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포인트 찾기》〈8화, 미지의 세계, 카투사가 되다(2-1)〉
평택역에서 우리를 태운 미군 버스는 11월 중순의 자욱한 새벽안개를 헤지며 한참을 가더니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힌 미군 부대로 진입했다. 평택 카투사 신병교육대(KTA-KATUSA Training Academy)였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바뀐 언어에 당황스러웠다. 마치 시골 촌놈이 미국 공항에 홀로 내려진 느낌이랄까?
아무튼 신세계에 빨리 적응해야 했다. 논산훈련소에서 지급한 한국군 보급품은 모두 반납하고 새로운 미군 군수 물품이 지급됐다. 속옷에서 군화까지 모두 미제로. 이제 몸만 국산이지 말도 행동도 음식도 이제 모두 모두 미군 식이다.
KTA에서는 미군과 함께 생활하면서 알아야 할 미군 예절, 군사훈련, 미국문화 등을 3주간 학습하는 과정이다. 입교 며칠 후 기초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ALCPT(American Language Course Placement Test)를 봤다. 영어교육(ELT, English Language Teaching)도 1주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1주간의 전투임무훈련(WTT, Warrior Task Training)도 압축적으로 이뤄졌다. 모든 훈련에는 시험평가가 있었다. 서툰 실력이었지만 무난히 수료했다. 영어교육이야 그렇다지만 독도법, 구급법, 화생방, 사격 등 전투 임무 훈련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논산훈련소의 5주보다 짧기는 하지만 후반기 교육 3주는 눈 깜짝할 사이였다.
1981년 12월 12일 아침. 앞으로 2년 넘게 군 생활을 할 자대를 배치받는 날이다. 논산훈련소에서처럼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가봐야 그때 안다. 가장 많은 인원이 배치되는 동두천 보병 2사단 병력부터 빠져나갔다. 이어서 의정부, 대구, 평택 등에 배치된 인력이 빠져나갔다. 남은 건 두 명 나와 박 00 이병이다. 미군 병사와 카투사 선임병이 미군 밴을 몰고 와 우리를 픽업했다.
우리를 태운 밴은 평택기지를 나와 오산 수원을 지나 서울에 접어들더니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말해 주지도 않았다. 그저 박 이병과 눈으로만 교감할 뿐. 제일 마지막이 가장 좋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드디어 밴은 이태원을 지나 용산에 위치한 주한 미 육군 용산 게리슨 기지 (USAG, US Army Garrison)로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미 육군 정 000 사령부 예하의 여단인 000 군000단 본부 및 본부중대(Headquarters and Headquarters Company)였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했다는 것은 행운이다. 1951년 100% 신병으로 징집되다가 1957년 신병과 기간병을 혼합하여 선발했는데 청탁 비리가 유발하자 1968년부터 논산훈련소 신병을 대상으로 차출하게 되었다. 당시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 여러모로 풍족한 미군 부대에서 복무한다는 것은 대단한 매력이었다. 특히 구타는 물론이고 기합도 거의 없었다. 이러니 차출에도 운과 보이지 않는 손이 전혀 없었다고는 볼 수는 없다.
그러자 1982년부터 선발시험으로 바뀌었다. 내 바로 뒤 기수인 심 이병이 그해 12월 마지막 차출 병이었으니 나도 막차의 행운을 탄 셈이다. 이후로 81년 1월부터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한 이병부터 시험선발병으로 들어왔다. 미군 용병(傭兵)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후 카투사 시험은 20∼30:1을 치솟아 사법·행정·외무고시와 함께 판·검사보다 ‘카투士’ 되기가 더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1987년부터는 민간인 공개모집과 훈련소 차출을 혼용하게 되었는데, 시험은 영어 이해 수준(ECL), 국어, 영어, 윤리 등 시험을 봤다. 이도 잡음이 끊이지 않자 1988년부터는 100% 공개모집 방식으로 전환하고 토익(TOEIC) 성적을 선발기준으로 삼았다. 한국군을 선발하는 데 미국이 인정하는 영어시험에 고득점 한 사람이 한국군으로 선발하였으니 아이러니다.
이후 2004년부터는 신체 등급이 1∼3급인 현역 입영대상자로 공인 영어시험 성적(토익 780점, 텝스 299점, 토플 IBT 83점, G-TELP Level 2-73점, FLEX 690점, OPIc-IM2 이상, TOEIC Speaking 140점 이상, TEPS Speaking 61점 이상 - 2021년 기준) 이상인 미필 남성이면 지원할 수 있게 하여 추첨방식으로 선발하되, 지원 가능 횟수는 1회로 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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