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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Sep 04. 2023

오대산의 비로봉과 노인봉

1일 2봉이다. 어쩌면 1일 2 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대산에 비로봉과 노인봉은 같은 산이지만 봉우리 위치가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름이 끝나는 시간에 여름휴가를 내고 산을 찾는다.

들 다 끝난 후에 늦은 여름휴가 간다.

산으로 간다. 그리고 1일 2봉이다.

안내산악회에도 이렇게 운행을 하는 것을 보아서 나도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한다. 단지 나는 자차를 이용하여 오대산 진고개에 도착을 하고 노인봉을 갔다가 와서 자동차를 회수한 후 상원사 주차장으로 이동을 한 후 오대산 비로봉을 올랐다가 상왕봉을 거쳐서 하산하는 코스를 설계한 것이다. 내가 발이 빠르다면 계방산도 가보고 픈것이 사실이다.  200km 이상을 이동을 하여 노인봉 3시간, 비로봉 4시간을 하면 어딘지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낮이 그렇게 길지 않고 이동하는 시간도 그렇고 하여 오늘은 포기하였다. 좀 더 이른시간에 출발하였으면 가능할 것인데 아침 출퇴근 시간에 출발하여 출퇴근 교통체증에 걸려서 그런 것이다.


주중에 이동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움이 없다. 출근시간에 고속도로를 이동하는 것은 서울 근처에서는 어려움이 가속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서울 근처를 벗어나면 이제는 많지 않은 자동차를 뒤로 하고 앞으로 달려간다. 영동고속도르를 이용하다 보면 횡성에서부터 끊임없이 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평창이 해발고도가 600m 정도, 원주는 100m 정도이니 500m 정도를 오르는 것이다. 반대방향은 내리막이다. 그 내리막을 내려와야 되어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시속 80km로 구간단속을 한다. 평창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이고 그렇게 과속하는 자동차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동차의 성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자동차가 힘이 부치는 것인지 문제없는 것인지 확인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해야 될 것이다.  


최근에는 자동차 성능이 좋아져서 그렇지 예전에는 평창까지 가면서 뒤쳐지는 자동차도 보았다. 요즈음은 2차선을 힘들게 오르는 것은 화물자동차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화물자동차도 화물을 화물칸에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너무 힘이 좋게 지나간다. 화물차들이 속도감을 내면서 달리니 옆에 달리는 자동차들이 피한다.


진부 IC에 오대산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오늘 1인 2 산이지만 같은 산인만큼 쉽게 가자고 결정을 한다. 우선은 진고개에 자동차를 두고 노인봉을 갔다가 돌아와서 상원사로 길을 잡는 만큼 주문진으로 넘어가는 6번 국도를 따라간다. 6번 국도는 경기도 양평, 홍천을 거쳐 이곳 진부를 지나 주문진으로 넘어간다. 애환이 많은 길이다. 이렇게 반대편으로 가면 서울까지 갈 것이다.  강릉으로 가는 456번 지방도로를 보내고 월정사로 가는 길을 보내고 진고개를 오른다. 진고개를 오르면서 해발 700m, 해발 800m를 가리키고 마지막에는 900m를 가리킨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진고개 정상 휴게소가 있고 탐방지원센터가 있다.

동대산 위의 구름이 가득              이정표에서 동대산과 노인봉을 가리킨다.                                      노인봉 정상도 구름이 가득


탐방지원센터에 앞에 자동차가 몇 대 있지만, 탐방지원센터 직원 자동차도 있고 산을 오른 사람들 차도 있지만 한산하다.  드넓은 주차장이 한가하다. 오늘이 평일이고 휴가 중인 사람이거나 은퇴한 사람만이 찾아서 그럴 것이다. 오른쪽은 노인봉이라는 이정표가 왼쪽은 동대산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친구들이랑 이곳에서 출발하여 동대산, 두로봉, 두로령을 거쳐 비로봉지나 적멸보궁으로 내려온 기억이 있다. 두로봉이 한강기맥의 시작점이 되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였다. 진고개에서 출발하면 4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 길이다. 오늘은 노인봉을 왕복하고 오대상 비로봉을 가야 하는 만큼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최대한 빨리 걸어보려고 한다.


