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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현 Jul 15. 2022

개인적 독백

죽음에 대하여. 아주 막역하게.

 최고의 미남 배우라는 수식어를 프랑스의 배우, 알랭 들롱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결정했다는 기사를 봤다. 나는 종종 그런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죽음은 개인의 선택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개인의 선택으로 인한 죽음은 자살인가? 


 우리나라에서 존엄사에 대한 찬성이 82퍼센트에 달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유로는 자기 결정권 보장, 품위 있는 죽음의 대한 권리, 가족 고통과 부담이 찬성 의견이다.

 그렇다면 반대 의견을 살펴보자. 생명 존중, 악용과 남용 위험, 자기 결정권 침해 위험. 의외로 의협에서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죽음은 개인의 선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선택으로 죽는다면 그것은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존엄사라는 것은 자살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찬성 의견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면 존엄사는 인류 문명에서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보다는 슬프고 끔찍하고 잔인한 것이 더 많다. 안탑깝게도. 

 가장 위협적인 반대 의견인 악용과 남용과 자기 결정권 침해 위험이 있다. 나는 자기 결정권 침해 위험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단순히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나처럼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말한다.


 "저 지경이 될 바에는 깔끔하게 고통 없이 죽는 게 낫다."


  물론 나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존엄사에 가까운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치매 노인들 반신불구가 된 사람이나 지독한 불치병을 가진 환자. 그들은 과연 인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인가?

 누구나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거나 식물인간이 된 사람을 평생 동안 수발하는 사람들을 미디어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미디어에 나온 사람들보다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병시중에 지칠 대로 지친 가족들. 자신이 죽어야 가족의 고통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환자들.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현실이 앞서 말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닌 케이스도 있겠지만......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냐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병에 든 사람들에게 존엄사에 대한 자율적 판단 능력이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먼저 든다. 

 찬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족에게 부양할 의무를 주게 된다면 존엄사를 선택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 지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기 싫어 혹은 압박감에 죽음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과연 존엄한 죽음일까?


 인간의 선택적 죽음이 고귀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P.S 안타깝게도 나는 정답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못하다. 그러나 생각을 할 수 있는, 아니 생각을 해보려 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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