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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인연 팜플로냐

18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기 06 - 순례 3일차

라라소아냐를 떠나면서 다시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게 계속 하다 보면 실수와 욕심을 반복하는 법이다. 앉아 있을 때는 참을 수 없이 아프다 걸으면 괜찮아지는 발에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어 가자, 그래도 18일 정도밖에 안되는데 초기에 적응하느라 힘든 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 기어이 오늘도 ‘한 마을 더’를 외치며 목적지를 지나치고 말았다.


순례 3일차와 4일차는 잘못 간 길을 돌아가는 긴 여정이었다. 순례 2일차, 오늘 목표는 ‘팜플로냐’(Pamplona)였다. 순례 초기에 만나는 북동부 스페인 나바라 주(州)의 주도인 팜플로냐는 순례를 시작한 지 3일만에 만나는 대도시였고 당연히 있어야 할 모든 것을 – 식당, 알베르게, 편의점, 마트 등 – 다 만나볼 수 있었다. 더구나 도시 자체도 꽤 예쁘고 공원도 잘 되어 있어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벤치에 앉아 책을 보거나 주변 관람을 하기에도 적당해 보였다.


하지만, 이 또한 다음 도시를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쉬었다가 바로 지나쳤으니 참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빨리 간 목적지에서도 결국 숙소를 찾지 못해 차로 구간을 스킵했다가 다음날 다시 스킵했던 곳으로 돌아와서 다시 그곳에서부터 출발하는 해프닝도 겪었다.


그 해프닝이 순례의 아름다운 순간 하나를 살렸다. 살다 보면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많다. 지나쳐 가기도 하고 일부러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알면서 가기도 하고 모르면서 가기도 하다.


공통된 것은 지나쳤을 때 한번쯤은 ‘그때 이리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고 후회한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때라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 다시 한번 그 길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어떻게 그때로 돌아가겠어’ 한다고 할지라도, 의외로 꽤 많은 경우에는 그런 ‘회귀’가 가능하다. 팜플로냐 해프닝은 바로 그런 게 가능했던 경우였다.



다시 혼자 나선 길, 두 한국 청년과 오락가락 마주치다


점심을 먹었던 트리니다드 드 아레. 북동부 스페인의 아름다운 소도시로 개울이 흐르는 옆으로 천년 이상 된 성당이 있다. 마을 광장에는 여러 레스토랑과 가게 등이 있어 점심과 필요한



라라소아냐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배낭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어제 한잔 한 두 친구는 아직 준비가 덜 끝났다며 있다가 길에서 보자고 한다. 순례길에선 이런 경우가 많다. 어차피 같은 길을 걷다보면 다시 만날 수도 있고 계속 붙어다닐 것 아니면, 한 순간의 좋은 길의 동반자가 된 뒤에 헤어지는 것이다. 이 친구들과는 그날 저녁에 숙소를 정하러 다시 만날 때까지 여러 번 길에서 서로 마주쳤고 그때마다 다시 반가운 인사를 하며 서로 ‘좋은 순례 되세요’ 하고 빌어 주었다.


라라소아냐에서 나온 길은 전원 평원이었다. 크게 힘든 구간도 없었으며 헉헉거리며 올라갈 만한 산도 드물었다. 스페인은 산지가 많은데 보통 하루에 산이나 언덕 2~3개는 기본적으로 만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산길을 만나면 당황하지만, 나중에는 갑자기 불쑥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나와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길을 가게 된다.


어차피 그 또한 내가 가야 할 길이고, 이정표가 있는 한 나는 그 길을 따라 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타향에 와서 내가 의지할 것은 그 이정표와 표지석뿐. 힘들더라도 이들을 따라 걷는 것이 내가 만리타향에서 안전하게 길을 마치는 방법이다. 삶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평지와 목장 등을 지나며 비가 갠 싱그러운 전원을 맛보았다. 비는 여전히 3일째, 내리다 말다 내리다 말다 했고, 우비는 아예 넣을 필요 없이 입고 다니거나 배낭 한 켠에 꺼내기 좋게 찔러 넣으면서 순례길을 다녔다.


두 한국 친구와 다시 마주친 것은 트리니다드 드 아레(Trinidad de Arre)라는 조그마한 중식지 마을에서였다. 천년 된 성당이 있다는 이 곳은 마침 성당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기도 한다는 곳이어서 하루쯤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알맞아 보였다. 하지만, 욕심쟁이가 해가 남아 있는데 그대로 하루를 접기엔 만무했다. 다행히 마을 광장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두 친구는 살것이 있다고 해서 다시 길에서 만나기로 했다.


순례길 여러 친구들과 SNS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한 분께서는 이제 하늘에서 순례길을 바라보고 계신다. 그분의 편안한 휴식을 기도드린다. (사진 = 트리니다드 드 아레 성당)



아침에 길을 떠나면서 잠시 도로길을 걸은 적이 있다. 순례 시작해서 한두 시간이 지났을 때였나, 평원이 끝나더니 갑자기 도로가 나타났다. 비는 한두 방울 흩뿌리기 시작했고 쌩썡 지나가는 차를 빼고는 온 천지에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였다.


그래도 도로변에 건물이 하나 있길래, 그 옆에 앉아 발걸음을 잠시 쉬며 한국의 친구들에게 카톡이나 SNS로 여행기를 업데이트했다. 그때 지인 한 분이 ‘버킷 리스트’에 있는 것을 하고 있다며 간단한 멘션을 남긴 바 있다. 그 분은 결국 그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지 못하고 하늘에 가셨다. 아마도 하늘에서는 별다른 고통 없이 이 세상을 보면서 마음껏 순례를 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각자 떨어진 길에서 조금씩의 순례를 하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여행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편안히 잠드시길, 하늘에서 편안히 쉬시길 다시 한번 기도드린다.



