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읍산이다. 양평에는 용문산, 유명산, 청계산, 중미산 등은 정상에서 본 기억이 있다. 용문산에 바라볼 때 앞산이 있는데 바라보기만 하였지만, 오늘은 이산을 간다.
양평에 유명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용문산, 물소리길, 지평막걸리 등이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추읍산을 가는 방법은 전철을 이용하여 접근을 하거나 승용차로 이용하여 접근을 한다. 코로나로 인하여 사회적 격리가 지속되고 있어 사적 활동에서도 승용차로 이동을 하였다. 서울에서 접근은 6번 국도로 접근하거나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접근을 한다. 나는 6번 국도를 이용하여 접근을 하였다, 원덕역은 대학시절 집으로 가는 길에 지나면서 스친 지역이고 용문산을 가면서 이곳을 지나쳤지만 기억이 없었지만 오를 새로운 경험을 하였고 나의 뇌에 남겨두게 되었다.
역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면 수도권 전철역 중, 아예 노선버스가 없는 대공원역, 달월역에 이어 두 번째로 버스로 접근하기 어려운 역이며 현재 양평읍 읍내에서 출발하여 역 앞으로 다니는 버스는 하루 딱 3번만 운행하고, 버스 교통이 좋지 않은 이유는 양평-용문을 오가는 길가에서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역에서 약 1.3 ㎞ 떨어진 봉성2리 쪽으로 나가면 버스가 자주 다니는데, 눈앞에 30분 간격으로 양평, 용문은 물론이고 서울까지 가는 전철이 다니는 입장에서 굳이 버스를 이용할 필요성은 많이 떨어진다고 부연 설명되어 있다.
구역사 시절 원덕역은 빨간 벽돌 건물이었고 1984년 12월 15일 방영되었던 TV 문학관 162화 '겨울 대합실'의 도입부에서 구역사 건물이 나온다고 하며 원덕리 주민들이나 추읍산 등산객들이 주 이용객이다.
원덕역에 도착하여 친구를 만나 어디로 산을 오를 것인지 논의하다 물소리길을 이용하여 흑천을 둘러본 후 추읍산을 북쪽에서부터 오르기로 결정하였다. 원덕은 처음이고 하천변에 흐드러지게 벚꽃이 보인다. 원덕리는 물소리길 4코스이다. 원덕역에서 시작한 물소리길을 따라 걷다가 비닐하우스를 보니 재배되는 치커리, 상추 등의 채소가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흑천에 접근하니 물소리길이다. 물소니길의 벚나무가 서울에서는 떨어지고 있으나 만개하고 있다. 양평이 서울보다 온도가 낮기는 낮다. 겨울철 최저온도를 발표할 때 온다가 항상 낮았다.
친구가 먹을 것을 사기 위하여 마을로 들어섰다. 이곳은 곳곳에 있는 편의점이 없고 구판장이 있다. 구판장은 생필품 등을 파는 상점으로 마을 회관에 설치되어 있는데 아쉽게 문이 닫혀있는데 앞집은 마을 역사관이다.
이 마을에는 예전에 기차가 가로질러갔고, 현재는 양평 레일바이크 종점이 있는 곳이다 보니 이 마을은 그래도 활기차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운영이 중단되어 구경거리가 약간 줄어던 상태다. 동네 입구에서 자동차를 타고 온 축구회원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 답답함에 그래도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흑천을 넘는 삼선교를 지나는데 솟대가 우리를 기다린다. 솟대보다는 다리 중앙에서 본 하천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물과 갈대와 산이 어울려진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다. 이맘때 하천이 가지는 특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하천을 끼고 물소리길은 추읍산을 둘러가고 있다. 하천변의 길에서 민들레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저 민들레가 홀씨가 되어 노래가 생각이 난다.
봄의 시작과 함께 민들레가 노랗게 꽃을 우리 곁에 왔었으나 벌써 깃털을 달고 하늘을 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군대 가는 해에 강변가요제에서 박미경이 부른 민들레 홀씨 되어가 생각이 나 읆죠려본다.
