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15코스는 중첩 구간이 많다. 강화산성을 순환하는 코스라서 그렇다. 그리고 코스도 짧다.
하루에 통상 2개 코스를 하나 이날은 1개 코스만 하였다. 또한, 15코스는 예전 코스와 지금코스가 다르다. 예전에는 성곽을 다 돌수 없었으나 요즈음은 대부분을 돌 수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남한산성을 일주하듯이 강화산성도 일주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강화산성에 대하여 알고서 시작하여야 한다.
강화는 한양 또는 개성이 적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이를 대체할 수 있으면서 방어할 수 있도록 성을 건설하였다고 보면 된다.
강화읍은 북쪽, 서쪽, 남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를 기반으로 성을 남쪽과 동쪽으로 쌓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은 평지에 성을 쌓지 않고 산에 성을 쌓은 것이 기본이고 강화도 그렇다. 자료를 찾아보니 강화산성은 내성과 중성 및 외성의 3중 성곽으로 축조되었으며 내성은 현재 사적 132호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안내표지를 보면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년에 도읍을 강화로 옮기고 궁궐을 지을 때 도성도 함께 쌓았는데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 중성, 회성으로 이루어졌으며 1232년부터 축조되었다. 이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의 강화산성이다. 원래는 흙으로 쌓았으나 조선 숙종 3년에 현재와 같은 석성을 이루었다. 성의 주위 길이는 7,122m이며 4개의 대문, 4개소의 암문, 2개소의 수문, 2개소의 성문 장청이 있었다. 남문은 안회루, 북문은 진송루, 동문은 만후루, 서문은 첨회루이다
중성과 외성은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언급하기로 한다. 오늘은 내성을 위주로 걷기 때문에 이를 언급하였다. 3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남문에서 출발한다.
사실 5코스를 걸을 때 서문, 남문, 1코스를 걸을 때 동문과 북문을 거쳤고. 14코스를 걸을 때 남장대도 거쳤다. 하지만, 오늘은 전체적으로 강화산성을 한 바뀌 걷는 길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해당 문에 대한 소개도 한다.
처음 남문이다. 남문은 안회루이다. 남문으로 가기 위하여 버스터미널에서 개울을 따라 간다. 남문 가는 길로 나타나고 남문에서 나들길 안내도 있다. 강화산성에 대한 안내도 있다. 강도남문이라는 누각명칭이 붙어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허물어졌으나 1974년 복원하였다.
남문을 지나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남장대에 도착하게 된다. 성곽은 최근에 복원하였다. 화강암으로 된 성벽도 복원이 많이 되었다. 성벽이 마을 근처에 있으면 집을 짓거나 담장을 짓는 데 사용하게 위하여 반듯반듯한 성벽을 만들었다가 허물어진 곳에서 갖다가 사용한다. 혹 집에 주춧돌 등으로 사용되던 돌들이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 이러한 이유인 것이다. 성곽길은 어디에나 가파르다. 어디에나 편한 무엇인가를 사용한다 그래서 문화유적이 붕괴되고 그것이 없어진다.
남문에서 남장대까지 올라가는 성곽길은 어느정도까지는 화강암으로 성곽을 구성한 후 화강암은 사라지고 토성만이 남았다.
남장대까지 가면서 힘들게 갈 수밖에 없고 산의 능선 중 가장 힘든 구간에 성벽을 쌓아야 적의 칩입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우리나라 성벽 중에 그래도 실제 전투에서 사용된 성벽은 남한산성이 유일하고 다른 지역의 성벽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남장대는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를 담당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허물어진 것을 2010년 복원했다고 한다.
남장대를 지나 서문으로 가는 길은 성벽을 넘어서 갈 수 있게 데크를 설치해 놓아 성벽을 보호하고 있다. 북악산의 성벽도 이렇게 보호되는 것을 보았다. 사실 이곳이 나들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길을 많이 헤매는 곳이다. 철종 외갓집 가는 길과 강화산성을 한 바퀴도는 코스인 15코스가 겹치는 구간이면서 내려가면 올라가는 것 같고 올라가면 내려가는 것 같은 곳이다. 코스의 색깔을 잘 인식하면 문제가 없는데 그것이 그렇지 못한 것이다.
