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첩첩산중이고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한번쯤 생각해보는데 기회가 잘오지 않았는데 코로나로 근교산행보다 원거리 산행,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운행이 중단되었던 산악회버스가 생활방역으로 전환된 후 운행을 시작하였고 이를 활용한다.
버스에 탑승하기전에 발열체크를 하고 마스크를 계속 써야한다. 또 손소독제도 사용하며 좌석에 1명씩 앉는다. 좌석에 1명이 앉은 것은 예약자가 부족하여서 그런것이지만 생활안전수칙을 완벽하게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산악회 버스에 오른후 내자리를 확인하고 친구를 기다리며 봉화 첩첩산중에 어느정도 걸릴것인지를 가름해본다.
버스는 사당을 출발해서 양재역에서 산객을 태운후에 경부고속도로 죽전버스정류장에서 다시 산객을 때우고 영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평택제천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천등산휴게소에 잠시여유를 부린다. 아침일찍 서울을 출발할때에는 이슬비가 내렸으나 여기는 그쳤다. 소백산을 넘으면 또 새롭게 바뀔것이다. 제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선 후 봉화로 가기 위하여 풍기ic에서 국도로 들어선다. 5번국도로와 36국도로 거쳐 35번국도에서 낙동강을 만났다.
태백 황지에서 발원하여 봉화를 지나면서 낙동강천이 되어있다. 아직 강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았으나 낙동강의 본류이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 같다.
낙동강은 두산백과사전에 태백시에서는 황지연못만을 발원지로 인정한다. 《동국여지승람》《척주지》《대동지지》 등의 옛 문헌에는 황지연못이 발원지라고 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경상도〉 편에 따르면, 태백산 황지와 경상북도 문경의 초점(草岾), 순흥 소백산에서 나온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했다.
나의 고향은 내성천 줄기이고 낙동강과 만나는 것은 예천을 지나 회룡포쯤에서 만나는데 처음 본 낙동강상류이다. 낙동강은 한강에 비하여 유역면적은 적고 수량도 적다. 하지만 강의 길이는 한반도에서 2번째다. 첫번째가 압록강이다.
낙동강 학소대의 모습은 이웃핫 청량산의 절경과 어울려저 절경을 이루고 이를 탐방하는 탐방로가 조성되 있다.
차창에 비추인 청량산은 멋 그자체였다. 구름속에 불쑥솟아 있다. 이것이 마지막에 도착한 장인봉이다.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를 지나 입석이 있는 곳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입석은 도로 가운데에 있는 큰돌이며 여기서 출발하여 응진전 청량사 김생굴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하늘다리 장인봉 금장대 금장굴 안내소로 오늘의 일정을 잡고 산행을 시작한다. 우리는 인증샷도 남기고 이곳저곳도 둘러보는 사이 같이온 산객들은 부지런을 떨면서 저만치 간다. 우리는 원 산행길에서 청량사를 잠시들르기로 한만큼 30분이 추가되는데 하면서 들머리를 들어서니 어제 내린비로 등산로가 평상시보다 미끄럽다.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가파르고 응진전을 가는 길이며직진은 평탄하며 청량사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응진전을 보기로 하였기에 가파르게 오른다. 오르면서 또 내려가야하나 걱정한다. 응진전은 금탑봉 5부 능선쯤에 위치하고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이곳까지 피신을 왔다가 근처에 머물렀고 노국공주는 이곳에 머물면서 홍건적을 물리치기를 기원하였고 그상을 모시고 있다고 설명이 되어있다.
고려말 중국의 홍건적은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후 부마국인 고려로 2차례 칩입을 하였고 공민왕은 이곳까지 피신을 하였던 것이다. 근처에 공민왕사당이 있고 산성이 있다.
산세와 잘 어울려 요사채가 앉아 있다.
응진전을 나와 총명약수터를 지나고 나타난 어풍대에서 그림같은 풍경은 어떻게 설명하기 어렵다. 저기에 있는 청량사가 그림의 백미가 되어있다. 청량사에서 내가 있는 곳을 본 기억은 8년전이다. 그때는 겨울이라 바위산을 그대로 보았는데 오늘은 여름산이다. 여름과 겨울의 차이 그때와 지금은 어떤차이일까 궁금하다.
8년전 사진을 찾아봐야겠다
청량사와 김생굴로 가는 갈림길이다. 청량사를 들렀다가 돌아와야 한다. 계단이 가파르다. 청량정사가 청량사로 가는길에 있다. 퇴계이황의 남긴뜻을 받들어 퇴계선생을 기리며 학문과 수양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아담한 찻집과 우편함이 재미있다. "집배원선생님 모든우편물은 환영하나 저승에서 오는 전갈은 반송합니다"
청량사입구에서 시작하여 청량사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나 우리는 응진전을 거쳐 내리막이고 사찰의 옆으로들어간다. 옛모습은 그대로이나 나무데크가 눈에 거슬린다. 겨울의 황량함에서 여름의 풍성함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청량사를 이곳저곳 둘러보고 다시 등산로에 들어선다. 청량사에서 자소봉을 가지않고 하늘다리로 직접 갈수 있다고 하나 자소봉과 김생굴을 지나칠수 없어 등산로로로 들어서서 힘들게 오로니 본인들은 청량사로 가는데 힘드냐고 물으니 내리막이라 힘들지 않다고 답변을 한다. 경일봉과 김생굴 갈림길이다. 경일봉으로 가면 청량산 전체를 종주할 수 있지만 제한된 시간에 등산하여야 하는 만큼 단축 코스를 선택한다.