진고개에서 배낭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노인봉에 가서 무엇을 먹고 내려올 것이 아닌 만큼 간단하게 목을 축일 것과 비상식량만 배낭에 넣고 이동을 한다. 해발이 높은 진고개에서 노인봉까지 400m 정도만 오르면 된다. 진고개가 해발이 960m이고, 노인봉이 1338m이지만 거리는 4km가 넘는다. 왕복 8km가 넘는 거리다. 평지라면 2시간이면 족하지만, 산길이니만큼 그렇지 못할 것이다. 국립공원에서 1시간 30분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진고개는 해발이 960m이지만 고원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곳에 대한 설명을 국립공원공단이 하고 있고, 진고개 일대는 예전에는 고랭지 채소밭이었으나 현재는 복원하고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진고개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고위 평탄면을 형성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진고개는 비가 오면 땅이 질어진다고 하는 것과 길이가 긴 고개라는 두 가지 유래가 존재하며, 정상부 일원이 고지임에도 평탄한 지형이 형성된 것은 경동성 요곡운동과 관련이 있다. 경동성요곡운동과 관련되어 형성된 유물지형인 고위평탄면(침식작용을 받은 평탄면이 융기하여 높은 고도에 위치하는 지형)이다. 고위평탄면은 융기이전의 한반도가 평탄하였다는 증거가 되는 지형으로 융기 이후 지속된 골짜기 침식작용으로 한반도의 일부지역에만 분포하고 있다"

탐방로 입구를 지나면 노인봉 능선이 보인다 능선을 올라서면 그대로 보인다. 아침이라 어제 비를 내린 구름이 아직도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내가 도착할 때쯤이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복원한 지역이라는 표시가 있고 그곳을 벗어나면 바로 데크가 시작된다. 이 데크를 올라서면 노인봉을 오르는 것이 끝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정표가 노인봉과 탐방지원센터의 가운데를 가리키는 곳이 오르막의 마지막이고 정상 바로 전 200m가 오르막으로 마지막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거의 2km를 편안하게 걷는 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인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런데 다람쥐가 있다. 오대산에는 다람쥐가 참 많다. 다람쥐가 청설모와의 경쟁에 밀려서 곳곳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 오대산은 다람쥐 천국이다. 그리고 정상석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날개미다. 정상석에 날개미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비가 와서 기온이 떨어져서 햇빛이 있으니 정상석 주변은 따뜻하니 그곳에 붙어 있다고 한다. 온도가 조금 더 떨어지면 죽거나 좀 더 따뜻한 곳으로 이동을 한다고 한다. 약간 습한 곳에 있으면 날개미가 덤벼들지 않는다. 날개미를 피하여 주변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황병산, 주문진, 동대산 그리고 멀리 있는 비로봉과 상왕봉을 담고 돌아선다.

주변에 야생화가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그냥 지나친다. 이른 시간에 사람이 1명도 없었는데 이제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올라오는 사람이 반갑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은퇴한 사람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노인봉을 오르고 그리고 소금강으로 내려가면 멋진 경치가 기다리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자동차를 노인봉에 주차하면 소금강 주차장으로 이동시켜 주는 차량이동서비스를 신청하면 대리기사가 이동을 시켜준다고 한다. 국립공원탐방안내소에 문의하면 대리기사를 연결해 준다고 하였다.


노인봉은 정상에 기묘하게 생긴 화강암 봉우리가 우뚝 솟아, 그 모습이 사계절을 두고 멀리서 바라보면 백발노인과 같이 보인다 하여 노인봉이라 불렀다 한다. 노인봉을 쉽게 생각하면 쉽다. 진고개에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쉽다. 하지만, 소금강 쪽에서 올라오면 어려운 곳이다.

이제는 오대산 비로봉이다. 2년 만에 찾는 비로봉이다. 노인봉은 노인봉, 소금강을 다녀온 것이 10년 정도 되었고 비로봉은 수시로 넘나들었던 기억이 있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이 제일 좋다고 하여 일부러 찾은 기억도 있는 곳이다.


