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포인트 찾기》〈제07화, 군 입대 두 번 하다(2-2)〉
문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군대 간다면 눈물 콧물 다 빼고 ‘잘 다녀오마’ 하며 집을 나왔는데 군대 못 가고 속칭 ‘빠구’ 맞아 ‘귀향(징집 장소나 수용연대 신체검사에서 질병 등의 사유로 훈련할 수 없으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조치된 것이 창피했다.
밝은 대낮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어 어둡기를 기다려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왔다. 가족은 차지하고라도 동네 사람들 보기 부끄러웠다. 웬만한 일 아니면 두문불출했다.
그러기를 3개월. 드디어 두 번째 군대 가는 날 10월 19일이 되었다. 집결 장소는 예산역 광장. 첫차로 나와 장항선 열차를 타고 예산역으로 갔다. 입영 장정은 대천역 때보다는 적었다. 피부병도 나았던 터라. 무슨 얘기를 해도 절대 손들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논산훈련소로 가는 입영 열차를 탔다.
지옥의 시작이었다. 구호에, 군가에 계속되는 ‘얼차려’에 정신을 쏙 빼놨다. 연무대역에 내리자 더 심해졌다. 연무대역에서 수용연대까지 그리 멀지 않은데 그때는 왜 그리 멀었던지? 거의 절반 이상은 오리걸음으로 갔던 기억이다.
수용연대에 도착하자 거기에서 다시 정밀 신체검사를 했다. 모든 부위는 정상적이었다. 문제는 신장이었다. 신장계는 병역판정검사 때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군기가 바짝 들었던 나는 신장계에 올라 순간적으로 발뒤꿈치를 들었던 모양이다. 병역판정검사 때 185㎝였던 신장이 몇 개월 새 클 리도 없는데 188이 나왔다.
기준에 따르면 3급 보충역 대상이다. 판정관이 물었다. “현역 안 갈 수도 있는데 그리하겠나?” 단숨에 “아닙니다. 현역 가겠습니다” 그러자 두말없이 판정관이 “좋아. 현역 입영”하며 도장을 팍 찍었다. 10월 20일은 내 인생에 있어 첫 번째 터닝 포인트다.
31개월의 현역 군 생활은 혹독하게 시작되었다. 10월 21일 제26년대로 입소하여 본격적으로 한 달간 집중훈련을 받았다. 훈련이 얼마나 되었던지, 대변을 3~4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한 달간 지옥 같은 훈련이 끝났다. 훈련소 퇴소식은 마치 제대하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자대 배치받는 날. 11월 20일 저녁, 논산훈련소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고 군용 열차에 올라탔다.
누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물을 수도 없었다.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리는 거다. 열차에 올라타자마자 연신 군가를 부르란다. 악으로 깡으로 불렀다.
야간열차가 멈춰 서면 내릴 신병들을 호명한다. 호명되면 내리면 된다. 커튼이 내려져 차창으로는 어디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한참을 움직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고락을 함께한 훈련소 동기들은 벌써 자대를 찾아 많이 내렸다. 자리는 썰렁하기까지 했다.
열차가 다시 멈췄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내렸다. 처음 보는 버스에 타란다. 차창 밖으로 보니 평택역이었다. 나는 대체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