쌓은 것이라고 하였다.

덕주사에 도착하였다. 미륵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어서 마음이 바쁘고 하여서 그냥 지나친다. 덕주사는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건립한 사찰이다. 신라가 망하고 이곳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덕주산성이 있다. 신라와 고려시대의 산성으로 천혜의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이 있고 주변이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 지금도 입구가 아니면 현대문명의 도움이 없다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덕주골에 도착하였다. 버스 시간은 16시 50분이라고 정류장에 표시되어 있는데 정확한 시간을 다시 확인하기 위하여 가게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물어보았다. 그곳에 있는 버스시간은 16시 10분이다.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는 버스정류장에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 않는다. 새로운 등산객이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벗이 되었다. 그분들은 먼 곳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지난여름부터 100대 명산을 부부가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난 집을 5시 나온 후 이곳을 시외버스를 타고 와서 이곳을 산행한 것이다. 버스시간을 확인하기 위하여 버스회사에 전화하니 정확한 시간이 16시 50분이다. 주민만 운행하는 버스다. 좀 더 찾아보아야 했는데 아쉽다. 가게와 같이 있는 식당에 들어가 난로를 둘러싸고 시간을 보내다 버스시간에 나왔고 우리만 탑승하고 버스는 달린다. 차장밖으로 월악산을 전경이 보인다. 자동차를 회수하는 곳에서 산그늘이 드려져 있는 월악산을 담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선차장에서 월악산을 다시 보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서 그것을 지나친다. 이것이 인생인 것 같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생각한 데로 움직이는 것이 현실에 맞게 수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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