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기 01 - 프롤로그. 순례에 앞선 두 가지 질문
처음 산티아고를 간다고 했을 때는 여러 모로 망설여졌다. 휴직기간이긴 했지만 적어도 30~40일간은 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만큼 시간을 내기도 그렇고, 몸이 그다지 좋은 상태도 아니어서 선뜻 떠나기가 그랬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우연이라는 것은 사실 별로 없겠지만, 한 신부님과 수녀님의 조언이 최종 결정을 하는 데 가장 큰 힘을 줬다. 허리가 아파 딱히 움직이기 힘들다는 신부님과 차라리 국내 여행을 갈까 망설이는 내게 국내는 언제든지 갈 수 있다며 이 참에 우선 산티아고를 다녀오는 게 낫겠다는 두 분의 한결 같은 말씀이 최종 결정에 큰 몫을 했다.
막상 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주변의 것들을 정리하기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워낙 출장을 많이 다녀서인지 딸아이도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고, 집사람도 적지 않은 시간일 텐데 그래도 이해하고 다녀오라고 양해해 줬다. 그래도 30~40일을 다 비우기에는 아무래도 미안했다. 또한, 어느 곳으로 들어갈까 고민하다 보니, 마침 한번도 가보지 못한 이탈리아가 떠올라 파리로 들어가서 로마로 나오는 일정을 짜게 되었다.
최종 순례일은 18일, 이후 산티아고 시내에서 한 2~3일 쉬었다가 로마에서 3일 정도 개인 관람을 하고 약 25일 정도 보내는 일정이니 결혼 후 출장을 빼고는 이렇게 장기 여행을 다녀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여행 계획과 일정은 그렇다 치고,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우선 생각했다. 명승지에 가면 관람도 하고, 유적지에 가면 역사를 뒤져보고, 쉬는 곳에 가면 쉬면서 맛난 것도 먹어야겠지만, 산티아고 순례라면 또 그에 맞는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답은 벌써 나와 있었다. 앞서 신부님과 수녀님을 만난 곳은 강원도 양양의 한 수도원에 피정을 갔을 때였다. 피정이란 개신교의 기도원이나 불교의 템플 스테이처럼, 잠시 지친 심신을 다스리며 절대자에게 기도를 드리기 위해 들어가는 곳으로 침묵으로 하는 곳도 있고 여러 가지 교육이나 상담 등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침묵 수행을 하는 곳으로, 그래서인지 간만에 밖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된 신부님, 수녀님, 나는 이래저래 들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산티아고 얘기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내 화두는 2가지였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믿는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질문 2가지 다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과연 짧다면 짧은 18일간의 순례길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지 궁금했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 길을 걷다 보면 한번쯤은 그분을 만나게 된다고 하지 않은가. 그 낙관적인 기대로 이 2가지 질문을 줄곧 생각하면서 걷다 보면 그분을 꼭 만나고 적어도 저 질문에 대한 대답 정도는 들을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에 대한 답은 여행기 후기에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