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보여행 강화 나들길 12코스

주문도

by 김기만

이번에도 섬으로 간다

우리는 섬 하면 어떨까 어떤 느낌 일까 섬에 사는 분들은 생업이 어업 아니면 농업이다. 주문도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섬에 1박을 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배 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그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 들어가는 시간 나오는 시간이 제한적이다.

주문도는 숨겨진 보물이다. 캠핑차가 있다면 더욱 그만인 섬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강화도 서남부 작은 섬으로 면소재지 주문도리이며 서북에서 동남으로 열을 지어있는 말도, 볼음도, 아차도, 주문도이다. 서도면은 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교동군에서 소속하여 서도면이라 하더니 1914년 군면 통폐합 때 교동군에서 강화군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도면이라는 명칭은 면을 구성하는 4개의 도서가 서해상에 분포되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되며 모든 도서가 낮은 구릉지와 저지대로 되어 있는데 주문도에서 가장 높은 봉구산도 146m에 불과할 정도의 저지대이다. 이 섬에는 해수욕장이 세 개나 있다. 300명도 살지 않는 섬에 해수욕장이 세 개다. 배는 아침에 한번 들어가고 저녁에 들어간다. 저녁에 들어간 배는 다음날 나온다.

'주문도’라는 이름은 임경업 장군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 임경업 장군이 사신으로 중국으로 가던 중, 조선 땅에 마지막으로 발을 떼게 되는 주문도에서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올렸다. 그래서 아뢸 주(奏), 글월 문(文)을 써서 주문도(奏文島)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주문도(注文島)로 바뀌었다고 한다.

나들길을 걷는 사람들은 첫배로 들어갔다가 그 배가 나올 때 나와야 1박을 하지 않고 섬을 둘러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여유롭게 섬을 둘러보고 다음날 나오는 배를 타고 나오면 된다. 다음날 나올 때 볼음도를 들려서 섬을 둘려보면 된다.

우리는 무박이다. 다음날 일정이 항상 있다. 토요일만 움직인다. 토요일 강화 외포리에서 출발하는 배를 탄다.

볼음도는 교동도를 들어가는 것과 같이 신고서를 작성하여야 하나 주문도는 필요 없다.

주문도에 도착하여 바쁘게 걸어야 하지만 볼 것은 보아야 한다. 주문도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들어온 배도 선착장에 정박해 있지 않다. 승객을 하선시키고 배를 바다에 정박시킨다.

주문도 나들길은 도로를 따라 걷는다. 그래서 섬을 구경할 수 없을 것 같아 일탈을 해서 섬의 남쪽까지 걸어 보았다. 나들길 안내에서도 걷는 길로 안내되어 있어 이를 이용해 보았다. 주문도에는 유명한 것이 해수욕장, 낚시 명소가 있고 살꾸지 해변도 있다.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핀다고 한다. 우리가 2월에 갔을 때 해당화는 볼 수 없고 나무만 보았다. 해당화는 지름 6∼9㎝의 꽃이 5∼7월에 홍자색으로 피며, 향기가 강하고 꽃자루에는 자모가 있고 과실은 가장과(假漿果)로 구형이며 8월에 황적색으로 익는다고 한다. 해변의 모래밭이나 산기슭에서 자라며 우리나라의 전 해안 사지에서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드물지만 주문도에 가면 흔하다.

이정표가 정겹다고 해야 하나 특이하다고 해야 하나 섬에 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잘 만들어 놓았다. 섬사람들은 섬에 살아서 필요 없지만 섬에 오는 사람들은 필요하다.

서도면 소재지인 관계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가 있다. 이곳에 공부하는 친구들은 도회지에 있는 친구들에 비하여 학과성적은 떨어지지만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학과성적이 최고는 아니라고 본다.

주문 저수지를 지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거주하는 주문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는 기존에 사찰 성당이 명소였으나 교회가 명소가 돼있다.



