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인의 고향이라고도 하는 계룡산 우리에게 익숙한 산이다. 계룡산은 왜 그렇게 불릴까 생각을 해 보았다.
갑사는 계룡산에 위치한 동학사에 버금가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찰이다. 우리가 학창시절 이상보선생이 쓴 '갑사로 가는 길'이 갑사의 유명세를 더하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조계종에서 보면 동학사 갑사 신원사가 동일하거나 규모를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
세종터미널에서 친구를 픽업해서 갑사로 간다. 친구는 새벽부터 출발하여 세종에 도착하였다. 나는 여유를 갖고 준비하였지만 친구는 버스를 타고 왔다. 버스는 그저 물먹는 하마인 것인가 사람을 먹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쏟아낸다. 세종에서는 대부분의 도로기 50km다 시외버스도 고속버스도 소용없다 그들도 느림보가 된다 간선도로에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단지 국도1호선만 70km다. 공주로 향하면서 갑사 가는 길은 아직도 햇갈린다. 복잡하게 토끼굴을 두번지나서 공주 대전도로를 거쳐 갑사로 가는 도로에 접어들었다. 갑사 가는 길은 동학사가는 길에 비하여 시골길이다. 동학사는 대전인근이고 1번 국도 인근이라 상가도 많고 접근이 쉽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객은 동학사 방향으로 접근을 한다.
이제 갑사를 지나 금잔디고개로 가야 한다. 산행을 위한 준비물을 위하여 상가에 접근을 하니 아침부터 연세가 지긋한 상인들이 관광객과 산객을 기다린다. 공주의 특산물인 밤이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다. 밤이 밤톨만한 것이 아니고 자두크기만 하다. 밤의 고장답다.
갑사로 들어가는 호젓함이 우리에게 카메라를 가만두지 않게 한다. 오랫동안 사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고색 찬란함을 맛보기를 기대한다.
사찰 관람료를 내고 갑사로 들어선다. 동학사 오른쪽이나 도예촌 장군봉을 들머리로 할 경우 관람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데..
갑사 대웅전은 하산 길에 관람하기로 하고 등산로에 접어든다. 계곡에서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우렁찬 물소리를 낼만큼 수량이 풍부하고 맑은 물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용문폭포를 지나면서 갑자기 오름이 가파르게 나타난다. 폭포가 있는 이유도 절벽 등 고도가 갑자기 발생해서 나타는 현상인만큼 가파른 것은 당연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담 잼이 덩굴이 바위에 붙어있다.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 생각이 나지만 저 담쟁이덩굴은 비바람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바람이 거세도 계곡에서는 잦아드니 당연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소설에서 마지막 잎새는 영원히 떨어지지 않았다. 아랫집에 있는 화가가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비바람이 치는 밤에 유화를 그리면 그 유화가 벽에 그대로 남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주인공이 그 잎새가 떨어지지 않아 생명을 연장한 것은 소설의 감동을 선사하였다.
신흥암이다. 이곳에 들어서면서 무엇이 있을까 조그마한 암자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천진보탑을 보았다. 사실 이것도 우연히 jh와 다니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보야 하는 버릇이 생겨 이정표를 보고 따라가다 본 것에 불과하다. 불교의 성지와 같은 곳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설명도 없다. 그래도 무엇이 있을까 하여 네이버에 찾아보았다. 두산백과사전에 보면 "전설에 따르면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 아소카가 쿠시나가라(석가가 입적한 곳)에 있는 사리탑에서 석가의 진신사리 8곡(斛) 4두(斗)를 발견하고 이를 84방향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북쪽을 담당한 다문천이 신통력으로 자연 석탑에 넣었다고 한다. 이후 백제의 구이신왕(久爾辛王) 때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바위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보고 사리를 발견하자 천진보탑이라 불렀으며, 420년 갑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신흥암은 1905년(광무 5)에 창건되었으며, 나한전·산신각·칠성각이 있고, 탱화만 봉안되어 있는데, 이는 뒤에 있는 천진보탑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어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다고 한다. 갑사에서 신흥암까지의 산길을 ‘스님의 길’이라고 부른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저나무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내 카메라의 새로운 성능을 보았다. 천진보탑 옆에 있는 나무가 아름다워 사진으로 담고자 파노라마 옵션을 선택하니 나무 전체가 잡혔다. 울트라 와이드모드가 된 것이다.
