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보여행 강화나들길 5코스, 14코스

3일차

by 김기만

3일 차다. 외포리에서 시작하여 강화읍으로 간 후 철종대왕의 외갓집까지 가볼 것이다.

외포리에서 강화읍까지 걷는 길은 다시 걸어도 좋은 길이다. 산길도 있고 마을길도 있고 테마도 있다. 인근에 고려산도 있고 하여 많은 사람이 찾는다. 강화의 중심부에서 서쪽 끝인 외포리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나는 반대로 걷는다. 친구가 오늘은 일정이 있어서 혼자서 걷는다. 산을 걸으면서 혼자서 걸으면 이렇게 걸음이 빨라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강화나들길을 운영하는 주최 측에서 강화나들길을 여행시 유의사항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해야 한다는 두 번째 유의사항을 어긋난 것이다.


* 강화나들길 여행시 유의사항

1. 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2. 여러 사람이 함께 여행하기 바라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3. 해안길에서는 밀물과 썰문 및 군사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을 하십시오

4.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기 바랍니다.

5. 강화나들길 시간은(하절기 09:00- 18:00, 동절기 09:00 - 17:00)입니다.

6.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나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7.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8.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 바랍니다.


고려원종이 몽골에 복속하여 개경으로 환도하자 강화군에서 삼별초가 봉기하였다. 이들은 1270년 강화도에서 전남 진도로 이동하여 항쟁하였으며 제주도까지 옮겨 여몽연합군에 무너질 때까지 항쟁하였다고 한다. 외포리에는 이들의 항쟁을 기념하기 위한 항쟁비를 1993년 설립하였다고 한다.

오늘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로 가는 배를 보면서 출발한다. 조금 있으면 저 배를 타고 석모도를 들어가서 걸어야 한다. 외포리는 옛 동네이면서 어촌이자 선착장이 있는 동네라서 굿당이 있다. 섬에 감면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매년 굿을 한다. 이곳도 동일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굿당까지 오르는 길은 복잡하다. 산 위에 가기 위하여 옛 마을길의 골목을 지나야 하는데 굿당으로 향하는 길에 이정표가 잘 정리되어 있다. 서울에 북촌이나 서촌, 동촌 등에 가면 골목이 관광자원이 되듯이 이곳도 관광자원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나들길 이정표가 잘 정리되어 있어 부담 없이 따라간다. 굿당이다. 어업을 주로 하는 정포마을과 농업을 주로 하는 대정마을 주민의 안녕과 생업의 번창을 위하여 3년마다 한 번씩 3일간 마을 굿을 한다고 한다.

굿당을 지나서 산을 넘어서 덕산 산림욕장으로 방향을 잡아간다. 기도원이 산아래에 있고 임도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산 정상을 한 번 보고 갈 것인지 산림욕장으로 갈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나들길을 걷는 만큼 산림욕장으로 방향을 잡고 간다. 잣나무 지구, 낙엽송 지구가 있는 등 다양한 풍광을 볼 수 있고 삼림욕은 덤이다.

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나무가 너무나 관리가 잘되어 있어 그림으로 잡아본다.

내가면사무소와 초등학교를 지나 내가저수지 둑을 올라서 감상을 해본다. 고려산도 보이고, 혈구산도 보인다. 저산들의 계속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을 모아 저수지를 만들고 근처 간척된 땅에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규모면으로 강화에 5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 같다.

내가저수지를 끼고 걷다가 보니 내가 지석묘다. 강화의 고인돌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내가 지석묘도 그중의 하나로 고려산 서쪽 낙조봉 끝자락 위치하고 있으며 총 11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덮개돌이 밀려나 있고 받침돌도 한쪽면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나 2000년 실시된 발굴조사에 의해 북방식 고인돌 형식으로 확인되었음 그중 가장 크기가 크고 위쪽에 위치한 고인돌을 내가지석묘이며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7m, 너비 3.35m, 두떼 50cm이다.

이웃한 낙조대는 나들길을 걸을 당시에는 석모도를 자동차를 이용하여 접근이 불가능하였기에 낙조를 보기 위하여 이곳을 많이 찾았으나 요즈음에는 자동차를 이용하여 석모도로 많이 간다고 한다. 낙조대는 고려산에서 능선을 따고 걷다가 마지막 줄기에서 멀리 볼 수 있는 대가 형성된 것으로 석모도 이외에의 섬이 없이 낙조를 볼 수 있다.


이제는 유적은 볼 수 없고 강화도의 농촌 모습을 볼 수 있다. 혈구산과 고려산이 가로막은 곳에 언제나 고갯길이 있듯이 이곳도 고갯길이 있으며 이름이 고비 고갯길이다. 예전에 내가면 사람들이 강화읍을 갈 때 사용하던 길이라고 한다. 요즈음은 별도의 찻길이 있어 이 길은 잊혀진 길이 되었지만 나들길로 사람들이 다시 다니고 있다.


