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기 03 - 출발전야
산티아고 순례길은 시작점이 어디냐에 따라서,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등 다양한 길이 있고, 같은 스페인 내에서도 마드리나나 중간 기점인 부르고스, 레온 등지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만 가면 되는 것인데, 정식 순례는 도보의 경우엔 산티아고 기점 100Km 지점인 사리아부터 순례를 했으면 정식 순례로 인정해 순례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필자가 선택한 루트는 약 750~800km 정도에 달하는 프랑스 루트로,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 생장 피드포트(Saint Jean de Pied Port, 이하 생장)이란 북부 스페인 접경 프랑스 도시까지 기차로 이동하고 거기서 산티아고까지 북부 스페인을 횡단하는 루트였다. 가장 클래식한 루트이기도 하고 많은 산티아고 순례서적이나 영화에도 나온 루트이기도 하다.
사실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전용 앱을 다운로드 받았는데 앱에서도 약 3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대부분 35~40일 정도는 잡는게 보통이었다. 도저히 그만큼 시간이 나지는 않아서 아쉽지만 중간에 버스로 구간 점프를 하기로 하고 약 18일 정도 순례를 하기로 했다. 정식 순례기간은 11월 9일부터 11월 26일까지 약 18일간이었고, 총 거리는 약 500km 정도였다.
가까운 유럽의 젊은이들은 한번에 완주하기보다는 짬짬이 휴가 때마다 와서 부분부분 구간들을 완주하고 돌아간다니 그들의 여유로운 사정이 부럽기도 했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18일간이나 긴 시간을 오롯이 나와 앞서 그분을 향한 2가지 질문을 위해 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생장까지 가려면 파리에 도착한 후 1박을 한 뒤 그 다음날 기차로 이동해야 한다. 유럽 다른 지역에선 생장까지 가는 다른 교통편이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비행편이나 현지 교통 연계를 보면 그 방법 외에 딱히 찾긴 어려웠다.
생장과 파리의 숙소를 두고 고민하다, 파리는 봉세주르란 몽마르뜨 언덕 인근의 저렴한 숙소로, 생장은 현지에 가서 알베르게 – 순례자만 이용할 수 있는 기숙사 같은 숙소 – 추천을 받기로 했다.
‘3성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이 여행 내지는 순례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이로 출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텔이 저렴하다고 해서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오롯이 직면하려면 주변 것도 단순하고 조촐해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한달 전 유럽 여행 왔을 때와는 달리, 3성호텔을 선택했고, 지금도 재미있었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11월 7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고, 밤의 파리를 배낭 하나 들고 씩씩하게 걸어가 숙소에 투숙했다. 그때 배낭 무게는 나중에 생장 순례사무소에서 재어보니 12kg이 살짝 넘었는데 10kg 내외가 권장 무게인 것을 감안하면 살짝 무거웠던 편이다. 마음과 주머니는 가벼운데, 아직 들고가야 하는 가방은 무거웠으니 그만큼 내 생각해야 할 숙제가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파리는 필자의 첫 해외여행지이기도 하다. 까마득한 십몇 년 전 첫직장을 다니다 늦은 어학연수를 런던으로 가게 됐을 때, 간신히 티켓을 구한 것이 파리로 들어가 며칠 배낭여행을 하다가 런던으로 유로스타로 들어가는 이벤트 티켓이었다.
한 이동통신사에서 주최한 이벤트에서 당첨된 젊은 또래의 배낭여행객들과 함께, 나는 운좋게 그 티켓을 손에 넣어 그들과 함께 짧은 기간 – 약 3박4일로 기억 – 파리에서 처음 해외여행의 낭만을 만끽했다. 지금 생각하면 3성도 되지 않을 호텔에서 연하의 남자 룸메이트와 방을 나눠 쓰면서 샤워를 잘못 하는 바람에 물이 온 방에 넘쳐 그 방을 다 닦아내고 그러면서도 얼마나 즐거웠던가.
반짝반짝 빛나던 퐁네프 다리 밑에 흐르던 센강의 물결, 루브르의 그 황홀함, 바토무슈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도심 풍경도 첫 해외여행, 그것도 동경해오던 파리에서의 첫 밤을 온통 낭만으로 수놓기엔 충분했다. 카페에서 파리지엔느처럼 커피 한잔을 마시고, 빨간 전화 부스 – 그때만 해도 휴대전화가 별로 없을 때라 그게 흔했다 – 옆에서 사진 찍고 하면서 매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후 파리는 나와 꽤 오랫동안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6년 휴직을 하면서 가족 여행을 유럽으로 갈 때 파리와 마주했으니, 딱 산티아고 순례 들어가기 2달 정도 전이었고 그때의 감흥을 두달 후 혼자 와서 또 만끽하려니 기분이 묘했다.
호텔로 잡은 몽마르뜨 언덕 인근의 봉세주르 호텔은 사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호텔 규모나 시설로 보면 꽤나 낮은 편에 속했다.
사실 늦게 체크인한 뒤 삐걱거리는 듯한 복도와 계단을 올라가면서 혹시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도 했는데, 웬걸 방안에 들어가니 나름 시설은 모던했고 혼자 자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깔끔했다. 미리 요청한 트윈베드 한 켠에는 내 가방을 부리고 다른 한 켠에는 이런저런 짐을 막판까지 챙기다가 마지막에 피곤한 마음을 ‘내일부터는 실컷 걸어야 할 거야’, 하는 생각으로 간신히 추스르고 잠에 들었다.