산등성이에 해~질 녘은~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어느덧 물소리길과 342번 지방도로가 만난다. 우리는 추읍산으로 가기로 한만큼 추읍산 산자락이 보이는 곳으로 접근을 하여야 해서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에는 봄을 맞은 차량들이 봄을 위하여 달린다.
등산로는 중앙선이 추읍산 산자락과 만나는 지점에 시작되었다. 버스정류장 이름은 우석교회앞이었고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자 펜션이 좌측에 있고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추읍산 산행기를 보면 등산로가 가파르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누군가가 묘를 조성하려고 50m 남짓을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등산로가 정비되어있다. 묘소를 조성하기 위한 터가 조성되어있고 계단을 만들기 위한 기초석이 몇 군데 설치되어있다. 이곳부터 1시간 가까이 암릉이 시작되기 전까지 줄기차게 가파름의 지속이다. 추읍산을 오르기 전에 보았을 때는 쌍봉이었고 첫 봉을 우리는 오른 것이다.
해발 397m를 100m에서 수직 상승하였나도 생각하면 된다. 300m를 솟아오르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등산로는 희미하고 동물들이 이동한 길도 있다. 397봉 정상직직전에 암릉을 맞이하였다. 육산에서 바위산으로 바뀐 것이다. 참나무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참나무수잎마른병때문이지 참나무를 등산로 주변에 잘라놓아 희미한 등산로는 더욱 찾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고 진달래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397m 봉에서 바리 보니 주봉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안부까지 내려가면 달라질 것이다. 내 핸드폰의 고도는 410m가 넘어서고 있다. 지도상의 고도는 397m다. 지구는 둥글고 그 높이를 가름하여야 할 것이다. 표지석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도 없다.
추읍산은 맑은 날 산 정상에서 "일곱 고을이 내려다 보인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하고 있고 유명한 지관이 마을 뒷산에 올라보니 이 산이 '용문산을 뒤쫓는 형상'이므로 추읍산이라 명명했다고도 전하기도 한다.
질마재라고 한다. 질마재라고 하지만 이정표도 없다. 이곳에서 또 100m 이상을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가파른 등산로에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길을 만들어 놓았다. 포크레인은 천하무적이다. 이곳을 올라왔다가 내려갔다니 말이다.
포크레인이 올라가는 것은 이해가 간다. 내려오는 것은 포크레인 조종석은 높은데 그 두려움이 장난이 아닐 것이다.
바로 정상에 오르는 길도 있지만 포크레인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20분쯤 오르자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나니 반갑기만 하다.
이제 400m만 가면 정상이다. 하지만 이 이정표는 믿을 것이 못된다. 400m가 1km나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어는 정도 걸었는지 gps를 이용하여 확인해보니 무려 900m나 되었다. 그래도 거의 수직으로 올라오다가 편단한 부분을 만나니 그저 즐거울 뿐이다.
오른쪽 왼쪽을 보니 깍아지른 절벽이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왕의 궁전이 저렇게 깍아지른 절벽에 성채를 쌓고 왕궁을 지은 것을 보았다. 그렇게 절벽이 있으면 출입구만 봉쇄하면 어느 누구도 칩입하지 못할 것이다. 내리에서 올라오는 이정표를 만났다
이제는 170m라고 정의되어 있다. 바로 이웃하여 헬기장이 위치하고 있어서 이제는 도착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곳 헬기장에 3월 14일 산불이 발생하였고 산객이 신속히 신고하여 반경 20m 정도만 피해를 본 흔적이 있다. 입산금지를 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신속한 진화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이제는 추읍산 정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는 정상석이 없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없다. 주변 산객들도 예전에 화강암으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하고 아쉬움을 표한다.
등산안내지도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이제는 하산하기로 한다. 우리는 내리 산수유마을을 갔다가 원덕역으로 원점 회귀하기로 한만큼 정상에서 170m를 다시 돌아간 후 내리 방향으로 하산을 하기로 하였다. 정상석을 못 찾은 아쉬움을 조그마한 정상석으로 대신하였다. 강물의 발원지를 표시하는 것 같이 이곳이 발원지라고 표기하여 두었다.
