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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책방 여행자 Nov 17. 2021

'일'에 관하여

심리학과생의 사람 사는 이야기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에 나왔을 때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일'을 어떻게 바라볼 건지에 대해 스스로 정리가 잘 안되어 있어서 오는 혼란스러움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퇴근 이후에 저녁 있는 삶이 중요하다.', '개인생활이 없다면 일을 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라고 이야기해주시는 분들이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무직으로 회사에서 근무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9 to 6 근무조건으로 회사에서 근무를 하면 평균 10시간 많으면 12시간씩 회사에서 생활하는데 저녁을 조금 즐기다가 잠들고 다시 출근하는 것이 '삶과 일의 균형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청소년 지도자라는 직업은 저의 직업관에 대해 조금은 알수 있게 된 계기였습니다. 저의 이러한 경험이 다른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썻습니다.



청소년지도자를 꿈꾸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경험한 청소년 지도사라는 직업을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근무 환경이 다른 사무직들과 다릅니다.

 청소년 수련시설은 크게 생활권 수련시설과 자연권 수련시설로 나뉩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활권은 도시에서 접근성이 좋은 청소년 수련관, 문화의 집 등을 예시로 말씀드릴 수 있으며 자연권은 ㅇㅇ청소년수련원처럼 숙박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활용하여 다양한 자연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단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 시설권마다 청소년지도사들의 근무환경도 크게 달라집니다. 수련원은 숙박형 프로그램 운영을 위주로 하다보니 수련원에서 근무하는 지도사들은 회사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게 됩니다. 물론, 회사 측에서는 지도사들의 개인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타인과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근무조건'을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생활권 같은 경우에는 도시에 밀접해 있어서 수련원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게 되지만 주 고객층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9 to 6가 아닌 10시에 출근하여 8시에 퇴근하실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토요일에 청소년시설을 많이 이용하는 만큼 월~금 근무가 아닌 화~토 5일 근무로 근무를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무직 근무시스템을 생각하고 도시권 수련시설을 준비하시면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복지, 지도 산업군은 학교,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기관에서 근무를 하시게 된다면 국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일처리 시스템은 물론 자원 활용방법까지 배울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트렌드에 민감한 청소년들이랑 마주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청소년 문화와 새롭게 변하는 트렌드들을 접하고 공부하시게 됨으로써 트렌드 변화를  공부하시게 됩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프로그램 툴을 다루는 역량이 필요하여 자기 계발에도 도움이 됩니다. 청소년 프로그램을 홍보물을 만들기 위해서 포토샵을 배워야 하실 수도 있고, 레크레이션 때 사용할 PPT 제작, 음악 편집, 동영상 편집 등의 기술을 익히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근무 환경이기에 청소년 지도사로 근무를 하시게 되면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마주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저의 책무를 다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서 지금은 청소년지도사로 근무를 안 하고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할게요 ^^) 저에게 청소년지도자로 활동하던 시기가 불꽃같이 타오르던 시기임은 확실합니다.


청소년지도자로 활동했을 때 할아버지께서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2박 3일 프로그램을 여러 차시에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진행요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입원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병원을 뛰어갔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놀래서 뛰어온 저에게 아무런 일이 아닌 듯이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항상 거인이셨던 할아버지가 병 상복을 입고 앉아계시니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마침 1, 2차시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2일동안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병상에서 고생하셨을 할머니께 집에 가셔서 쉬고 오시라고 말씀드린 후에 할아버지와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길게, 다양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강을 수영해서 건너셨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할아버지가 여태까지 걸어오신 걸음걸이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할아버지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아버지 이야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야기까지 마치신 할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시면서 "삶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짧단다. 그러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거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화를 다 나눈 후에 저는 다시 수련원으로 복귀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임무는 시설단위로 참가한 청소년 조의 조장을 맡아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현장 인솔 및 프로그램 참가 유도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맡은 친구들의 특징이 기억에 남는데 소유욕이 매우 강하다는 점입니다. "선생님은 내 거"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어떤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꼭 저의 위치를 확인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청소년들이 상처가 많은 청소년이란 사실을 깨닫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 까지는 부모, 형처럼 보호자란 마음으로 임하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족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할아버지가 급격하게 건강이 안 좋아지셨으니 빨리 와보라는 연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서 바로 가족들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맡은 청소년들이 눈에 아른거려서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행동을 하기에 앞서 어머님께 할아버지의 상태를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안 좋아지셔서 병동을 옮기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당시 일했던 동료분들께 감사합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분들은 물론 저희 팀 팀장님과 다른 팀 팀장님들까지 걱정을 해주시며 지금이라도 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결국 "저녁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참가하겠다"고 말씀 드린 뒤 첫차를 타고 할아버지를 뵈러 갔습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많이 호전되셨고 이후 다시 병실을 옮기셨습니다.


그때부터 벌써 6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그때 제가 했던 선택들이 정말 잘한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제가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때 느꼈던 그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는 선택들을 하려고 합니다.


끝으로 2015년 추운 겨울. 다음 생에도 저의 손을 꼭 잡아달라고 약속하며 보내드린 할아버지께 보고 싶다는 말씀을 전해 올리며 줄이겠습니다. 멋진 어른이 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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