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는 대동여지도에는 '석모로도(席毛老島)'라는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돌이 많은 해안 모퉁이'라는 뜻에서 '돌모로'를 한자화하면서 석모로(石毛老)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설이 있다. 조선 숙종 때에 간척사업으로 북쪽의 송가도(松家島), 남쪽의 매음도(煤音島)와 합쳐졌고, 일제강점기에는 남서쪽의 어유정도(魚遊井島)와 합쳐졌다. 해명산(海明山, 309m)에서 낙가산을 지나 상봉산(上峰山, 316m)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섬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며, 북쪽에는 성주산(264m)이 있다. 성주산이 분리되어 있는 이유는 성주산과 상봉산 사이의 송가평이 간척을 통해 형성된 농경지이기 때문이다. 이들 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200m 이하의 저평한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강화도가 있으며, 삼산연륙교(석모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서검도, 미법도, 주문도 등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바다 건너 북한 및 교동도와 마주하고 있다.
연륙교가 없던 과거에는 강화도 서부 외포리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야 갈 수 있었으며, 자동차도 선박에 실어서 건널 수 있었다. 요금은 왕복 기준으로 대인이 왕복 2,000원, 차량의 경우 경차가 14,000원, 승용차는 16,000원, 버스 등 대형 차량은 40,000원이었다. 2017년 6월 28일에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가 개통하면서, 항로는 폐선되었고, 이제는 육로를 통하여 직접 갈 수가 있다. 유명한 관광지로는 보문사가 있는데, 전등사 못지않게 유명한 곳이다. 예전 5 공화국 때 누가 열심히 이곳을 다녔다고 하여 더욱 유명한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2016년에는 석모도는 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나름 운치가 있었다. 카페리가 차를 싣고 건넜으며 사람들도 배를 타기 위하여 기다리다가 배를 타면 갈매기가 우리를 기다렸다. 갈매기가 새우깡 맛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갈매기는 여객선만 움직이면 따라왔다.
외포리는 석모도, 주문도 등으로 가는 손님들이 배를 타기 위하여 붐볐다. 강화의 어느 포구보다 붐볐다고 볼 수 있다. 천혜의 관광지가 있는 석모도에는 보문사도 있고 하니 사람들 왕래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외포리 선착장의 주차장을 찾았다. 걸어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터미널 등을 잘 이용하여야 한다. 당시에는 석모도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서 별도의 터미널을 운영하였다.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시작한 길이다. 배를 타면 호기심이 작동하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들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자주 접하는 기회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월미도와 영종도를 오가는 배편은 영종대교, 인천대교가 개통이 되었음에도 이를 이용하는 여행객이 있어 단절되지 않고 운행이 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연륙교가 지속적으로 건설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여행객이다. 현지 주민들은 연륙교가 있는 것이 더 편리하다. 하지만, 여행객은 이색 체험이 있는 만큼 운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속초의 띠배가 관광객을 끌어모으듯이 관광객을 위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로 석모도로 가던 풍경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갈매기가 날아와 새우깡을 채가는 장면도 이젠 볼 수 없다.
석모도 선착장에 도착하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제는 강화에서 시내버스가 들어왔다가 나간다. 석모도에 내려 제방길로 매음리 선착장까지 걸어간다.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고 바다 건너 강화가 보일 뿐이다. 이곳도 간척된 땅이고 논농사를 짓기 위하여 이곳도 물을 가둔다. 섬에서 농사는 물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문 선착장을 지나 어류정항 사이에는 예전에 염전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염전은 없어지고 칠면초 등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원래 초록색이었던 칠면초는 늦여름이 되면 붉은 보랏빛으로 변하며 시간이 더 지나면 분홍색의 기운이 도는 붉은색이나 자주색 또는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가을에 단풍놀이를 하러 산으로 가는 것도 좋지만 칠면초 군락지를 탐방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삼양 염전이라고 하는데 염전이 예전에는 석모도에서도 수지타산이 맞았으나 햇빛의 강도 등에 따라 어려움이 있어 거의 대부분이 전남 섬으로 이전하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어류정항에서는 겨울에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구간이라고 한다. 어류정항을 지나면 석모도에 유일하게 있는 민머루 해수욕장이 있는 민머류해변이다. 겨울이라 썰렁하지만 그래도 뜨거운 이 바닷가에서 더위를 식혔을 피서객들이 바닷가 백사장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 같다. 여기는 또한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썰물이 되면 천혜의 놀이터 갯벌에서 갯벌체험도 가능하다고 한다. 갯벌의 감촉이 부드럽고 조개, 게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갯벌체험도 가능하다고 한다.
