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섬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한다.
한반도라고 하는데 왜 섬이라고 할까?
섬은 4면이 바다인 곳이 섬인데, 우리는 3면이 바다인데 왜 섬일까?
그것은 대륙과 연결된 부분이 있지만 그곳으로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섬보다 못한 섬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섬에서 영해의 개념으로 이동의 자유가 있지만 우리는 그 자유도 없다. 이제 섬처럼 보이는 곳을 찾아보았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고 그리고 서해를 만나는 곳은 강이라고 하기에는 넓고 바다라고 하기에는 좁다.
강화도와 육지사이에 있는 그곳도 바다라고 하기에는 좁기에 강화도와 김포사이의 바다를 염하강이라고 하고 강화도의 북쪽지역과 북한지역과 사이를 조강이라고 한다.
조선말 개항기 우리 역사에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있었다고 역사시간에 배웠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의 역사를 아무렇지 않게 배우고 조선시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펼치다가 미국, 프랑스 등으로부터 침략 아닌 침략을 받고 개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다가 운양호 사건으로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부터 우리는 개항이 되었다고 배웠다. 병인양요, 신미양요에서 프랑스군과 미군은 조선군을 이기고 그곳에서 관련자료를 약탈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단지, 개항을 요구하다 실패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병인양요 당시 조선군은 프랑스 군과 김포의 문수산성, 강화의 정족산성에서 전투를 하였고, 당시 문수산성에서는 패퇴하였지만 정족산성 전투에서 승리하여 프랑스군이 물러나도록 하였다고 한다. 프랑스 군은 강화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외규장각(外奎章閣)의 각종 서적과 귀중품을 약탈하였다. 그것이 고속열차를 프랑스로부터 도입을 하면서 우리에게 영구임대 형식으로 들어왔다. 이런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 문수산성이다.
문수산성 명칭은 신라 혜공왕(재위 765∼780) 때 산 정상에 창건된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에서 유래됐으며 1964년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軍)과 일대 격전을 벌이면서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파괴되고, 성내가 크게 유린되었다. 해안 쪽 성벽은 없어지고 마을이 들어섰으며, 문수산 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았다. 최근에 북문과 남문이 복원되었다.
문수산성에서는 강화도를 볼 수 있고 임진강과 한강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배도 감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이다. 얼마 전까지는 정상부근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북한을 감시하였던 곳이다. 현재는 문수산성을 복원하고 그곳을 휴식처로 우리는 사용하고 있다. 문수산성은 강화도를 들어가는 강화대교 바로 전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고 주변을 볼 수 있어 주변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예전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을 할 때 강화대교를 건너기 전에 이곳에 하차하여 산을 올랐고 요즈음은 시내버스로 그곳을 들른다. 서울에서 서쪽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이제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두가 시내버스로 바뀌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검문소가 있던 시절에는 성동 검문소가 있어 강화도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가 이곳을 나오면 반드시 검문을 받았다. 예전에는 이곳에 주차창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다만, 문수산 산림욕장이 있고 그곳에 주차장이 있다. 주말이면 48번 국도는 자동차로 가득하다. 그것을 우회하여 다니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강화대교를 건너지 않기에 48번 국도를 이용하다가 강화대교를 건너기 전에 우회전하여 산림욕장을 찾아간다. 오늘 산행은 문수산성 전체를 한 바뀌 돌아보는 것이다. 산림욕장에 주차를 하고 문수산성으로 올라선 후 장대로 갔다가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하산을 하면서 북문을 보고 산행이 아닌 도로를 따라 남문까지 이동한 후 다시 산행을 하여 산성에 도착한 후 산림욕장으로 하산을 하는 것이다. 도합 10km 내외다.
문수산 산림욕장 입구로 들어서니 주차요금이 선불이다. 나는 그래도 친환경자동차라고 1000원이다. 경차도 1000원이다. 중형차부터는 3000원, 5000원으로 높아진다. 그래도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고 나무그늘도 있어 좋은 주차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수액이 무서운 사람은 그런 곳에 그래도 나무그늘이 밑이 좋다면 제2주차장, 제3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주차할 수 있다.
주차를 하고 산성으로 간다. 산성으로 가는 길이 너무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산성까지 도착할 때 가파르게 오르는 길이 있는데 산림욕장에서 오르는 길이 너무 좋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버스정류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를 만난다. 산성을 만나고 이제 성벽을 따라 걸어본다. 멀리 강화도와 김포사이에 있는 염하강이 있는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가 흐른다. 왜 바다가 강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성벽을 지나면서 뒤를 돌아보면 강화가 그대로 보인다.
