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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책방 여행자 Nov 19. 2021

저도 한국사람입니다!

심리학과생의 사람사는 이야기

국립 기관에서 청소년 지도자로 활동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만난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을 강조했던 한 청소년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저 어느 나라 사람이게요~?'

여름이면 학교 청소년이 아닌 사회복지시설에서 단체로 참가하는 청소년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가족단위 캠프를 참가하는 참가자부터 다양한 시설에 속해있는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는데 '지민'이라는 친구다.


지민이 어머님은 다른 나라 출생이시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지민이 또한 출생지부터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지만 자신의 외모로 인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지민이 어머님은 지민이의 걱정을 줄여주기 위해 다문화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


반성의 말부터 쓰고 시작하자면, 다문화 캠프를 참가하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다문화청소년을 '이방인'처럼 바라보는 나쁜 습관이 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와는 살짝씩 다른 그들의 작은 차이를 다르게 바라봤던 것 같다. 그랬던 나를 지민이는 첫 만남부터 아주 호되게 혼낸(?) 친구였다.


"선생님은 제가 어느 나라 사람처럼 보여요?"

지민이가 나에게 처음 내뱉은 질문이었다. 객실 안내 및 다음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참가자를 푸시(참가자들의 이동을 재촉할 때 쓰는 용어이다. 전문 용어는 아니고 우리 팀원들끼리 쓰던 은어다.)하고 있는 도중에 내 옷깃을 당기며 장난기 섞인 그 질문이 왜 이렇게 얄밉던지 잠깐의 고민도 안 하고 "글쎄? 잘 모르겠네?"라고 답변을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렇게 답변해서는 안됐다. 지민이의 장난기 섞인 웃음은 사라지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조용히 앉았다.

 참가자들이 소강당에 전부 모이고 나서 각 조별로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가족별로 아빠, 엄마, 자녀가 같이 참가하는 가족캠프였지만 사정으로 인해서 아빠 또는 엄마가 참가하지 못한 가족들의 빈자리를 우리 활동가들이 채웠다. 하지만 전지를 가득 채우는 건 온전히 참가자들의 몫이었다.

 A1 짜리 전지에다가 각 조별로 자신들을 소개하는 포스터를 만들어서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지민이네 조는 지민이가 발표하였다. 지민이의 발표 전지를 보고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저 는 한 국 사 람 입 니 다.


또박또박 힘차게 써 내려간 글씨와 자신은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소개하는 지민이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작아졌다. 지민이는 본인은 대한민국 강이 잘 보이는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타국에 있는 다른 가족들을 만나러 갈 때도 별도의 다른 이름 없이 '지민'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이 불러준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자꾸 자기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알려달라고 해서 힘들다고 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다. 소원이 있다면 독도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다.


진짜 정말 부끄러웠다.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말 한마디로 그 노력에 벽을 세운 것은 아닐까 미안함이 가득했지만 가서 사과를 하자니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점심시간에 지민이 앞에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지민이에게 물어보았다. "지민아 독도는 왜 가고 싶어?"

"독도는 우리 땅이니깐요"

찐 한국인 지민이와 그렇게 우리나라 독도에 대해서 열띤 이야기를 나누고 나중에 지민이가 꼭 우리나라 땅인 독도를 가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독도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민이와 나는 대한민국 이곳저곳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청소년지도자로 근무를 하게 되면 아이들을 인솔하고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8도를 돌아다니게 된다. 지민이는 집과 학교, 센터와 학원을 다니는 길이 자기 세상에 전부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여행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2박 3일이 끝나갈 때쯤 나한테 정든 지민이를 떠나보내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청소년 캠프에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청소년지도자와 청소년은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같이 어려움도 극복하고, 생각과 이야기도 나누며 정말 진정한 친구가 되어간다. 그래서 캠프가 끝날 때쯤 되면 항상 눈물바다다. 애들만 우냐고? 절대 아니다. 가끔 애들은 멀쩡한데 선생님들이 울면서 보낼 때도 있다. (살짝 부끄럽지만 나도 눈물로 버스를 태워서 보낸 친구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보내기 힘들었던 친구 중 한 명도 지민이었다. 나중에 캠프 끝날 때쯤 들으니 지민이 어머님이 수련원에 전화를 하여 나한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연락처를 요청하셨다고 하지만 수련원 측에서는 활동가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정중히 거절하였다고 다.


 지민이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선생님도 우리나라 이곳저곳 다니시면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15년 8월 자전거를 이끌고 인천서 부산까지 대학 후배와 여행을 떠났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하겠다.


내가 이방인을 만들지 않았을까?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가 '알베르 카뮈'선생님의 '페스트'다. 전염병 페스트가 한 마을에 돌면서 그 마을 사람들의 심적 변화와 행동의 변화를 잘 보여준 책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접한 카뮈 선생님의 작품은 '페스트'가 아닌 '이방인'이다.


'이방인'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사람 맞아?'라고 생각될 정도로 감정이 없는 인물이다. 회사에서 승진을 하여도 별로 기쁘지 않고,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음에도 그냥 무덤덤하다. 마치 아침에 알람이 울려 회사를 가는 것에 대수롭지 않게 그러려니 하는 우리의 모습을 하며, 타인이 봤을 때 큰 일들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결국 어머님의 장례식이 있기 전에 애도하지 않은 것을 넘어 연인과 성관계를 하였다는 이유로 주인공은 형당한다. (사실 주인공이 재판을 받게 된 것은 다른 이유에서지만, 이야기 후반부로 가면 어머님을 애도하지 않았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사형선고가 내리는 형세를 띄게 된다.)


확실히 그 이야기에서 나온 주인공은 책 속의 인물이 아닌 독자 옆에 앉아있는 인물 같았다. 책 속에서 일어나는 그 많은 일을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식으로 넘겼다. 그에게는 "우리 함께합시다."라며 내미는 손길이 버거웠을 것이다. 즉 이방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닌 그가 우리와 함께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후 이야기에서 다루겠지만, 회사를 다니며 누구보다 조직과 하나가 되어서 으쌰 으쌰 했던 적이 있는 반면 철저하게 회사일에 '그게 뭔 상관이죠?'라는 식으로 일관한 적이 있다. 각 태도의 장단점이 있지만, 후자의 태도를 취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이방인으로 불렀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툴툴거리던 나 자신이 떠오른다. 사실 그들이 나를 밀어낸 것이 아닌 내가 그들을 밀어냈는데도 말이다.


지금은 둘 다 해본 입장에서 나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걸 하려고 한다. 괜히 몸에 안 맞는 거 하려고 하면 나도 힘들어하고 팀원들은 나를 악몽으로 느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 사는 세상에서 이방인 일지 팀원 일지 궁금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저 이 글을 읽는 분이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 행복하게 살고 계시기를 바랄 뿐이다.


끝으로 지민이에게 한마디 전하며 줄이겠다.


지민아!! 너랑 같이 한 캠프가 끝나고 나서 용기 내어 인천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했어. 8~9일 걸리더라. 진짜 힘들었지만 갔다 오고 난 후 내가 더 어른이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나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해줘서 고맙다.

너도 멋진 어른이 되기를 바래. 선생님도 멋진 어른이 되어 니 앞에서 서있을게. 이 글을 쓰는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로 힘들어하고 있어. 너도 건강 잘 챙기고 하고픈 거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인석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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