월정사 입구를 지날 때 입장료를 받았으나 이제는 주차비만 받는다. 나는 전기차다. 그래서 주차요금은 절반이다. 5000원 대신 2500원만 내고 들어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비포장도로이면서 인터넷 음영지역이 곳곳에 있다. 이곳을 조심스렀게 지나간다. 비포장도로는 포장도로에 비하여 3배 정도의 시간이 추가적으로 소요된다고 보아야 하지만, 이곳의 포장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예전에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벌목장이 있었고 월장사를 지나자마자 있는 공터는 마을이 있었고 그곳에는 제재소가 있었다고 한다.


상원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이제 오늘의 등산로를 생각해 본다. 상원사를 거쳐서 사자암, 적멸보궁 그리고 비로봉을 오르고 난 다음에 다시 내려올 것인지 상왕봉을 갈 것인지 고민을 한다. 하지만, 비로봉에서 바로 내려오는 것은 무릎이 아작날것 같아서 사양하고 상왕봉을 거쳐서 임도를 따라 내려오기로 등산로를 잡고 이동을 시작한다.  


상원사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상원사라고 알려주는 이정석을 담고 차도가 아닌 탐방로를 따라간다. 상원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있다. 6.25 전쟁 중에도 상원사는 불타지 않았고 이곳도 보존된 것이다. 6.25 전쟁 중에 사찰들이 북한군의 주둔지가 되어서 폭격을 하거나 사찰들을 불로 태워서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6.25 전쟁 중에 살아남은 사찰 중에 하나는 합천 해인사는 한국공군이 폭격을 하지 않았고 상원사는 주지스님이 이를 지키고자 노력을 하여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웃한 월정사는 전소되었으나 상원사는 보존된 것이다. 그리고 월정사는 석탑만이 남아 있다가 복원하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군사 작전으로 오대산의 모든 절을 불태웠을 때도 상원사는 문짝밖에 타지 않았다. 30년 동안이나 상원사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참선한 것으로 이름 높은 방한암 선사가 절과 운명을 같이하려는 각오로 버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짝만 불태웠다고 한다.

2년에 만에 찾은 오대산 비로봉과 상원사이다. 상원사 동종은 20 년 전에 갔을 때는 종각도 보잘것없고 국보라는 표지로 이것이 상원사 동종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는 고이 모셔져 유리 장식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이 종을 보호하는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사용하지 않는 쇠는 부식하는데 종을 사용함에 따른 파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조품을 만들어서 이를 사용하는 것 같다. 유리 속에 갇힌 보물인데 완벽한 보호는 아니다. 구멍이 뚫린 보호막 안에 있는 동종이 되어 있다. 사용하지 종이 그대로 살아남는다는 할 수 있지만 산소와 결합한 철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이곳도 현대화의 물결 속에 있고 옛 상원사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적멸보궁이 불교신자들 사이에 회자되고 이곳을 찾는 많은 신도들의 편의성 확보를 위하여 국가에서도 옛 건물에 기초한 상원사 회복이 아닌 새로운 상원사를 만든 것이다. 내  친구 J라면 사찰곳곳에 있는 다양한 불상들을 담고 그것에 대하여 기록하겠지만 그냥 스치고 지나간다.

적멸보궁을 거쳐 비로봉으로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는데 등산로와 편한 길이 있는데 나는 등산로 찾아 이동했다. 편한 길은 계단이 너무 많다. 그것이 싫다고 할 것이다. 돌계단을 오르면서 높이도 맞지 않고 그것을 오르는 것이 더 힘들다. 나는 상원사 해우소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선택한다.  적멸보궁으로 이동하면서 길옆의 푸른 나무숲은 우리를 마음의 안식처로 이동을 하도록 만든다.


2년 전에도 이곳을 오를 때 궁금하였던 것이 있는데 오늘은 독경소리가 들린다. 안에는 스피커가 들어 있다. 사자암의 건물들이 산세를 그대로 안고서 건축되어 지붕들도 그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사자암 입구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불교신자들은 사자암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적멸보궁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한다. 그곳이 목적인 것이다. 연세 드신 분을 비롯하여 젊은이도 있다. 오늘은 주말이 아니라서 어린이들이 없다. 우물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서 우물에서 물을 먹는 사람은 없는데 물을 먹을 수 있는 국자는 있다.