김생굴이다. 신라 명필 김생(金生, 711~791)이 10년간 글씨 공부를 한 곳으로 전해지는 곳으로 김샘폭포가 어제 내린비로 물줄기를 뿌리고 있다.
퇴계선생은 김생에 대하여 시를 짓기를
종요나 왕휘지필법만을 추앙하지 말지어다
천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솟아난 이 몸일세
기이한 그 필법 폭포수틈 바위에 남았으나
그의 뒤를 따를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노라
이제는 자소봉으로 가야한다. 오르고 또오르고 가파른 산길을 만나는 것이다.
이곳의 봉이름은 우리네 산이름과 동일하게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산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주세붕이 이곳을 오른 후 이름이 바뀌었다고 안내서에 설명되어 있다.
보살봉, 의상봉, 반야봉, 문수봉, 원효봉 등이었나 주자의 무이산과 연결하여 청량산을 조선의 무이산으로 삼았다고 한다. 자소봉의 옛이름은 보살봉이다. 마지막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은 계단의 도움이 없이도 오를 수 있지만 수직이다.
자소봉 옆은 탁필봉이다. 연적봉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바로 옆에 있을 줄은 몰랐다. 자소봉을 내려와 장인봉으로 이동하면서 탁필봉을 보고 붓이네하고 봉 바로 옆에 바위에 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고 친구가 붓이 있으면 연적이 있어야하면서 연적바위라고 명명하였는데 연적봉이 있다.
연적봉위에서 탁필봉과 자소봉을 바라보는 모습도 일품이다, 우뚝솟은 봉이 자소봉이고 바로 앞에 보는 봉이 탁필봉이다.
연적봉을 내려오니 같은 버스를 타고온 산객을 만났다.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산을 타는 모습이 부럽다. 다음주에는 지리산 종주를 하신다고 한다. 그나이에도 산을 탈수 있게 관리를 한 그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예전에 지리산을 종주하신분이 74이었는데 이분은 70이다. 친구는 신선은 나이가 많은 것이 좋은 것만큼 1000살쯤 되어야 하고 지금나이를 1000살에서 빼어 930으로 설명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자소봉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그렇고 전체모습을 볼 수없어 지나치고 연적봉은 두 봉을 다볼수 있어 올라왔다고 하신다. 우리는 잰걸음으로 걷고 여유를 즐기면 우리를 쫓아오신다. 산을 즐기고 계시면서 시간이 여유가 필요하다고 하신다.
청량산에서 유명한 하늘 다리이다. 다리가 없었다면 저 봉에서 이 봉으로 이동하려면 족히 1시간은 걸렸을 것이지만 다리를 건너니 5분이다.
하늘다리는 해발 800지점에 위치한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길이 90m, 높이 70m, 바닥폭 1.2m로 현수교이다. 높이가 70m지점인 중간 부분에서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지나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나도지나가면서 무서움이 왔다.
구릉과 안개낀 날은 선경을 이룰것이다.
장인봉이 가까이 있다.
친구왈 장인봉은 있고 장모봉은 없냐고 이야기한다. 장인봉이 청량산의 주봉이다. 옛 명칭은 대봉이며 주세붕이 중국태산의 장악을 모방하여 장인봉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장인봉 정상석의 글자는 김생의 글자를 집자를 하여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나가는 산객이 저산위에 무엇을 해났나 하면서 궁금해하고 사위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밖에 생각나지 않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저높은 곳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여 놓았다.
햇빛이 비추인 만큼 정상은 더위가 있어서 지나치고 전망대에 서내려다보니 이곳으로 올라오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단이 없으면 어떻게 올라왔을까 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옛길이 보인다. 갈지자로 길이 흐릿하게 보인다.
금강대를 거쳐서 안내소로 이동한 후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가면된다. 이제는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문제다. 해발 870m에서 200m까지 내려가야 하므로 가파르게 내려갈 것이다.
청량산을 내려오면서 친구는 콘크리트가 오래되어 부서진 형태의 바위가 이곳의 특색이라고 한다. 이것을 퇴적암이고 역암이란 설명이 되어 있다.
역암에 대한 설명을 보면 암석표본은 경북봉화이고 모암(母岩)으로부터 침식된 퇴적물이 주로 하천,호수 또는 얕은 바다에 쌓여서 굳어진 암석으로 둥근자갈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장인봉에서 금강대까지 능선을 따라 있던 등산로가 갑자기 벼랑길을 만나면서 안내소로 방향전환을 한다. 아 이런곳에 어떻게 길을 만들었을까 감탄을 한다. 예전에 차마고도라는 다큐를 볼때 낭떠러지에 길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감탄을 했는데 우리도 이런곳이 있다. 이곳은 두들마을이 인근에 있고 금강굴에서 수도한 사람도 있으며 할배할매송, 삼부자송도 있는 만큼 예전부터 사용하던 길이라고 본다. 위도 바위 아래도 바위 그사이에 난 좁은 벼랑길이다. 저벼랑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녔으며 한이 서렸을 것이다.
할배할매송의 전설이 애처롭다. 약초를 캐러오신 할매를 찾아왔다가 저 절벽에서 두분이 다 힘이 부쳐 유명을 달리하셨고 그곳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도립공원 입구에서 바라본 청량산은 고릴라가 앉아 있는 형상이다.
야생화는 이제 없었지만, 산과 나무와 계단 그리고 산세의 아름다운이 있었다.
이곳에서 도산서원까지는 14km에 불과하여 퇴계와 관련된 설화도 있고 퇴계시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