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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 더' 욕심의 라라소아냐

18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기 05 - 순례 2일차

첫날, 욕심 때문에 레스토랑 있는 마을을 건너 뛰었다가 하루 종일 굶었으면서도, 둘째, 셋째 날도 그 욕심은 그치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인 18일 내에 가능하면 1km라도 더 가보겠다는 마음에 자꾸 한 마을만 더, 한 마을만 더 하다가 식사를 거르는 것은 물론, 순례 초기인 2, 3일차부터 벌써 조그마한 물집들이 잡히기 시작했고, 마침내 3일차 중간 도착지인 팜플로나에서는 아예 벤치에 앉아서 일어나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중간 만나는 이정표. 표지석과 이 이정표에 의지해 약 750~800km 순례길을 걸어야 한다.



빗 속의 숲길과 평원


2일차는 론세스바예스 정상에서 산을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아직 빗기운이 남아 있어 안개가 자욱한 숙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은 그래도 산길이 아니니 순탄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숙소를 지나 바로 이어지는 숲길에선 오래된 나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빗내음과 바삭거리는 낙엽들이 깔려 있어 한편으로는 싱그러운 아침을, 한편으로는 낙엽에 미끄러지지 않을까 주의해서 걸었다. 어제 만난 그 형님은 어느새 그 길을 따라 멀어져 갔고 나는 어느새 길 위에 혼자 서 있었다.


새들은 가끔 지저귀고, 산길이 끝나자 평화로운 초원이 펼쳐진다. 경치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다시 비가 쏟아져 파란 우비를 꺼내 입고 울타리에 기대 앉아 있었더니 어제 본 그 형님이 다시 앞을 지나쳐 간다. 그 분은 마침 숙소에서 새로 만난 그보다 더 나이 많으신 50대 중반으로 보이시는 분과 같이 다니시는 것 같았다. 그 두 분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나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었다.


빗속에 곡선을 펼치며 이어져 있는 평원의 길. 우리의 길도 저 S자 곡선처럼 여기저기를 우회하며 지나쳐 가는 지 모른다.



순례 도중엔 이런 경우가 많다.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걸어가지 않아도 길 중간중간에 만나서 인사하고 또 혼자 걸어가고 그러는 것이다.


함께 온 친구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얘기하면서 도란도란 가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구간별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면 각기 따로 걷다가 다음 숙소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 어차피 길은 정해진 것이고, 조개 표식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어 있으니 따로 또 같이 순례길을 온전히 음미하며 가는 것이다.


앱에 따르면, 원래 오늘 내 목적지는 주비리라는 마을이었다. 약 22.5km를 가게 되어 있는데, 알베르게도 많고 해서 다들 오늘은 거기서 묵을 눈치였다. 워낙 1일차 론세스바예스 여정이 힘든 것도 있지만, 완상하며 생각하려고 온 순례길이니 그렇게 길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거기서 사단이 났다. 하루 22.5km면 그래도 한 2, 3개 마을은 더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략 한 마을을 더 가려면 4~5km, 걸음으로는 평지라면 대략 1시간 내외면 도착할 수 있다. 만약, 그 마을에 음식점이 없으면 다음 마을에 가서 음식점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겨울 까미노는 얘기했듯이, 문을 닫은 숙소나 레스토랑이 많다는 것이다. 아예 레스토랑이 없는 정말 작은 마을도 있고, 있긴 하지만 겨울 순례자가 드물다 보니 예고 없이 “Cerrado” (‘닫았다’는 뜻의 스페인어) 표지만 붙여 두고 주인은 없는 경우도 많다. 아니면, 아예 그 큰 알베르게에 투숙객은 나 혼자여서 관리인도 퇴근해 버려 아예 나 혼자 자는 경우도 있었다.


앞서 얘기했듯, 욕심이 문제였다. 생각의 깊이가 걸은 길의 거리와 절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18일이란 제한된 시간과 가야할 거리를 비교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길에서 무엇을 채웠는지, 무엇을 느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오늘 그래도 남들보다, 아니 내 스스로도 앱에서 말하는 적정거리보다 더 걸으면 행복한 것이었다.


어쩌면 삶에서도 그런 것 같다. 40대 중년이 되면 어느 정도 느끼는 것들, 절대 행복이란 내가 가진 것에 비례하지 않지만, 우리네 삶의 행복의 기준은 은근 굉장히 상대적일 때가 많다.


