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는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나

문과 중에 문과 국문과입니다.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다고 하면 간혹 나이가 꽤 있으신 분들께선 "공부 잘했겠네~!" 하시고는 한다. 기분 좋은 말이지만, 실은 합격 커트라인이 그렇게 높지 않기에 멋쩍게 웃으며 넘긴다. 특히나 내가 들어가게 된 대학교의 국문과 내신 커트라인은 6등급쯤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공부 잘했겠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를 죄책감까지 생겼다.

내가 다닌 국문과는 그런 곳이었다.

많은 과목들 중 굳이 고르자면, 국어가 좋으니 안전빵으로 써두었던 마지막 입시 카드.


물론 이곳이 절실했던 친구들도 있겠지만,

스무 살 새 학기, 한창 학벌에 대해 민감할 때 동기들끼리 나누었던 대화엔

'나도 여기가 6 지망이었어, 안전빵으로 지원한 곳이었어, 수능 미끄러져서...' 등의 변명이 따라붙었다.

여기엔 대학교의 이름이 상당 부분 차지하기에 우선은 넘기며, 학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려고 한다.


내게도 국어국문학과는 마지막 6번째 카드였다.

결과적으로 국문과를 쓴 건 나지만, 설마 6 지망만 붙을까? 하는 오만함과 함께 평소 존경하던 선배의 조언이 영향을 주었다. 1부터 5 지망은 전부 신문방송,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였다. 근데 왜 6 지망만 국어국문학과를 쓴 건지. 위의 이유들이 있긴 하지만, 또 문득 의문으로 다가오긴 한다.


나는 고등학생 당시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기에 방송, 미디어 쪽 학과를 택하는 게 맞았다.

입시, 진로 상담을 목적으로 방송 계열 학과에 다니고 있던 선배의 조언이 없었다면 6 지망도 방송계열 학과를 선택했을 것이다. 선배는 내게 국어국문학과를 써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였고, 꽤나 설득력 있었기에 그 말을 따랐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무조건 방송 계열 학과를 나와야지 PD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방송 계열의 학과를 선택할 시 진로의 폭이 좁아지게 된다. 방송 기자, 아나운서, PD 등 방송 계열 밖에 취직을 못한다. 반면 국어국문학과는 방송 쪽으로 취업도 가능하고 국어 교사가 될 수도, 언어 관련 취업 길도 트이기 때문에 진로를 더 폭넓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막상 작성하고 보니 19살의 내가 설득될만하다.

그렇게 나는 PD의 꿈을 가지고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게 된다. 막상 들어가 보니 선배의 조언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국어국문학과와 신문방송학과가 할 수 있는 경험은 꽤나 달랐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방송국 취업의 꿈이 사라지지 않은 나에게 국문학 전공은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또 막상 취업 공고들을 보니 대부분이 미디어 계열 전공 우대였다. 결국 나는 신문방송학과를 복수 전공하게 되었다.


국어국문학과에서의 학점도 좋았지만, 신문방송학과에서는 정말 날아다녔다. 조금만 노력해도 A+였으며, 분명 틀린 게 많을 거라 생각했던 시험도 A+이었다. (그제야 국어국문학과가 공부 잘하는 학과임을 실감했...)


코로나 학번이기도 했고, 같이 다닌 국어국문학과 동기 친구들이 막 그렇게 활동적인 편은 아니었다. 혼자 책 읽는 것을 즐긴다거나, 공부도 각자 조용히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에 비하여 내가 느꼈던 신문방송학과 친구들은 되게 활달했다. 자주 모여서 공모전도 나가고, 영상물을 만들기도 하고, 술도 마시며 국문과에 비해 돈독해 보였다. 노린 건 아니었지만 이런 학과 분위기 차이에서 인지 1-2학년 동안 체화된 국문과의 모범생 루틴이 내 학점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국문과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했던 마케팅 대외활동, 동아리 등도 도움이 되었다. 활동을 통해 배운 콘텐츠 기획력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실기 과제들도 척척 잘 해낼 수 있었다. 우수 과제로 선정되어 교수님의 칭찬과 함께 발표를 한 적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복수 전공자의 서러움은 존재했다. 자유롭게 팀을 짜는 팀플에서 아는 친구 한 명 없는 나는 팀을 짜기도 쉽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은 다 받는 과제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그럴 땐 국문과 친구들에게 돌아가서 안기고 싶을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복수 전공자의 서러움을 이겨내며 높은 학점과 쌓은 경험들로 나름 잘 보낸 대학생활이었다. 근데 가끔은 내가 처음부터 신문방송학과 학생이었더라면 좀 더 활발하게 대학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공모전을 나가더라도 외부에서 팀원을 찾기보다 동기들과 함께하며, 여러 도전들을 더 시너지 있게 해보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학과 선배들도 신문방송학과 선배들이 더 멋있어 보였다. 우리 과 선배들 대부분은 PC방에서 롤할 사람을 찾거나, 취업에 있어서도 별생각 없어 보이는데 신문방송학과에선 어떤 선배가 언론사를 들어갔다더라 하는 소문이 들려오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지금 보면 어디나 똑같이 PC방을 출석하는 선배들이 있고, 멋진 곳에 취직하는 선배들도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럼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간 것을 후회하냐?

그건 절대 아니다.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는 내내 즐거웠다. 문법 공부만 빼고. (사이시옷 법칙에 관한 논문 과제를 받았을 때는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고려 가요, 향가에 대해 강의하실 때마다 정말 신나 보이시던 열정열정열정 교수님. 설명하실 게 많아 강의 시간을 항상 훌쩍 넘기시던 교수님. 수능 문제 출제하시러 사라지셨던 교수님.


국문학을 배우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었고, 교수님들도 학생들도 국문과의 낭만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엄청 돈독하게 지내진 못했던 것 같지만, 아직까지도 종종 드는 생각은 학과 선배들과 동기들이 너무 다정하다.


대학 인연은 깊지 않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또 다른 의미인 것 같다. 깊지 않더라도 잔잔하게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 알게 모르게 의지가 되는 사람들. 나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


낭만이란 이유로 문과 중에 문과 국문과를 선택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국문과의 낭만이 오래 남는 것 같다.


국문학의 전공을 온전히 살려 밥벌이를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찾게 되는 밥벌이에 국문과의 영향이 0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국어국문학과 지금 지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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