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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째 날, 그 언덕을 기억하나요?

소년의 여행기

by 큰손잡이

기록은 정말 중요하다. 하루 아침에 이 모든게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맥락을 이해해야하는데, '이 일이 왜 갑자기 나한테 닥쳤지?'라는 질문에 답을 주기 때문이다.

기록은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면서도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길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가끔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지금 이 시간은 결국 지나가겠지만, 과거의 내가 걸어왔던 길에서 미래의 나는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록은 정말 중요하다.


거의다 왔어. 이 고개만 넘어가면 돼

자전거로 인천에서 부산을 여행하다보면 뜻밖의 장소를 지나가게 된다. 창녕쯤 지났을 때 낙석 방지 콘크리트 벽면에 먼저 이 길을 떠나온 사람들의 응원메세지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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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문경새제 오르막길에서 넘어져서 쩔뚝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여행을 하였다. 고생도 많이 하였고, 힘들기도 하였지만 이미 걸어온 길이 이 여행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되어있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좀만 더 하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었다.

분명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수많은 이유와 포부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런 이유는 온데간데 없고, 피곤해진 몸과 빨리 이 여행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하였었다. 그러다가 그 언덕을 마주하게 되었다.


정말 말도 안나오는 경사의 언덕이었다. 그 언덕을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앞에서 자전거를 멈춰세웠고, 힘없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너무 힘들어서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아봤지만, 5분도 안되서 다시 하차하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의기양양했던 후배도 어느덧 말없이 거친 숨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이 언덕 너머에는 또 언덕이 있겠지?'

짜증이났다.

'좀만 쉬어가도 결국에는 넘어가야되잖아.'

한숨이 났다.

'어쩌다 이 길을 시작했지?'

원망이 일었다. 하지만 그 누구를 탓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전거를 끌며 올라갔는데 위에서 "어?! 형 저기 봐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정확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남아있었다.

산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보를 만든다음에 철조망 팬스를 친 것을 국도나 고속도로에서 많이 볼 것이다. 이 콘크리트에 사람들이 자기들 이름과 함께 메세지를 남겼다.

이 여행길을 먼저 갔던 사람들, 이 고생을 먼저 하며 고개를 넘어갔던 사람들이 뒤에 올 여행객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였다.

'고생했어'

'거의다 왔어'

'좀 만 더 화이팅' (아마 이 날 이후 내가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이 '좀만 더'가 된 것 같다.)

진짜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면서 그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그 길이 끝났을 때 쯤 자연스레 내가 걸어왔던 여행길이 눈에 보였다.


누군가가 넘어온 이야기 끝에서 이야기를 다시 쓸 힘을 얻었다.



당신, 기록하고 있나요?

여행길에서 내가 '왜 이 여행을 떠났지?'라는 질문은 여행이 끝나기 전까지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여행이 길어 질수록 그 의미는 옅어져갔다. 하지만 이 길에서 배운 것들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내가 경험했고, 내가 쌓은 것들이었다. 여러 문제들이 왔고, 그 문제들을 해결했다. 그 여행길 자체가 의미가 되는 시간이었다.


인천 하굿독에서 시작했던 여행길은 부산의 낙동강 하굿독에 도착함으로써 여행을 마무리 했다.

하지만 그 여행이 끝나고 난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 통일전망대에서 포항 호미곶까지 도보여행을 떠났다. 자전거 여행기를 다 들은 이들은 '아니, 633km나 되는 자전거 여행길이 끝난 후에도 굳이 여행을 또 떠났다고?' 라고 얘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633km 여행이 끝난 뒤 내가 느꼈었던 것들은 해냈다는 거대한 성취감과 세상은 정말 넓다는 깨달음이었다. 그 넓은 세상에서 '내거'를 만들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났다.


요즘도 어려움들을 마주할 때면 내가 당시에 적었었던 기록들을 마주한다.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성숙하고 성장한 것은 맞지만, 과거의 내가 답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옛날에 언덕을 올라가다가 힘들었을 때 나를 응원했었던 방명록을 만들기 위해서 기록하는 것도 있다.

'잘하고 있다.' '이겨낼 수 있다.' 라는 말을 누군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내 자신에게 해주기 위해서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모아 이렇게 브런치에 쓸 수 있을 만큼 모였다는 것에 감사하다.


소년의 여행기는 7개의 에피소드를 끝으로 마무리 한다. 다음은 다른 여행을 통해 배웠던 내용을 토대로 '청년의 여행기'를 발행하려고 한다. 이 기록의 끝에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는 당신이 있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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