내가 아파트를 사도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큰 평수를 사면 불행하고, 내가 자가용이 있어도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외제 자가용이 있으면 나는 불행한 것이다. 그걸 사기 위해, 갖기 위해, 내가 흘렸을 그 많은 땀과 노력의 시간은 아랑곳없이 어느 순간 나의 행복보다 상대가 가진 것에 대한 비례가 내 행복의 척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 초기에서도 나는 그런 생각을 못 버렸다. 어찌 보면 참 떨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는 나’라는 것, 서구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자리잡았던 이 생각이 왜 이리도 힘들다는 말인가. 그것도 이역만리에서 순례길까지 나섰으면서도 인간의 욕심을 그치기는 참 어려운 것이다.


한창 오르막길로 올라가고 있는 빗 속의 산길. 저 길도 누가 가기 전에는 그냥 산이고 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짐승들에게는 여전히 큰 차이가 없을 테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간



목적지를 지나쳐 이어진 욕심


결국 그날 오후 나는 목적지인 주비리(Zubiri)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한 마을만 더’ 하는 욕심을 그칠 수 없었다. 하루에 한 마을씩만 더 가면 결국 4~5일에 하루 정도씩은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었고, 그래서 이미 아픈 조짐이 보이는 다리를 다시 이끌고 ‘한 마을 더’ 여정에 나섰다. 그때 시간이 4시경이라 숙소를 잡고 쉬면 충분히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시간인데, 굳이 해가 남아 있는 6시까지는 한 마을이라도 더 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발을 이끌고 나선 것이다.


그게 화근이었다. 사실 그날 점심도 어제처럼, ‘다음 마을에서 먹지’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다가 꽤 늦은 시각에 먹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발은 꽤 아파왔고, 단지 한 코스를 더 가는 것이었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경쾌하게 발이 나가지 못했다. 아직 비가 마르지 않은 오후의 조그마한 숲길을 계속 걸어가며, 이번 목적지에서는 꼭 짐을 풀고 쉬자고 결심했다. 제발 욕심 좀 버리자, 하면서 말이다.


마지막 코스는 사실 한 마을도 아니었다. 거리로는 주비리에서 약 5km 남짓이었지만, 조그마한 마을 3개를 연달아 지나쳐 가야 했다. 중간의 2개 마을은 숙소가 없는 곳이어서, 잠을 청하려면 좋든 싫든 3개 마을을 가야 했다. 늑대와 함께 한겨울에 들판에서 잘 것이 아니면 말이다.


결국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마지막 마을인 라라소아냐(Larrasoana)에 도착했을 때 숙소가 없었던 것이다. 분명, 앱에는 여러 개의 숙소가 되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정착 도착해 보니 숙소가 있긴 있었지만 모두 닫았던 것이다.



우리네 삶의 행복의 기준은 은근 굉장히 상대적일 때가 많다.
내가 흘렸을 그 많은 땀과 노력의 시간은 아랑곳없이
어느 순간 나의 행복보다 상대가 가진 것에 대한 비례가
내 행복의 척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나’라는 것, 이 생각이 왜 이리도 힘들다는 말인가





라라소아냐에 도착했을 때 마을 이정표에는 분명 많은 숙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문을 닫았었다. 다행히 이정표 맨 위의 "Pension Tau"가 방 한칸이 남아 있었다.



겨울 까미노가 위험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수시로 숙소정보를 업데이트한다고 해도 사실 10월까지는 어느 정도 문을 여는 것 같지만, 대부분 11월이 되면 비수기라 생각해서 사전 고지 없이 문을 닫을 때가 많았다. 까미노 카페에서 사전 공지를 했던 것 같은데 제대로 못 보고 온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사실은 주인장이 문을 닫는다는데야 공립 아니고서는 사립 알베르게는 강제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망연자실 마을 입구에서 서 있는데,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길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이미 문을 닫은 알베르게나 숙소를 얘기했다. 참고로, 알베르게에는 국가나 시에서 하는 공립, 개인이 하는 사립, 종교단체가 하는 시설 등 3가지 종류가 있고, 시설은 비교적 사립이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공립은 저렴한 편이었고, 종교단체는 유일하게 묵어보지 못했지만 미사나 종교활동을 하기에 좋다고 들었다.