감동은 다음날 오전이다. 호텔에는 조그마한 레스토랑이 딸려 있는데, 아침식사를 챙겨 먹으러 내려 갔더니 레스토랑은커녕 조그마한 슈퍼 수준의 공간이 하나 보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내 따스한 표정으로 내게 아침식사를 챙겨 주던 인도계 할머니의 표정은 정말 따사로운 그 무엇이었다.
낯선 땅에서 길을 떠나기 앞서 먹는 음식이 어릴 적 소풍 가면서 아침 일찍 잠을 설치며 일어나 엄마가 이미 싸고 있는 김밥을 옆에서 옆구리 터진 것만 쏙쏙 빼어 먹는 기분까지 들었다. 봉세주르는 외관보다는 그 안의 방, 방보다는 그 안의 사람들이 참 따스했던 기억이다. (메뉴는 절대 많지 않다. 커피와 크로와상이 전부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들고 호텔을 나섰다. 11월, 파리는 늦가을이 한창이고, 건조하면서도 싸늘한 전형적인 유럽의 아침 공기가 내 얼굴을 감쌌다.
기차를 타는 역까지는 걸어서 약 2시간이 걸리는데, 구글맵이나 CityMapper 등 앱을 참고해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이왕 순례길에 나서는데, 출발부터 걸어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딸아이가 지난 파리 여행 때 마음에 들어했던 조그마한 나들이 가방도 하나 살 생각이었다.
몽마르트 언덕을 내려와 센강을 따라 걷다가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지나 에펠탑 – 몽파르나스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약 12시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2시 24분 열차니, 인근에서 간단한 바께트 샌드위치와 음료도 하나 사서 챙겼다. 열차 안에서 마땅히 먹을 것도 없을 것이고 인근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해결하기엔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차에 앉았다. 이제 약 7시간 정도 지나면 생장에 도착할 것이고 그러면 잠깐 눈을 붙인 다음에 당장 내일부터 순례가 시작될 것이었다.
열차 도착시간이 오후 7시 12분이었는데, 중간에 바이욘에서 갈아타야 하고 또 도착했을 때 순례자 사무실이 문을 열었을 지도 살짝 걱정이 되었다. 순례자 사무실에선 숙소 안내와 앞으로의 순례 기간 사용해야 할 순례자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문이 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걱정도 잠시, 열차는 긴 약 7시간의 여정 끝에 생장 역에 나를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환한 가을 햇빛 아래 시작했던 순례의 아침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싸늘한 밤으로 변해 있었다. 조그마한 마을인지라 마을에는 인적도 가로등도 잘 보이지 않았고, 어둑해진 거리를 그저 네비게이션 앱만 참고하면서 순례자 사무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 나갔다.
어둠 속에서 나와 비슷하게 큰 배낭을 짊어지고 순례자 사무실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이 두서너 명 보였다. 말을 붙이고 친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만두었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이 필요했을 테고 나는 내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까. 서로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대로 순례자 사무실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고 그때서야 우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순례자 사무실은 다행히 퇴근하지 않고 열려 있었다. 순례자증을 발급해주는 프랑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연신 우리를 향해 따스한 미소를 지으면서 서툰 영어이긴 하지만 순례에 꼭 필요한 정보를 세세하게 챙겨주려 애를 썼다.
가방 무게를 재어보고 너무 무겁다고 얘기해주고, 최근 비가 와서 사람이 실종되었다면서 내일은 그 코스를 피하고 꼭 정식 순례코스에 나타난 길로만 가라고도 조언해주었다. 아쉬운 건 한파로 나폴레옹이 넘었다는 코스는 폐쇄됐고 다른 우회로만 열렸다는 것.
내일의 목적지는 론세스바예스라는 산 꼭대기에 있는 알베르게였는데, 거기까지 가는데는 통상 2개 루트가 있었다. 첫날부터 사람들 힘들게 한다는 것이 나폴레옹 루트고, 또 다른 우회로가 있는데 대부분 나폴레옹 루트로 간다는 것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무릎을 생각하면 일견 다행이기도 했다.
숙소를 소개받고 대충 짐을 푼 뒤에 체크인할 때 알베르게 주인이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산티아고는 경주(racing)이 아니야. 너희 삶도 그렇잖아. 다른 사람이 더 빨리 간다고 해도 신경 쓸 필요 없어. 왜 여기 왔는지 생각하고 순례를 잘 마치길 바래.”
그렇다. 그의 말처럼, 산티아고 순례는 경주가 아니었다. 그래도 18일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얼마나 자신을 재촉하고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나를 힘들게 했었던가.
이보다 더 허름할 수 없는 6인실 숙소에서 간신히 샤워를 마치고 눈을 붙였을 때, 마음이 설레었는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내일의 희망으로 가까스로 잠들 수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말한 것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우주를 탐험하는한 여행자는 그렇게 설레어 하다가 잠들었다.
산티아고는 경주(racing)이 아니야. 너희 삶도 그렇잖아.
다른 사람이 더 빨리 간다고 해도 신경 쓸 필요 없어.
왜 여기 왔는지 생각하고 순례를 잘 마치길 바래
- 생장의 알베르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