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의 《다정소감》(안온북스, 2021)
장문의 산문집이다. 그래도 입말로 써서 쉽게 읽힌다. 혼비의 마음속을 훨훨 날아다닌 느낌이다. 안온하고 소소한 생각들이 연분홍 간지 사이사이마다 소담스럽게 쌓여 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줄곧 반장을 한 작가의 리더십 경력으로 보아 너무 페미니스트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다가 일본에서 만난 뿌맛뽕커리 같은 k를 좋아하는 했던 것을 보면 그리 편향적이지도 않다. 작가는 이기적인 개인주의자인 것 같으면서도 공동체 울타리의 안온함을 알고 나아가 우리라는 범용의 다정 패턴도 알려주는 마음속의 소소한 소용돌이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다정한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이야기처럼.
스튜어디스 경험이 그녀를 10년 동안 캐리어 두 개만큼의 세계 속에서 35킬로그램 미만의 무게와 함께 살게 했다. 〈조상 혐오를 멈춰주세요〉에서 여성들이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명절'은 '가부장제'라는 질긴 악습의 잔재를 집중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라면서 국어사전에 나온 제사의 정의를 빨간펜을 들어 이렇게 고쳐 써넣고 싶다고 했다. "(남자네 집안)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여자들이 동원되어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해봐야 전 부치는 걸 거드는 게 전부인 남자들이)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남녀 차별 집약적) 의식"
하지만 그녀는 공동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길지 않았던 여초사회의 경험이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튜어디스로 첫 비행 날 늦게 일어나 허둥지둥하는 데 새벽녘에 동료들이 와서 주는 도움을 받아들이면서 어쩐지 첫 출근인데도 떨리지도 않고 당당하게 펴지던 어깨를 경험하면서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이미 최고의 날을 경험한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인생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 중 내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붙드는 건 결국 다정한 패턴, 다정이 나를 구원하는 이야기였다"면서 "뻔한 이야기들도 하나하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해 뻔한 다정이란 없다"라고 했다. 그렇다. 다정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가 하는 마음과 행동의 노력이다. 그녀는 "가식의 영역 안에서, 비록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속속들이 모든 걸 말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노력과 노력이 만나 빚어내는 존중과 다정이 존재했다"라고 했다. 어찌 보면 가식과 진실의 경계가 흐릿해졌다고나 할까.
혼비의 말마따나 "타고난 나, 만들어진 나, 만들어져가고 있는 나, 모두가 다 나다. '본캐'도 '부캐'도 다 나다. 그러니 나와 너, 나와 우리 모두에게 서로가 이번 명절부터는 다정하자. 가장 가까운 부부와 자녀 지간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