신흥암에서 금잔디고개, 삼불봉고개, 남매탑 다시 삼불봉고개로 이동한다. 가파른 산행길이며 너덜바위지대를 지난다. 동학사 주차장에서 남매탑을 오르는 길에 비하여 험난하다. 갑사에서 산객이 거의 없었으나 젊은 친구들이 무섭게 따라왔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젊음을 발산한다.
금잔디고개에 올라서면서 가쁜 숨을 쉬어본다. 젊은 친구들도 여기서 쉰다. 그들은 다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더가야 한다고 하니 실망하면서 평탄함에 감사를 표하면서 이동을 한다. 하지만 삼불봉고개를 또 오른다. 실망한다. 그들은 삼불봉고개에서 삼불봉으로 이동을 하지만 우리는 남매탑으로 내려선 후 다시 삼불봉고개로 다시 올라올 것이다
남매탑이다. 이상보선생의 "갑사로 가는 길"이 우리 세대에 학창 시절의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에 따라 유명한 것이 남매탑이다. 그때의 전설이 우리의 뇌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스님이 정진하는데 호랑이 입속에 어려움이 있어 해결해주니 호랑이가 어떤여성을 물어다 놓았다고 한다. 스님은 정진만하고 여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따뜻한 봄이 되어 여성의 집으로 데려다주었으나 여성이 스님의 인품에 반하여 부부의 연을 맷고자 하였으나 스님은 이를 용인하지 않아 스님이 있는 암자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고 이를 기념하여 남매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호랑이는 정진하는 스님에게 여성을 물어다 주었을까? 부부의 연을 맺고 대처승이 되기를 바랄을까 아니면 파계승이 되기를 바란 것일까 사실 스님들이 정진을 함에 있어서는 득도를 함에 있어서는 무념무상이 필요한데 이 부분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지 못하게 호랑이가 방해를 한 것이라고 본다. 대부분 이 남매탑을 목표로 등산을 한다.
사진을 담을 때 상부상조가 중요하다. 우리네들은 그러한 것에 익숙하다. 해외여행 중에는 특히 유럽에서는 이것은 절대하지 말아아하는 행위이지만 한국에서는 익숙하다. 그것이 미풍양속이 되어있다. 유럽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그저 그것을 헌납하는 것이라고 여행 가이드들은 지속적으로 안내한다.
친구와 나를 어떤 두 분에게 부탁을 하였고 우리도 그렇게 사진을 담아주었다.
삼불봉고개를 향하여 올라선다 내려올 때에는 이 고개를 다시 올라서는 것이 부담 서러웠는데 한 번에 올라서고 약간의 허기를 달랜다. 남매탑에서 상부상조하였던 두 분이 올라선다. 우리는 휴식을 위하여 쉼터로 왔는데 그분들은 여기가 삼불봉정상인 것으로 착각을 하였다고 한다. 산을 오르면서 힘들면 이것이 마지막이려니 하는 것이 사람들의 심점일 것이다.
삼불봉은 3명의 부처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오르는 능선 중 가장 높은 곳이 삼불봉이다. 관음봉이 높은 곳으로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다. 이곳까지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중 몇 명은 관음봉으로 간다. 삼불봉을 내려서서 올라선 봉에서 만난 산객이 칠성봉과 칠성바위얘기를 한다. 칠성바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이제는 그곳이 출입금지라고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칠성바위가 있다. 무속신앙을 위하여 무속인들이 단을 쌓은 곳이다. 이곳의 칠성바위는 멀리서 보아도 우렁차게 생겼다.
친구가 여승을 만나서 정담을 나누고 팔순이 다된 할머니에게 감탄을 자아낸다. 팔순의 할머니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공기가 좋아서 너무 좋다고 하신다. 동학사에서 이 길을 올라오신 그 노익장이 부럽다. 내가 저 나이가 되어서 계룡산을 오를 수 있을까 무릎을 잘 보호해야 한다. 여승은 호젓한 산행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떠들썩한 산행을 좋아하는 나와는 맞지 않다. 친구와 맞을 것 같다. 부산의 jh는 나와 떠들썩하게 다닌다. 정상을 힘겹게 오르면서도 수다다. 친구가 그립다. 멀리 보이는 관음봉까지의 자연성릉이 나를 부른다. 자연성릉은 삼불봉에서 관음봉까지 이어진 능선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성곽의 능선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린 친구 둘이서 부모님은 보이지 않지만 앞서거니 뒷 서기니 하면서 자연성릉을 오르내린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형제가 용감하다. 친구는 가다 서다 하면서 메모를 하는데 나는 머리만 의존한다. 그것이 나와 친구의 글소재의 차이 일 것이다.