이 길은 평화누리길이다. 내가 평화누리길을 걸으면서 지난 기억이 있다. 오르면서 조망이 터진 곳에서는 뒤를 돌아본다. 산성이란 것이 그렇다. 위에는 산성의 감시지점이 보이고 아래로는 감시할 수 있는 다양한 곳이 보이는 것이다. 문수산성을 오르면서 2코스로 오르는 길을 만나다. 처음에 같이 출발하였는데 그분은 최근 다리 수술을 하고 회복을 한 후 회복훈련을 하는 것이며 그래서 다리 힘이 부족하여 오르다가 쉬고 하여서 이제도착하였다고 한다. 나도 천천히 오르지만 이분도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평화누리길에서는 우측으로 빠져서 하산하라고 하지만 나는 정상으로 간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100m도 힘들고 1000m도 힘든 것이다.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산성으로 바로 가는 길은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보호되고 있었다. 우회하여 정상, 즉 장대로 가게 되었다. 그 정상부근에는 삼국시대 때 축조된 성곽도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처음으로 만들어진 산성이 아닌 1000년 이상 이곳에서 적을 감시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상, 즉 장대로 가는 길은 데크로 보호를 하고 있다. 그냥 홀대하면 그 문화재는 사라지는 것이다. 정상에 도착하여 장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팔각정이 있는데 들어와서 쉴 수는 있어도 음식은 섭취하지 말라고 한다. 사방을 둘러보고 정상석을 인증하고 북쪽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면서 저 위에서 바라보는 북녘은 새로운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오늘 날씨가 그렇게 좋지 않아서 그런지 북녘은 뚜렷하지 않고 강화와 한강하구와 임진강 하고 그리고 염하강과 조강이 뚜렷하다.
2021년 이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이곳까지 온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더 갈 수 있다. 이동을 하면서 봉우리가 있고 그곳에서 또다시 조망을 할 수 있다. 그곳에서 장대를 조망하고 이제는 내려간다. 내려가다가 북문 방향으로 하산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성곽의 옹성을 본다. 그렇게 복원이 완벽하지 않지만 옹성형태를 띠고 있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하산을 할 것이다. 조망지점의 좌측 편에 있는 바위가 예전에는 선바위였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잘려서 아래로 떨어져 있다. 인위적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세월의 흔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옹성까지 간 다음 북문으로 가야 하는데 갈림길이 나온다. 북한산성에도 이러한 암문이 있는데 이곳도 암문이 있다. 이 암문으로 척후병들이 왔다 갔다 한다고 하였다. 그곳에서 북문으로 갈 수 있는데 우선은 옹성 끝까지 갔다가 온다. 새로이 옹성을 복원하고 있어서 모노레일이 있다. 그 모노레일을 잘 이용하면 새로운 관광자원이 되겠지만, 공무원들을 그것을 싫어한다. 사고 나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옹성 끝에서 북과 동을 보고 서쪽의 강화도를 담고 이제 돌아서 북문으로 향한다. 산성이었던 만큼 마을도 있고 사람들 살 수 있었던 자원은 북문과 남문사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북문에 도착하고 사람이 살았던 마을을 지나서 남문으로 간다. 이동을 하는 과정에 산림욕장으로 가는 길이 있어 유혹을 하지만 남문으로 향한다. 오른쪽에는 철책이 있다. 누구도 그곳을 넘어서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부대가 있고 이웃한 곳에 청계 양계장이 있다. 군인들은 그곳에서 밤을 새워 근무를 하겠지만, 하루종일 청계 양계장에서 닭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좀 그렇다. 양계장 주인이 생각이 없다고 본다. 아무리 군부대가 보기 싫다고 하여도 그곳에 양계장을 설치하는 것은 그렇다. 양계장을 지나고 남문 근처에 도착하였다. 남문으로 가는 길에 수목장 장례식장이 있다. 장례식장 주차장을 지나야 남문으로 갈 수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차라리 입구를 바로 성벽을 따라 올라가도록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문을 갔다 온 후 이제 평화누리길 2코스를 알림이 있는 버스정류장이 근처에 있는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경기도에서 김포에서 출발하여 연천까지 이르는 평화누리길을 만들고 또 경기도 둘레길을 만들었다. 한곳에 집중을 하였으면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서 물에 물을 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예전의 등산로 입구라 생각하면 된다. 이 입구에서 출발하여 문수산성을 몇 번 오른 기억이 있다. 처음은 부드럽게 그리고 산성 주변에 도착하였을 때는 가파르게 오르는 것이 이 길의 특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길을 올라서 성벽에 도착하였다. 성벽은 허물어졌고 그 허물어진 틈을 따라 성벽길을 걷는 것이다. 이곳에서 통로를 새로 만들고 성벽은 보전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는 산림욕장으로 하산을 하여서 자동차를 회수한다. 다시 염하강을 본다. 아침에 오를 때는 물이 빠지면서 남으로 물이 흘렀는데 지금은 물이 들어오면서 북으로 흐르고 있다. 이래서 염하강이라고 한다...
산림욕장에서 48번 국도 사이에 있는 길은 포장된 도로이지만 중앙선이 없는 도로이다. 서로가 가상의 중앙선을 만들고 교차를 한다. 그렇게 조심하면서 이동을 하여 48번 국도에 도착한 후 복귀하였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