낚시터를 지나서 걸으면 또 제방이다. 제방을 지나는 멋있는 조형물이 있다.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다. 조형물이지만 실물에 가깝게 만들어 놓아서 담아보았다. 이런 조형물도 기념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간척을 해서 그런지 아직은 농토로 변하지 않은 염생식물군락지도 있고 이제 염분이 빠져 논이 된 곳도 있었다. 교동도에서 본 그 넓은 논이라 그런지 특별한 감흥은 없다. 저수지도 있다. 그래서 멀리 보이는 산을 카메라로 당겨서 촬영하니 보문사 뒤편의 바위와 마애석불이 보이는 것 같다.
화남 고재형은 보문사에 대하여 이렇게 시를 지었다.
渡口錦山一路橫나루 어귀 금산은 한 길로 이어졌고,
普門寺下疊濤鳴보문사 아래쪽엔 겹친 파도 울어대네.
石舟不去眉巖立돌배는 멈췄고, 눈썹 바위 서있으니,
云是梵王窟宅成범왕과 석굴이 이뤄졌다 말을 하네.
보문사 입구는 어는 관광지나 사찰 입구나 비슷하게 복잡하다. 시내버스 정류장과 주차장, 음식점들이 여행객들을 부른다.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국내 3대 관음 성지로 꼽혀 매년 많은 신도가 보문사를 찾는다. 사실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림암은 수도권의 인구 밀집도보다 약하기 때문에 관광객 등이 있고 신도를 중심으로 찾지만 보문사는 수도권이고 현재는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 눈에 띄는 것은 보문사 석실이다. 자연 암벽 아래에 석실을 마련하고 나한상(羅漢像)을 봉안하여 일명 나한전이라고도 부르는 천연석 굴 사원이다. 크기는 가로 11.3m, 세로 8m, 높이 4m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설치하고, 동굴 안에 반월형 좌대를 마련하였다. 탱주(撑柱) 사이에 21개의 감실(龕室)을 두어 석가모니불, 미륵, 제화갈라보살(提和渴羅菩薩)과 나한상들의 석불을 안치하였다. 표지석에 보면 신라 선덕여왕 4년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했고 조선 순조 12년에 다시 고쳐 지은 석굴사원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신라 선덕여왕때 어떤 여부가 고기잡이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 대로 모셨더니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도 기록되어 있다.
일주문에서 이어지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우측에 커다란 은행나무, 1975년에 주조한 범종, 윤장대, 극락보전, 경내에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를 들은 600년 된 향나무, 300명의 승려가 사용한 맷돌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면 보문사의 마애석불좌상을 만나게 된다. 마애석불좌상은 배선주 주지스님과 이 회의 스님이 함께 바위에 새겼다고 한다. 마애석불좌상 위에는 사람의 눈썹같이 생겼다고 해서 눈썹바위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수능 시절이 되면 갓바위와 같이 많은 사람이 기도를 드리는 도량이 된다고 하였다.