관음봉을 오르는 마지막 계단이 기다린다 계단이 없을 때 오른 기억이 있다. 그때는 등산길이 더 정겹다고 생각한다. 계단 오르는 것이 힘든 어느 부부는 가위바위보로 계단을 오르고 있다. 힘든 계단을 숫자만큼만 오르고 가위바위보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계단에서 같이 놀던 때가 생각이 난다.
관음봉을 내려다본다 저만치 동학사가 보인다. 내려다보는 동학사 계곡이 이번에는 내려가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관음봉에서 동학사로 하산하는 길은 가파른 하산길을 이루고 있어 싫다. 최근에는 데크를 이용할 수 있어 그래도 어려움이 많이 줄었다.
관음봉 한운이다. 관음봉 한운이 계룡의 아름다운 경치 중의 하나이다. 관음봉에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하여 줄을 서본다. 상부상조다. 줄을 선 산객들 간에 즐거운 대화가 오간다. 다양한 포즈를 주문하기도 한다.
연천봉으로 방향을 잡기 위하여 이정표를 쳐다본다. 처음 가 본길이다. 여기에서 동학사로 방향을 돌렸는데 오늘은 반대방향이다. 연천봉까지 1km남 짓거리인데 이렇게 좋은 길인지 몰랐다. 연천봉 중간에 문필봉이 있는데 어디인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스님이 난방과 취사를 위하여 쓰러진 나무들을 정리하고 있다. 국립공원에서 가능한 범위가 어디까지일지가 궁금하다. 나무를 벌채하지 않으면 가능할 것 같지만 적절한 규모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사찰에는 적절한 소화기도 준비되어 있어야 될 것이다. 신원사 말사중에 하나인 등운암이 있다. 이곳의 스님이 땔나무를 준비 중인 것 같다.
연천봉에서 쳐다본 계룡산 능선이 우리를 왜 계룡에 왔는지를 알려준다. 연천봉을 올라 계룡 능선을 보면서 아름다운 구름을 눈에 넣는다. 휴대폰에 넣는다. 연천봉정상의 데크는 정비중이다. 데크 보존을 위한 기름칠을 하였다. 계룡이 무엇일까를 궁금하게 한다. 관음봉 정상에서 본 한운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와이드모드로 친구와 나를 담아본다. 사람이 그렇게 거슬리지 않게 자연에 어울렸다.
그런데 계룡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 흔적이 석각이 연천봉 정상에 남아 있다. 도참적 특성을 석각으로 표기하여 문화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천봉 서쪽은 낮은 구릉이다. 낙조가 유명하다고 한다. 대부분 낙조 명소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다보는 곳 멀리 보이는 곳이다
이제 갑사로 이동이다. 계룡의 구름을 담고 내려놓기 위하여 갑사로 간다.
등운암에 내려선다. 연천봉 바로 아래에 있다. 공사를 한지 오래되지 않은 사찰인데 부실공사가 그대로 보인다. 좀 천천히 하더라도 지반이 다져진후 건축을 하였으면 한다. 등운암에서 산객들을 위하여 암반수를 준비하여 물통에 담았다가 나누어준다. 목마른 산객들이 목을 축이고 이동하고 천황봉을 바라본다.
갑사에 도착하니 입구는 공사 중이다. 월인석보를 목판을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보관의 어려움이 그대로 여기에 비쳐지는 것이다.
종교가 달라서 그런지 가람의 배치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단지 문화재로 쳐다본다. 곳곳에 기도하는 그들도 하나의 인생이고 그들의 종교도 존중한다.
갑사 대웅전을 쳐다본다.
이제 산길은 끝이다. 계룡이 궁금하였는데 그 뜻을 찾았다. 닭벼슬을 닮은 용이란다. 계룡 능선이 그런 모습이었다. 아침에 올라간 상가지역을 또 찾았다. 성남으로 가는 친구는 허기를 달래야 한다. 산 위에서 점심은 허접했다. 빵과 사과 에너지바 떡이었으니 말이다. 이 지역 토속주는 한잔하고 가야 추억이 새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친구도 그렇게 즐기지는 않지만 나처럼 술을 못 먹지는 않는다 술 권하는 사회인 한국과 중국에서 나처럼 살기도 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