적멸보궁에 대한 안내가 되어 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가 설법을 펼친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을 뜻하는 전각을 말한다. 설악산의 봉정암, 오대산의 월정사의 사자암, 영월의 사자산의 법흥사, 양산 영취산의 통도사, 정선 태백산의 정암사 이렇게 설명되어 있는데 태백산의 정암산이라고 보기에는 함백산의 정암사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봉정암, 법흥사, 정암사 등은 그렇게 화려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지만 오대산 월정사라는 큰 사찰에 속해있어서 그런지 화려하게 정리되어 있다. 용의 형상을 곳곳에 볼 수 있다. 가람의 용마루도 용의 형상이고 황제의 무덤과 같이 장식되어 있다.


비로봉을 오르면서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자리를 선점하였으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적멸보궁의 위치한 자리가 명당이라고 하였다. 가람들은 거의 명당에 위치하니 더욱더 그런 것 같다.


비로봉을 오르면서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자리를 선점하였으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적멸보궁의 위치한 자리가 명당이라고 하였다. 가람들은 거의 명당에 위치하니 더욱더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 많은 산 중에서 비로봉이 참 많다. 왜 그럴까. 비로봉은 금강산에도 있고 팔공산에도 있고 소백산에도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붙여져 있다. 불교에서 유래된 말로 비로는 불교에서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산 봉우리 이름은 불교에서 많이 유래된 것 같다.


적멸보궁을 끼고 오른쪽으로 비로봉으로 산객들은 방향을 튼다. 비로봉을 오르는 등산로 지척에 야생화가 우리를 반긴다.


앞서가고 있는 두 분을 앞지른다. 그분들은 힘들어하고 있어 인사를 주고받는다. 휴가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 오늘 비로봉을 오르고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 내일 선재길을 걷는다고 한다. 내 짝꿍은 오늘 나와 함께하지 못하였다. 나도 그렇게 권고하지 못하였다. 산을 한 개가 아닌 두 개나 올라야 하는데 그것을 강요하기 그래서 오늘은 슬쩍 나 혼자 왔다. 산을 오르면서 멀리서 오신 것을 이야기하고 산에 대하여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나를 따라 상왕봉을 가겠다고 하여 안내하기로 한다. 멀리 대구 쪽에서 온 것인 만큼 내가 안내하기로 한다. 온 길을 다시 내려가는 것보다 편하게 걸으면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으니 따라나선 것이다.

비로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이곳 정상에도 날개미들이 장악하고 있다.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도록이면 빨리 움직인다. 산을 올라온 사람들이 4-5명 있고 같은 일행이 아니지만 서로에게 격려를 한다. 연세 드신 부부가 오늘은 캠핑카를 가지고 와서 이곳에 잠을 자지 않지만 예전에는 이런 곳에 올라와서 비박을 한 무용담을 펼치고 있고 우리는 그것에 감탄을 한다. 그분들은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간다고 한다. 우리가 갈길이 멀게 느껴져서 그런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려가는 것이 싫어서 상왕봉을 돌아서 내려간다.


오대산은 비로봉(1,563.4m), 호령봉(1,561m), 상왕봉(1,491m), 두로봉(1,421.9m), 동대산(1,433.5m)의 다섯 봉우리가 있어 오대산이라고 한다. 죽, 산의 가운데에 있는 중대(中臺)를 비롯하여 북대·남대·동대·서대가 오목하게 원을 그리고 있고, 산세가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연심(蓮心)과 같다 하여 오대산이라고 부른다. 원래 오대산은 도교의 성지였다. 마침 동진시대에 60 화엄경이 번역되고, 이어서 80 화엄경이 번역되자 문수 신앙을 앞세워 불교도들이 차지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여하튼 이상과 같은 이유로 오대산은 초창기 중국 화엄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들을 오대산계 화엄사상이라 지칭하는데 초조는 영변(477~522), 제2조는 해탈, 제3조는 〈신화엄경론〉과 〈십 명론〉의 저자이자 고려시대 지눌의 사상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 이통현(645~735) 장자이다. 한편 오대산계 화엄사상은 자장율사에 의해 643년 한국에 전래된다.