고려산을 올라가지는 않지만 홍릉을 보기 위하여 약간 우회를 한다. 고려의 능으로 곤릉, 가릉, 석릉 등이 있지만, 홍릉은 강화읍에 가장 가까이 있고 재실도 있는 등 원형을 보기에 더욱 좋은 능이다. 고려 고종의 능이다. 고려시대의 능의 특징인 3단 구조를 갖고 있고 문인상과 무인상 등이 있는 등 폐위된 석릉과 차이가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고려시대 왕릉 중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능은 이곳의 4기와 고양시의 고릉(공양왕릉)을 합쳐 5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곳에는 인천시 청소년 수련원이 위치하여 인천시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산을 내려가면서 보니 이제 고려산을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다. 고려산은 4월에 많은 사람들이 진달래를 보기 위하여 찾아온다. 고려산의 진달래를 보는 것인지 사람들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국화저수지를 만난다. 국화저수지 주변에는 갈대가 많이 자라고 있다. 국화저수지를 내려서면 강화고등학교이고 서문이다. 서문 안쪽에는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연무당 옛터가 있고 개울에는 돌로 쌍은 강화석수문이 자리 잡고 있다. 강화산성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강화읍에서 교동도 등으로 가는 찻길이 바로 옆에 있다. 서울에서 보면 숭례문이나 흥인지문 옆으로 자동차가 다닌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남문을 거쳐 강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5코스는 종료한다.

남문은 숙종 때 건립되었으나 1955년 폭우로 허물어져 다시 복원한 것이다. 남측 누각에는 ‘江華南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북측으로 ‘晏波樓’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복원 당시 총리가 쓴 것이라고 한다,

이제 5코스가 종료되었다.

강화읍내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이동시간을 최소화하여 하루에 두 코스를 이행한다. 이번에는 철종의 외갓집 가는 길이다. 철종은 왕이 되기 전에 강화에 살았으며 그가 살았던 집을 그가 떠난 후 용흥궁이라고 하였다. 강화도령 철종이 살던 용흥궁은 1코스에 있어서 중첩된다. 하지만 빠르게 용흥궁으로 이동하여 읍내를 가로지르는 길을 건너 강화산성의 남장대로 향한다.

우리 조상들은 느긋한 것 같지만 실제 그렇게 느긋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평지로 가면 하루가 걸릴 길을 산을 넘어가면 반나절이면 된다고 하였을 때 느긋하게 하루를 걸어가지 않고 반나절만에 도착할 수 있는 산을 넘어갔다. 이것은 우리에게 수레나 말 등을 이용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강화 사람들도 남장대를 올라가면서 힘들다고 할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약수터에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샘터에서 물을 마시기도 한다.

강화의 남산을 넘어서 철종은 외갓집을 간 것이다.

남장대에 도착하시 나들길 15코스가 또 있다. 15코스는 제외시키고 14코스를 가야 한다.

성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데크를 잘 정리하여 놓았다. 나들길을 만들면서 철종의 첫사랑길이라고도 안내를 하였다. 이제 14코스와 15코스를 잘 구분하여 철종 첫사랑길로 가야 한다. 철종은 이곳에서 농사꾼으로 원범이라는 이름으로 살았고 양순이라는 첫사랑을 샘터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첫사랑길이라고도 한다.

철종은 왕이 되고 난 후 왕비와 후궁이 있었는데 첫사랑을 어떻게 잊었을까? 왕이 된 후 첫사랑을 궁전으로 불러들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고 드라마 등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MBC의 궁S라고 한다.


남산을 내려와서 철종의 외갓집으로 가기 위하여서는 강화의 농촌 풍경을 만끽하는 것이다. 찬우물이 있다. 이곳은 샘터다. 이곳 주변에 막걸리가 유명하다. 나는 술을 먹지 못하여 그것이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다.

철종 외가를 가는 길은 그저 아쉬운 듯 아쉬운 듯 강화의 풍경을 보여준다.

철종의 외갓집은 1853년(철종 4)에 조선 제25대 철종이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에게 명하여 지은 기와집으로, 철종의 외척인 염보길(廉輔吉)이 살았으며 원래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둔 H자형 구조의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행랑채 일부가 헐려 몸체만 남아 있다. 집 뒤에는 염씨 집안의 묘가 있다. 일반 사대부 집의 웅장한 규모와는 다르게 법도에 맞도록 고졸(古拙)하게 지은 건물이어서 양반가옥에서 볼 수 있는 기품과 화려함은 없으나 단아하고 고풍스럽다. 평면 구성은 경기 지역의 사대부 가옥 형태를 따랐으나 안채와 사랑채를 一자로 연결시켜 안채와 사랑채의 공간을 작은 화장담으로 간단하게 나눈 점이 특이하다. (출처 : 두산백과)


철종 외갓집을 나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 강화읍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 정류장을 찾았으며 강화읍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복귀하였으며, 강화시외버스터미널에서 3000번을 타고 집으로 복귀를 하였다.


5코스는 긴코스였고 14코스는 짧은 코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