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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책방 여행자 Aug 12. 2021

연봉이 그것밖에 안되면 나는 쓸모가 없는 사람입니까?

심리 학과생의 고전 스크랩 시리즈

한 가지 재밌는 상상을 해보자. 자고 일어났더니 외계인이 침공해 왔다. 그들은 총과 칼을 드는 대신 압도적인 부(그들은 우리 문명에 관광을 오며 하루에 4 5,000만 원을 쓴다)와 화려함을 보여줬다. 그들은 우리도 그러한 문명을 누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날 이후로 우리가 사는 세상 모습이 너무나도 빨리 그들과 비슷해져 다.


이럴 때 당신이라면 그들 앞에서 존재 자체가 작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러분의 자식들이 '우리가 여태까지 쌓아왔던 문화, 문명은 다 필요 없다'라고 하고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라 우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어떻게 자식들을 설득하고 가정을 지켜낼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읽은 독자 분들은 갑분 S(갑자기 분위기 SF)라고 생각했을 듯싶다. 하지만 위의 질문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 계기는 한 고전을 읽으면서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고전 에세이다. 1부 내용은 '라다크'라는 고지대에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리며 작가가 느꼈었것들을 서술하였고, 2부에서는 라다크에 서구 경제논리가 들어오면서 그들이 인간소외를 느껴가는 부분들을 서술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결론이었다. 결론 부분에서는 현재 세상을 들썩이게 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라다크에서 엿보았던 인간 내부에 있는 인간성을 회복함으로써 극복하자는 해결책을 담았다.


책은 1부와 2부가 너무나도 다르다. 1부에서 라다크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종족으로까지 생각이 된다.(호랑이와 사자 정도의 차이다.) 육체노동을 중시하고 열악한 환경에 맞게 적응을 한 그들만의 공동체 문화를 보여주며 어려움을 신기술로 '극복'하려는 것이 아닌, 공동체의 힘으로 '익숙'해지려는 라다크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가난을 몰랐고, 소외 또한 몰랐다. 하지만 2부에 들어서 막대한 시장이론 앞에서 소외되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라다크 인들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가족을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했던 우리 아빠들


얼마 전에 가족여행을 다녀오며 아버지와 대화를 하다가 놀란 것이 있다. 아버지가 갖고 계시는 경제관념(?) 때문이다. 은행 적금 10% 대가 정상적인 숫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 때는 사회가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어마어마한 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오죽했으면 로마가 100년에 걸쳐 이룩한 경제성장을 1년도 안 걸려서 이뤄냈다는 우스겟 소리가 나왔겠는가?

막대한 부가 크게 유입된 만큼 여기저기에 자금이 풍부했고 이것저것 시도하기 좋은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고도의 발전이 끝을 보이듯 더 이상 발전할 무언가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고, 성장률은 물론이고 금리 또한 저성장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면 '그때가 좋았다. 아니 그때가 정상이었다.'라는 말씀까지 듣게 되었다. 순간 아버지의 말씀에 이질감이 느껴지는것은 물론이고 발끈하려는 나 자신을 봤다. 정작 나는 자산가치 상승 대비 나의 급여 명세서에 적힌 숫자들을 보며 한숨이 나오니깐 말이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586세대, 486세대 등등 세대에 이름을 붙이며, 그분들은 우리가 느끼는 자본 앞에서 소외를 느껴본 적 없지 않냐고 주장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물론, 아버지들은 우리 2030 세대가 경험한 자산가치의 급성장에 따른 노동가치의 소외를 강하게 느껴본 적은 없으시다. 하지만 그분들도 자본 앞에서 소외를 경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인생이 부럽지는 않다. 그렇게 급성장 해가는 사회 속에서 아빠는 가족과의 시간 대부분을 포기했어야 하는 삶을 사셨다. 노력을 많이 하시기는 하셨지만, 어느덧 장성한 아들들에게 "문 밖을 나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오면 또 금방 커있더라"라고 멋쩍게 웃으셨다.

요즘 제2막을 준비하시는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하다 보면 아버지는 '내 가족은 내가 지켰다.'는 자부심이 있으시다. 힘든 순간에도 자식 사진들이 한 번도 핸드폰에서 내려가는 걸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노력과는 별개로 '먹고살기 위해' 가족품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하신 시간이 상당하시다.


우리 아버지들 또한 자본 앞에서 다른 소외를 경험하신 샘이다.



가격이 없으면 가치가 없다고? 연봉 없는 나는 잉여인간인가?


오래된 미래에서 반성을 한 부분이 있다. 서구 세계에서 노인들이 소외되는 것에 대해서 라다크 사람들이 혀를 차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 핫 키워드 중 급부상하는 키워드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노년 파산이다. 오죽했으면 어르신들 모임에서도 죽기 직전까지 내가 돈 몇 푼이라도 쥐고 있어야 자식들이게 대접은 받는다고 하시며 '급여(연봉)도 없고, 노동가치도 없는 나는 잉여인간이냐'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근데 이런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한 곳 더 있다. 2030 청년들의 대화방이다. 아직 취업을 못해서 취업을 준비하는 카톡방에서 오가는 얘기들을 듣다 보면 급여도 없는 무일푼인 자신의 현재 값어치가 0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도있겠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책 문제, 개인의 이기심 문제 이전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어두운 면을 우리가 강하게 직면하고 있는 요즘이라고 생각한다.



야크를 버리고 젖소를 들이라던 경제이론


야크는 긴 털을 가진 '들소'다. 하루에 우유가 3L밖에 안 나오지만 고산지대 환경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어서 라다크 사람들에게는 운송수단이자 식품 공급원 었다. 하지만 서양 세력들이 밀고 들어오며 하루가 30L를 생산할 수 있는 젖소가 더욱 경제적이라며 야크가 경제적으로 가치가 낮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결국 라다크에는 야크가 아닌 젖소를 키우기로 하고 일을 진행하려는데 젖소들이 고산지대까지 올라가지를 못하였다. 기존에 야크와는 다르게 외양간도 필요했고 사료도 필요로 했다. 라다크 환경에는 야크가 젖소보다 더욱 경제적인 동물이었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젖소도 못 키우는 자신들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우리들은 각자가 살아가는 의미가 다르다. 그렇기에 몇 가지의 지표로 사람의 값어치가 결정되서는 안 된다. 이 문장이 말로는 참 쉬운데 실제로는 어렵다는 것에 대하여 뼈 절이게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본인의 목소리에 집중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질수록 화려한 단면에 가려져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도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젠 우리만의 방법대로 소중한 별을 만드는 방법도 까먹은 요즘인 듯싶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지금 모든 것들이 멈췄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할 거라고 여기저기서 꿈틀거린다. 새로운 변화들이 우리가 잃어갔던 것들에 대해 상기시켜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경제가 어렵고, 다시 모든 게 천천히 가는 요즘 하나씩 잃어가던 것들을 다시 돌이켜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오늘은 이만 인사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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