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의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영신사, 2026)
2026.1.21~1.25
임경선의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영신사, 2026)
책표지, 책등 심지어 간지에까지 써 놓은 'What I Think About When I Write'를 보면서 임경선 작가는《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을 것일까 되뇌었다. 분명 글을 쓰는 이론적 고찰은 아니다. 그렇다고 작문법도 아니다. 뭐랄까? 글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가 글에 대해 얼마나 진심인지, 또 얼마나 욕심이 많은 지가 곳곳에 묻어 있다. 반면에 독자와 세상의 관심에 대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도 시크하게 풀어낸다.
그는 첫 책을 친구에게 자랑하며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고 떠난 '이대 나온 여자' 엄마와 외교관 아빠를 따라 본의 아니게 10대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10대를 보낸 그에게 20대에서는 보통 사람에는 주지 않는 시련이 다가왔다. 여러 번의 갑상샘암 수술. 몸이 아파 대기업 마케터의 길을 접고 나서 잡은 유일한 지푸라기가 글이다. 그래서 그런지 페이지마다 진심이 녹아 있다.
체력이 약한 그다. 오죽하면 "책 원고를 쓰는 동안은 병원에 입원해서 삼시 세끼 밥을 받아먹고 팔에는 24시간 영양제가 들어가는 상태로 글을 쓰는 달콤한 상상을 한다"라고 하겠는가. 이 얼마나 글쓰기에 대해 진심인가. 그런 작가의 마음이 페이지마다 절절히 녹아 있다. 그의 말처럼 죽어 있는 납작한 글은 아무리 미사여구를 써도 와닿지 않고 읽히지 않고 겉돈다. 반면 살아 있는 입체적인 글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재미있다. 챗 GPT나 제미나이에게 부탁한 글을 읽어보라. 바로 이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마치 입맛이 없을 때 먹은 밥이 입안에서 각도는 것처럼 말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글쓰기에 대한 욕심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가끔은 정치나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쓰고 싶으면 쓴다. 때로는 '이 말은 꼭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치솟을 때가 있다. 쓰고자 하는 욕망이 두려움을 넘어서는 순간이다. 쓰고 싶은데 쓰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건 글 쓰는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다.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임계점에 다다랐는데 쓰지 않으면 병(?)이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우리 엄마들이, 아내들이 가지는 '화병'처럼 말이다.
나도 아주 가끔이지만 그럴 때가 있다, 그러면 써야 한다. 쓰고 나서는 보내야 한다. 먼저 조심스럽게 구독하는 중앙지에 보낸다. 대개 24시간 이내 받았다는 일상적인 답신이 온다. '좋은 글 감사한데 워낙 보내주신 분이 많아 게재가 안될 수도 있다'라는 내용들이다. 그러고 다시 이삼일을 기다린다. 글이 좋으면 '분량을 줄이던지, 늘이던지, 아니면 여기는 좀 수정하면 어떤지' 등을 전화나 이메일로 물어 온다. 한두 번의 피드백이 오면 십중팔구는 게재되어 세상이라는 무대에 올려진다. 중앙지에서 소식이 없으면 지방지에 보내고, 거기에서도 소식이 없으면 내 블로그에라도 게시해야 직성이 풀린다.
금과옥조 같은 일반론도 설파한다. 그에 말처럼 운은 재능과 노력이 충분히 입증되고 난 이후에 겨우 생길까 말까 한 일이다. 재능과 노력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행운이 와도 그걸 잡을 힘이 없거나, 그것이 행운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재능과 노력이 서로를 최대치로 상승시키며 교집합을 이루어 앞으로 나가고 있을 때 가장 강력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며 '귀인'들이 행운의 여신처럼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에필로그 같은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에서 그는 "들뜨지 않고 주제 파악을 잘하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아주 조금씩 더 잘 써나가고 싶다"라고 하며 마무리했다. 얼마나 멋진가. 글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진심과 진중한 욕심 그리고 글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이 한 문장에 담겨있다.
그의 첫 책이 궁금해 교보문고에서 찾으니 종이책이 없다. 하는 수 없이 e-Book 《 LOVE PARADOX 》을 구입했다. 20여 년 전 그의 첫 세상 나들이는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