조금 내려가면 원래 강화산성에는 4개의 암문이 있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암문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서문을 갈때에는 산을 돌아 갔으나 요즈음은 성곽을 따라간다. 성곽을 따라 가는 것이 강화산성을 알 수 있고 강화산성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멀리 국화저수지의 물이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문까지 가면서 이성곽길을 가다가 갑자기 낭터리지를 만나는데 성곽길이 오르막인 경우에는 가파르더라도 올라갈 수 있지만 내리막은 우회를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군에서는 이러한점을 감안하여 가파른 성곽길 끝 지점에 우회로를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부분은 북장대를 지나서 동문으로 갈때도 똑 같다.
내려가면 강화문화원이고 강화문화원 인근은 강화읍의 체육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곽은 중간에 잘려 있다. 이러한 성곽이 석수문을 거쳐 서문에 도착하게 된다.
국화저수지에서 나오는 물이 이곳에서 냇가를 형성하고 있다. 공원 옆을 거닐면서 냇가를 건너면 서문이 있고 수문도 있다.
첨회루 (서문)서문은 1977년 강화지역 국방 유적지 정화사업을 하여 복구가 시작되었고 2011년 북쪽과 남쪽으로 연결되는 석성이 모두 복원되었다. 바깥쪽에 첨화루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서문 앞에는 강화에서 외포리로 가는 길과 하정면 쪽으로 가는 길이 삼거리를 이루고 있다. 서문 뒤에는 연무당 옛터가 있다. 연무당은 조선과 외국이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운양호 사건에 따른 강화도 조약이 맺어진 장소라는 1867년 회담 기간 중 일본군은 위압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보초와 기관총을 연무당 옆에 배치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석수문은 조선 숙종 37년(1711)에 강화산성의 내성을 쌓을 때 연결하여 처음 설치하였으나, 광무 4년(1900)에 갑곶 나루터의 통로로 삼기 위하여 개천 어구에 옮겼다고 하며 그 뒤 1977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길이는 18.2m이고 높이는 2.7m, 너비는 4.7m이다. 무지개 모양의 수문이 3개이며, 화강암을 다듬어 쌓았다.
북문으로 가기 위하여 방향을 튼다. 이전에는 강화여고 뒤로 갔으나 이제는 성곽이 형성되었던 부분으로 이동을 한다. 향교 뒷산을 가는 길이다. 강화 사람들은 향교 뒷산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으나 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나무들이 장악하였던 성벽에서 나무를 제거하고 성곽을 복원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복원된 지점에서 1코스와 같이 걷는다. 산길 자체가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송로(북문)이제 북문이다.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정조 7년(1783년)에 강화 유수 김노진이 건립하여 진송루(鎭松樓)라 했다. 이후 전쟁으로 부서지고 석축만 남아있었으나 1977년에 복원하였으며 북문 앞으로 벚꽃길이 형성되어 있으며 강화 사람들은 벚꽃 축제도 개최한다고 한다.
북장대를 오르면 멀리 북녁땅이 보인다.
북장대를 오르는데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동문까지 1시간내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진행을 계속한다. 북장대를 1코스를 걸을면서 걸었기에 그렇게 감회가 새롭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장대를 지나 동문으로 이르는 길은 성곽인데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 성곽이 뚜렷하지 않았던 부분을 나무를 제거하여 이제는 성곽을 완성했다고 보아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곽을 내려오는 길은 성곽을 그대로 따라가면 동문이고 나들길 안내를 따라가면 고려궁지로 간다. 고려궁지를 지나 용흥궁을 거쳐 성공회성당을 지나야 한다. 고려궁지에서부터 동문까지는 1코스와 동일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고려궁지는 지나고 용흥궁을 가기전 성공회성당을 다시 담고 용흥궁을 스치면서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동문이다. 북쪽의 송악산, 동쪽의 견자산, 남쪽의 남산, 서쪽의 진고래로 연결된다. 고려시대 몽골의 칩입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로 수도를 옮겼을 때 처음 성을 쌓았다. 조전 전기에 개축하였으며, 1637년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들어왔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무너졌으나 2003년 복원하였다. 문루의 이름은 망한루이다.
마지막으로 각성문 천장에는 남문에는 주작 서문에는 백호 동문에는 용이 있었으나 북문에는 없었다.청룡 백호 주작 현무인데 현무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