꼬인 길이 만들어낸 소중한 인연


앞서 얘기했듯, 3일차 순례길의 마지막은 원래 팜플로냐였다. 한창 지쳤을 때 도시 입구에 들어서고 한참을 지나도 끝이 나오지 않자 그때서야 이곳이 대도시인 것을 알았다. 카페에 앉아 차 한잔을 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고 해도 길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한 이름모를 공원에 앉아 있었다.


앉자마자 발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올라왔다. 제대로 걸어본 적 없는 중년의 아저씨가 3일간 산길, 평원, 도로 등 가리지 않고 근 80km 가까이 걷다 보니 온 몸이 탈이 난 것이었다. 빗길에 다녀서 그런지 젖은 운동화에 양말은 쉽게 쓸렸고 그래서 물집도 한두 개 잡히려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발이 정말 너무 아팠다.


순례를 떠나기 전 카페에서 신발은 내 발에 맞는 것이 좋다고 하고, 발이 움직이지 않게 꽉 매주거나 해야 물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두꺼운 등산양말 4켤레를 챙겨왔었다. 하지만, 걷다 보면 그 또한 느슨해졌고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신발 깔창을 2장 깔았지만 그래도 산길, 특히 자갈길은 참기 어려웠다. 나중에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갔으니 그 아픔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아파도 나는 이 도시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 도시 초입에는 꽤 많은 알베르게가 눈에 띄었지만, 지금 공원 인근에는 적당히 그런 시설이 보이지도 않고 그냥 나는 혼자였던 것이다.


팜플로냐에 들어가자 예쁜 경치도 잠시, 발이 너무 아파와 저 벤치에서 한참을 쉬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 한 마을 더 가기로 했는데 그게 길이 꼬인 원인이었다.



잠시 공원에 앉아 있다가 결국 오늘은 그래도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앱을 보니, 다음 마을인 시수르 메노르(Cizur Menor)에는 알베르게가 있어서 그것만 믿고 한 마을만 더 가기로 했다.


시수르 메노르는 팜플로냐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있는 작은 마을이다. 팜플로냐를 빠져 나가기전 대학을 지나치게 되는데, 여러 대학생들이 종알거리며 수업을 마치며 나오는 모습이 굉장히 귀엽고 자유로워 보였다. 이들처럼, 대학 캠퍼스에 앉아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오늘 마지막 코스를 위해 마지막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5km가, 마지막 5km가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산길도 아닌 곳에서, 나는 약 100m도 못 가 주저 앉거나 걸음을 멈추거나 했다. 목적지는 저 앞에 보이는데 더 이상 걸음을 옮기기가 정말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시수르 메노르에 마침내 도착했을 때 이제는 쉴 수 있겠구나, 했을 때 웬걸, 시수르 메노르의 모든 알베르게는 다 문을 닫아 있었다.


호텔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인근에 호텔이 있긴 한데 앞으로 2키로 이상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이 깜깜해져 도시 4거리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어제 그 친구 2명이 나타났다. 그들에게 숙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고 얘기했더니 그들도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들 또한 나처럼 한 마을이라도 더 가자는 생각에 팜플로냐를 지나쳤다고 했다.


순례길 동안 참고하고 다녔던 앱 'Camino Pilgrim'. 35일간 피니스테레까지 거리수, 알베르게, 경유지 등을 안내해주는 심플하면서도 유용한 앱이다.



결국, 방법은 그 호텔에 가는 것 뿐이었다. 악전고투 끝에 그곳에 도착했고 영어를 전혀 못하는 스페인 리셉션 아저씨와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우리 셋은 긴 대화와 필담 끝에 마침내 3인방을 찾아내고 조식 포함 가격까지 50유로 정도에 딜하는 성과를 올렸다.


거기서 내 변덕이 생겼다. 굳이, 3명이서 여기서 잠을 자느니 차라리 다른 마을로 가서 저렴한 알베르게에서 자는게 어떠냐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다리 상태를 보니 18일 동안 750km를 완주하는 것은 애초 예상대로 어려웠다. 언제 어디선가는 버스로 구간 점프를 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차라리 오늘 그 찬스를 써서 버스로 한두 구간 패스해서 알베르게 있는 곳에 가서 자는 게 낫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두 친구에게 그 계획을 얘기하니, 이 친구들은 또 생각이 달랐다. 적어도 30~40일은 각오하고 올만큼 시간이 넉넉한 친구들이었기에 굳이 마을 점프를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나 혼자 우테르가(Uterga)라는 약 10.6km 정도 떨어진 마을에 가서 거기서부터 다시 순례를 이어가기로 했다. 아쉽지만 두 친구와는 이별을 하고 택시를 불러 우테르가까지 순식간에 질주해 도착했다. 걸을 때는 적어도 2시간 이상 걸리는 길이 택시로는 잘해야 10~15분, 다행히 문을 연 사설 알베르게가 있었고 주인의 따뜻하고 근사한 음식을 3명의 할아버지 순례자들과 함께 먹으면서 나는 푸근히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자꾸 지나쳐 버린 길이 떠올랐고, 이렇게 구간구간 점프를 하면서 순례를 한다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긴 구간 하나를 크게 점프한 뒤에 나중에 와서 그 구간만 다시 한다면 모를까, 마을 단위에서 구간을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것이다.


밤새, 이 고민으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잠이 들었고, 결국 나는 다음날 중요한 결단 하나를 내렸다. 그 결단으로 나는 소중한 경험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꼬인 루트가 만들어낸 감동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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