석모도의 주봉은 해발 327m의 해명산이지만 보문사를 품에 안고 있는 낙가산이 더 유명하다. 보문사에서 마애석불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가면 낙가산으로 오를 수 있다. 낙가산∼상봉산(316m)으로 이어지는 종주산행은 1시간이 30분이 소요되었다. 처음만 경사가 급하고 종주산행은 경사가 완만해 완만하였다.
보문사 뒤쪽의 눈썹바위에 올라 서해 낙조를 볼 수 없었으나 서해의 경치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낙가산을 올라가는 것은 나들길이 아니다. 보문사에서 종료되는 데 나들길을 걸으면서 석모도 전체를 볼 수 있는 낙가산에서 해명산을 가거나 상봉산을 가는 것을 적극 권고한다. 해명산을 가거나 상봉산을 간 후 산을 내려가면 길을 만나고 거기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 위치까지 이동한 후 동촌을 가거나 상주 버스종점으로 이동한 후 나들길을 걸으면 된다.
우리는 상봉산을 간 후 하산하여 삼산면 사무소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상주산 쪽으로 이동하여 상주산을 한 바퀴 돌고 석모도 동쪽 해안을 따라 걸어 석모도의 나들길을 완성한 바 있다. 보문사에서 나들길을 종료한 버스를 타고 석포 여객터미널 등으로 이동하여 상주산 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석모도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상주산은 석모도의 세 번째 산이다. 264m의 높이나 지명도를 보더라도 삼산면의 삼산三山 중 막내다. 상주산은 석모도에서 북쪽에 따로 떨어진 산이다. 석모도는 고려 때부터 최근까지 오랫동안 간척을 해왔는데 상봉산과 상주산 사이의 평야도 간척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능선이 이어지지 않는다. 상주산은 옛 송가도(松家島)의 주산이라는 뜻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이 산에서 자란 소나무를 가져다가 기둥과 지붕의 재료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버스종점에 도착하자마자 상주산을 오르지 않고 상주산을 한 바퀴 도는 순환코스를 순환하고 동촌까지 걸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상주산을 오르는 것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포기하고 순환하였다. 상주산 숲길을 걷는 것이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웃한 교동도도 보고 강화도도 본다.
동촌으로 오면서 보니 섬이 하나가 있다. 집도 있다. 저기를 어떻게 들어갈까? 크기가 5 만평 정도 되는 섬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섬 전체에 마치 성곽을 쌓은듯한 돌담이 있다. 옛날에는 사람이 살았는데 요즈음은 살지 않는다고 한다. 찾아보니 5 공시 절인 지난 89년, 정권 실세인 이복형씨가 섬돌모루에 대한 거창한 개발사업계획을 세웠고. 골프장, 콘도미니엄, 양어장, 야외수영장 등 8필지에 휴양시설을 마련하기로 하고 회원 500명을 모집, 회원당 5백만 원을 받고 분양까지 마쳤으며, 지난 92년 호안공사까지 마치고 야산의 수종을 소나무로 개량하는 한편 인공폭포와 콘도미니엄 2채를 지어 당시만 해도 보잘것없는 조그마한 섬에서 관광휴양지로 다시 태어난다는 기대를 안고 있었지만 허가도 없이 개발계획이 진행됐던 사실이 들통났다. 그 결과 개발계획이 진행됐던 사실이 들통났다.
현재 섬돌모루에 들어선 양어장, 인공폭포와 호수, 수영장은 일부가 허물어진 채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고, 2채의 콘도미니엄 중 한 채는 건설이 마무리 안 된 상태로 방치돼 있고 완공된 나머지 한 채는 숙박시설로 허가가 나지 않아 영업은 물론 전기마저 끊긴 상태라고 한다. 당시의 개발업자는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라도 이 섬을 복원하여야 한다고 본다. 아니 정부가 방치를 할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섬으로 다시 살아나게 해야 한다고 본다.
걸어서 걸어서 석모도를 다녔다. 그리고 현재 석모도는 자동차로 다닐 수 있다. 하지만 한번 걸어보는 것이 더욱 재미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