강화군청 홈페이지에서 서도 중앙교회는 1923년 교인들의 헌금으로 지어진 한옥 예배당이다. 정면 4칸, 측면 7칸으로 구성된 팔작지붕의 건물인데, 종탑부로 사용되던 건물 전면의 구조물까지 합하면 측면이 8칸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으로 구성된 종탑부의 상층 지붕은 우진각 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내부의 전면에는 강단 위에 설교대를 두었으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이 건축물은 우리 전통 목조건물의 가구 형식을 바탕으로 서양 교회를 지었다는데 큰 의미를 지닌다. 주문도지역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1893년 무렵이었는데, 1902년 윤정일이 감리교 전도인이 되어 주문도에 들어가 전도활동을 한 후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도 중앙교회가 1905년 문을 열었다. 1923년 교회 신도의 헌금에 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되었으며, 1978년 주문 교회에서 서도 중앙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주문도의 중심에 있다가 이제는 주문도의 동남쪽 해안으로 이동하여 앞장술해수욕장을 거쳐 남쪽 끝인 살꾸지까지 간다. 앞장술해수욕장이 목적이 아니고 주문도 전체를 탐방하는 것인 만큼 살꾸지 가는 것이 주목적이다. 썰물 시간이 더욱 이동이 편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밀물이었으면 살꾸지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살꾸지에서는 밀물이었으면 멋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인데 썰문이라 갯바위만 보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살꾸지를 지난 뒷장술해수욕장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보니 더욱 멋이 있다. 잔잔한 모래가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그 위에 살짝 물이 있으면서 멀리 조그마한 섬이 홀로 우뚝 솟아 있다. 친구랑 둘이서 물이 빠진 바닷가에서 이리 걷고 저리 걷고 해 본다.

물이 빠진 해수욕장이 갯벌이 아니고 모래가 그대로 우리를 반겨 준다. 저 멀리는 갯벌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갯벌생물인 조개 등을 채취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저 모래 위에서 축구공하나만 있으면 마음껏 놀 수 있다. 아니 저곳에서 뛰어도 다치지 않으니 어린이들이 이곳에서 놀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이 들어오지 않는 모래도 있고 물이 빠지면 더욱더 많은 모래사장이 되어 피서객들을 기다릴 것이다. 장술이란 뜻은 은모래가 쌓여

백사장이 길어 파도를 막아주는 언덕이라 뜻이다.


사람들은 배로 들어오는 사람이야 한정적이고 한정적인 사람들에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다만, 들어올 때는 섬인 만큼 필요한 물자를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물도 필요한 만큼을 싣고 와야 한다. 그런 만큼 차량으로 캠핑을 하여야 될 것이라고 본다. 해수욕장 뒤에는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다.

물이 나가면 대빈창 해수욕장과 연결되며 총 4Km 정도로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린다. 대빈창이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모래사장이라면 이곳은 순수 모래사장이다.

이제는 대빈창이다. 대빈창에도 해수욕장이 있다. 주문도의 서쪽은 해수욕장의 연속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대빈창은 중국 대륙과 교역 시 기항지이며, 송나라와 명나라의 사신이 기착하였던 곳으로 첨사진과 무관만호격을 두어 관리하였다고 한다. 뒷장술 해수욕장과 힘께 피서철이면 많은 피서객이 즐겨 찾는 해안으로 약 1km의 백사장이 뻗어있다. 간조 시에는 조개류들을 채취하며, 주변이 송림으로 연결되어 있어 피서지로서 천해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빈창 해수욕장에 2km쯤 펼쳐진 백사장을 걸어보는 일을 빠뜨리면 안 된다.

어떻게 보면 주문도에서 서쪽으로 연결된 부분은 서해 5도를 제외하고는 중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주문도는 중국으로 가는 전진기지로서 상당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서양문물이 첫발을 디딘 곳이기도 하다.


대빈창 해수욕장을 나오자 해당화 나무들이 즐비하다. 주문도 선착장으로 가야 한다. 배 시간에 맞추어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1시간도 남지 않은 배 시간에 천천히 주문도의 마지막을 돌아본다. 주문도에 신기한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은 데 6시간 남짓을 돌아보고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선착장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매점에 아직 판매하시는 분이 없다. 조금 있다가 매점을 운영하면서 배표를 판매하시는 분이 오신다. 이 분들은 동네 주민들이며 마을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운영을 한다고 하였다. 바다에 정박하였던 배가 들어온다. 아쉬움을 남기고 주문도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