원덕역 방향이라고 표기해둔 등산로로 하산을 시작하는 올라오는 산객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힘든 표정이다.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 같은 등산로를 1시간 가까이 오르는 것이 힘든 것이 사실이며 중력을 거스르는 것만큼 싶지 않다. 하산길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오른 길이 힘들까 아니면 이 길이 힘들까 하며 비교하기도 한다.
약간 내려와서 올라다 보니 답이 없다. 다시 올라가라고 하면 오르기 싫은 구간이다. 지그재그로 갈지자로 길이 놓여 있다. 북한산 백운대를 오를 때 위문을 오르는 코스가 힘들다고 하지만 그곳은 이곳에 비하여 아니다.
원덕역 방향과 내리 방향의 갈림길에서 내리로 방향을 틀고 내려오자 첫 번째 만나는 약물장 80m 이정표다. 도대체 약물장이 뭐야 하면서 가니 뒤에 친구가 약물이 있으니 약수터일 것이라고 한다. 계단은 만들어 놓았으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일수 없어 방향을 잡고 간다. 다가서니 약수터는 아니고 바위 절벽에 물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다. 약수물이 장에서 나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상 등산로로 다시 복귀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너덜바위 지대다 저것이 무엇일까 인공구조물도 있다. 누가 이렇게 험악한 곳에 축대를 쌓았을까 하고 내려가 본다.
축대도 있고 돌탑도 있다. 곳곳에 돌탑이 조성돼있다. 양평군에서 산림욕장을 만들면서 이곳을 돌탑 동산이라고 명칭을 붙여 놓았다.
산림욕장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추읍산을 무섭고 가파르게 탄 나는 이곳에 과연 산림욕장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였다. 하지만 산림욕 숲에서는 데크가 정겹게 만들어져 있고. 해변 비치의자를 산림욕장에 만들어 놓았고 돌탑공원만 가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쓸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림욕장 입구에는 산신당이 있는데 호랑이 때문이라고 설명이 되어있는데 맹금류가 괴롭혀 재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를 회피한 경우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아이러니하고 세상은 요지경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 산수유 마을이 있고 마을 곳곳에 산수유가 지천으로 있으여 산수유 과수원도 있다.
산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산수유의 연초록의 아늑하게 보인다.
산수유가 100년 이상 된 것도 많다고 한다. 이곳저곳의 집들은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여서. 이제는 전원마을이 되어있다. 옛 자취는 하나도 없는 전원마을일 뿐이다. 다만, 산수유나무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야생화가 집안과 밖을 가득 메워서 눈을 즐겁게 해준다. 제비꽃, 양지꽃, 종지나물, 황매화
원덕역을 가기 위해서는 임도를 따라 고갯마루를 넘어가야 한다. 내려온 길을 다시 오르기는 쉽지 않다. 어느 산객이 산수유마을로 내려오다가 폐쇄된 길로 들어서니 어는 집안으로 들어섰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고 집을 지키는 개는 사납게 짖고 있으며 친구는 그 사람들 집 구경 잘했네 한다.
산수유 마을에 어떤 감흥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산수유 고목에 대한 설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원덕역으로 향한다.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곳 산수유 마을을 이제 벗어나려는 즈음에 재미있는 장승이 카메라를 유혹한다.
장승은 해학을 안고서 잡귀를 막는다고 하는데 재미있게 만들어 놓았다.
추읍산 정상을 바라보니 이웃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 솟아오른 패러글라이딩이 상공을 날고 있다. 저러한 것이 옛적에 있었으면 적군을 감시하기도 쉬웠것이라고 이야기하니 황당무계하다는 표정이다. 고대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저렇게 높은 곳에서 인간이 쳐다보면서 확인하면 이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상승기류에 더 높이 상승이 가능하고 활과 총은 사정거리를 벗어나 있으니 관측의 좋은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의 전쟁 장면이 생각나고 옛 전쟁이 생각나는 하루가 되었다.