자장율사는 선덕왕 5년인 636년 제자 승실 등 10여 명과 함께 오대산을 참배하게 된다. 그때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 감응을 받아 범계와 가사, 사리를 받게 된다. 이에 귀국 후 강원도 오대산에 문수 도량을 열게 된다. 한국 화엄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의상에 의한 종남산계 화엄사상은 28년 지난 671년 도입된다. 오대산은 한국의 문수성지이며, 불교가 장기간 흥륭할 터전이다. 따라서 신라의 효소왕이 출가하여 효명이란 법명으로 수련했으며, 통효대사 범일, 낭공대사 행적, 징효대사 등이 오대산 인근에서 수도했다.


고려의 왕건 이래 역대 제왕들이 오대산에 봉납했으며, 고려 명종 때의 원진국사는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이래 혼수, 무학, 나옹 등의 고승들이 오대산에서 수도했다. 이조시대에 들어오면 태조 이성계는 상원사에 누차에 걸쳐 쌀을 보시하였으며, 태종은 수륙재를 베풀어 국운의 융창을 발원했다. 세조는 상원사에서 문수동자를 만났다고 한다. 중국 오대산에서 시작된 화엄사상과 문수 신앙은 한국의 오대산 신앙을 낳게 된다.

상왕봉으로 방향을 틀면서 주변을 주어 담는다. 산객들은 상원사로 내려간다. 이제 같이한 분들과 같이 상왕봉으로 간다. 주목 군락을 만났다. 산이 높은 곳에 우리는 주목 군락을 자주 접한다.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 등등이다. 주목 군락에 들어가지 말라는 주의표시가 눈에 띄며 이것을 지키는 산객들이다. 주목 군락이 겨울의 풍경을 아름답게 할 것 같다.

 
비로봉에서 상왕봉 가는 길은 백미다. 산길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자작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상왕봉까지 가면서 오르막은 느슨하게 이어졌다. 자작나무 잎과 같은데 줄기는 하얐지 않다. 같이 하신 분이 자작나무가 하얀 이유를 설명한다. 나무가 살기 위하여 줄기가 하얗게 되었다고 한다. 겨울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 원산지 자작나무는 눈에 의한 설화를 이겨내고자 스스로 하얀 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눈이 많은 지역에 자라는 것이 자작나무다. 자작나무의 수피도 처음에는 다른 보통 나무처럼 갈색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갈색 껍질은 벗겨지고, 수피에 함유되어 있는 '베툴린산(betulinic acid)'이라는 물질이 빛을 반사해서 흰색 빛깔로 보인다고 한다.

오대산은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고 하였는데 이 구간이 될 것 같다. 가을에 다시 한번 오고 싶은 구간이다. 고사목이 있고 고목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무들이 다양한 모양을 만들고 있어서 그것을 담아 본다. 함께한 두 분이 고마워한다. 이 길을 지나면서 다양한 고산지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고 하였다.


상왕봉 정상석에도 날개미가 장악하고 있다. 돌무더기 위에 완전히 자리 잡고 날고 싶은 욕망을 불태우고 있다. 어제까지 내린 비로 인하여 젖은 날개를 말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르고 내리면서 두로령까지 가는 길과 탐방지원센터로 가는 삼거리를 만났다. 이제 상원사 주차장까지 6km다. 이제는 1시간 정도면 주차장에 도착할 것이다.

부지런을 떨면서 내려간다. 해발 1400m 지점에서 해발 860m 지점까지 내려가기 위하여 길게 내려간다. 길게 내려가는 만큼 급하게 내려가지 않고 천천히 해발을 떨어뜨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려가는데 암자에 기거하는 스님이 자동차를 타고 내려간다. 이 스님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이 길은 반듯하게 정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비로봉에서 만났던 캠핑카를 타고 오신 분을 만났다. 그분들도 이제 도착하였다. 나나 그분이나 유사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빠르게 이동을 할 수 있다면 비로봉에서 바로 내려오는 것보다 상왕봉을 둘러서 오는 것이 무릎에는 보다 효과적이라고 본다.


어둠이 가기 전에 서울로 가야 하므로 서두른다. 상원사에서 출발하는 버스 뒤를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월정사를 지나고 삼거리를 지나고 진부 IC로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든다. 서울로 오는 길의 고속도로는 수시로 구간단속이 시행되고 있다. 그만큼 위험 구간이 많다는 것이다. 조심조심 서울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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