한참 헤매다가 결국 다시 마을입구로 터덜터덜 돌아오는데 먼 발치에서 어린아이와 젊은 부부가 막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혹시 알까 싶어 황급히 달려가 물어보니, 다행히 민간 펜션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Tau’라는 펜션인데 국내로 치면, 일반 개인이 하는 펜션과 모텔 중간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시설은 펜션 같이 생겼는데 방을 하나 빌려 쓰는 개념이라 우리처럼 전부 대관하는 펜션에 비교하긴 그렇고, 매우 깔끔한 펜션형 모텔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얼른 가보니 다행히 방이 딱 하나 남아 있었다. 알베르게보다야 당연히 돈이 비싸긴 했지만 (1인방 25유로), 그래도 여러 명 잘 때보다 프라이버시는 더 나을 테니 이래저래 나은 것이라 자신을 설득했다.


그런데, 주인 아이와 얘기를 하고 있는 사이, 바로 옆 방에서 어제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난 젊은 한국 청년 둘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들도 한 마을 더 오려다가 여기까지 와서 간신히 숙소를 찾아 온 곳이 이곳이라 했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순례기간 참 질리도록 먹은게 샌드위치다. 이것도 ‘샌드위치’하면 말이 안 통할 수 있으니 ‘보카디요’(bocadillo)라고 스페인어로 해줘야 한다. 말했듯이, 필자는 스페인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스페인 분들은 또 영어를 거의 하지 않는다. 아쉬운 건 나니, 몇 개 단어를 생존을 위해 배울 수 밖에 없었다. ‘데사유노’(desayuno, 아침), ‘카페콘체레(café con leche, 라떼 커피), ‘소파’(sopa, 수프), 칼레파시온(calefacción, 난방) 등이 그것으로 각각 나름 눈물 젖은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다.


아무튼, 그날 저녁은 역시 샌드위치였다. 그것도 통 큰 바께트에 가득 야채랑 햄을 넣은 거로, 원래 숙소엔 없는 거라 배달해 주었다. 여기에 두 친구들에게 기분 좋게 집에서 담궜다는 샹그리아 한 병을 샀다. 스페인 전통술인 샹그리아는 역시 스페인 육포인 하몽과 함께 먹어야 맛이 있는데 하몽까지는 없어서 그냥 샌드위치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긴장도 풀리고 따스한 목욕도 한 상태라, 샹그리아를 맛있게 마시면서 즐겁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친구의 상황은 그다지 여유 있지 않았다. 두 친구 모두 계약직 사원으로 계약이 만료돼 이번 순례를 맞춰 온 것이며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일자리부터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나 또한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회사를 휴직하고 온 상태였는지라, 더구나 30대 초반인 그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한창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의 단 꿈을 꿀 나이인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순 없었다.


펜션 타우에 묵었을 때 반가운 한국 친구 2명과 만날 수 있었다. 상그리아 한 잔에 취해 곤한 눈을 붙이면서 내일의 시계가 어서 나를 깨우길 기다렸다.



어느 새 밤은 깊고 피곤한 마음은 어서 눕고 싶었다. 1인 방에 온 김에 빨래도 넉넉히 해두고 싶어서 아쉽지만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내일은 또 고된 순례길이 시작될 것이기에, 내일 길에서 볼 수 있으면 보고 오늘은 이만 정리하기로 했다. 펜션 타우에 묵었을 때 반가운 한국 친구 2명과 만날 수 있었다. 상그리아 한 잔에 취해 곤한 눈을 붙이면서 내일의 시계가 어서 나를 깨우길 기다렸다.


발이 시큰 아려 왔지만, 내일은 변함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할 생각이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컸고, 어쩌면 단지 욕심만은 아닌 질주의 마음이 다시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광활한 들판을 가로질러 가 어서 산티아고에 닿고 싶은 마음, 여전히 주변 길을 보기보다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빠져 있었던 2일차였다.


창밖으로 아직도 그치지 않은 비가 조금씩 속삭이며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샹그리아에 취한 나는 서둘러 눈을 감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아니면 내일이란 이름의 또 다른 하루가 올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애써 설레이는 눈을 감으며, 나는 한 손으로는 여전히 내일의 시계를 성급히 말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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