사실 저 상공이 추읍산 상공인지 아닌지 나도 모르겠다. 그저 높이 날고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착각일 수도 있다고 본다.
고갯마루에 접어들면서 전원주택 꿈꾸는 사람들이 조성한 집터를 보고 저기에 집을 짓고 살려면 무서움도 없어야 하겠고 운전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개를 다 올라오기까지 하는 집터가 자동차가 없으면 어떻게 생활이 가능할까 생각해보았다. 고층건물이나 산비탈이 있는 집은 상수도와 수세식 화장실이 사람이 살도록 했는데 저곳에 물은 지하수를 이용하지 않으면 공급이 불가능할 것 같다. 저기까지 집터를 허가도 가능한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임도를 넘고 임도 아래에 있는 전원주택단지를 보면서 그것은 이곳에서는 가능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도 고갯마루에서 한숨을 들이켜니 원덕역이 4.1km다. 이제 줄기차게 담소만 나누면서 걸으면 된다. 임도 아래의 전원주택 단지를 보면서 저곳 집을 보면 타짜 1의 아귀 집이 생각난다고 하였다. 동떨어진 곳에 도박꾼들의 하우스를 만들고 도박을 하다가 총소리가 나도 모르는 곳 도박 하우스라고 하니 친구 왈 농촌의 비닐하우스도 그들의 하우스가 된다고 한다. 집 마당에 잔디를 가꾼 집도 있고 시멘트로 집 마당의 절반을 만든 집도 있다. 아무리 비에 마당이 파인다고 하여도 전원을 꿈꾸면서 시멘트로 마당을 꾸밀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임도 아래 동구는 좁다. 동구는 나의 어린 시절 동구가 생각이 난다. 우리 동네는 동구가 바위와 개울과 산으로 막아져 사람이 다니수 있는 여지는 새마을 운동이 있기 전에는 2-3 사람이 통행할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도 다닐 수 없어서 아랫마을에 두고 다녀야 했다. 그러한 동구 모습이 생각난다.
임도 끝에서 우리가 산행한 산의 윤곽을 조망해 본다.
임도 끝 지점에 또 있다. 전원주택단지가 여기는 사람들이 입주하여 살고 있다.
흑천까지 내려오니 어떤 여행객들이 이리로 올라가면 무엇이냐고 하기에 임도를 따라가면 휴양림이 있고 산수유마을도 있다고 하니 훌쩍 떠난다.
흑천의 벚꽃은 꽃놀이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물은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어떤 이는 봄쑥을 깨고 있고 어떤 이는 낚시 삼매경에 빠져있다. 이것이 세상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재작년 내가 본 중국 영화 중에 장예모 감독의 인생이라는 영화가 코로나가 창궐한 이 시기에 떠오른다.
이제 원덕역이다 이곳의 구판장에서 친구는 지평막걸리를 샀다. 오늘 처음으로 구판장에서 구매에 성공했다.
배 고품을 해결하기 위하여 양평해장국 1 그릇 했다. 도대체 왜 유명한가 찾아보니 양평 한우는 조선시대부터 유명했으며 근래에 와서 더욱 개량되고 발전되었으며 양평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소의 내장과 선지를 주재료로 한 양평해장국이 한양 장안에까지 유명했고 양평해장국은 매운 고추기름과 고추씨 등으로 얼큰하게 만든 국물에 선지와 각종 내장, 콩나물 등을 넣어 끓여내는 방식으로 오늘날에도 양평해장국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고 설명이 되어있다. 내장은 그럭저럭 먹는데 선지는 비린내가 싫어서 잘 먹지를 않는다.
그곳이 본점이라 3시가 가까웠는데 손님이 그득하다. 종업원들은 끊임없이 해장국 내장을 가득 그릇에 담는다.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복귀한다. 국도는 저 유명한 6번 국도의 정체를 이루고 있어서 회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