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다. 진짜 무서움이 없었다. 시작은 학교 선배와 둘이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자전거 국토종주(인천-부산 자전거 여행)을 끝마치고 1살 위인 형과 밥을 먹고 있었다. 평상시에 살짝 엉뚱한 구석이 있는 형이었지만, 덕분에 우리 둘은 잘 맞았다.
여행에서 배운것들과 즐거웠던 것들, 힘들었던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형이 갑자기 "자전거나 차 없이는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글쎄..?"라고 얘기는 했지만, 내심 궁금하기도 했었다. 안그래도 자전거 여행을 끝낸 다음 국토종주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걸어서 여행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걷고 싶을 때 걷고, 뛰고 싶을 때 뛰는 프로그램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키지 않아서 참가 신청을 안하고 있었다.
"우리 둘이 가면 되지."
식사 끝자락에 형이 먼저 제안을 했다. 국토 종주를 걸어서 한번 더 가자고 했다. 나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손사레를 했다. 하지만 형의 의지가 너무 완고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국토종주 자전거 길이 아닌, 동해안 종주 자전거 길을 떠올렸다. 동해안 종주 자전거길은 강원도 '통일전망대'부터 시작해서 포항 호미곶까지 이어진 자전거 길을 이야기 한다.
거리로는 400km 정도 된다.
이번 여행은 걸어가기로 하였다.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번째로 자전거로 가면 갈 수 있는 길이 정해져 있었다. 자전거가 고장나면 속수무책으로 발이 묶여야 했다. 체력이 다른 것도 문제가 됐다. 그렇게 신발끈을 동여메고 메고 형이랑 둘이서 여행을 떠났다.
[우문현답]
걸어서 국토종주 여행을 떠났던 때가 군대가기 6개월 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의아하기는 하다. 특히 봉사활동을 가면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제일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굳이 지금 그 고생을 하러 간다고요?" 라고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 질문에 답은 군대까지 무사 전역한 지금 할 수 있는 것 같다.
군대에 가기 전에 나는 진짜 헛똑똑이었다. 내가 제일 잘났었다. 도서관에 가서 코 박고 책을 읽은 후 다음 날 수업시간이 끝난 뒤 교수님과 논쟁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정치, 경제, 역사 할 것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교수님들과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으니 착각할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리학과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방아, 넌 너무 인풋(INPUT)만 있는게 문제야"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배낭을 매고 세상 구경하러 떠났다.
여행의 진짜 진 면모는 군대에서 나왔다. 그리고 복학하고 나서 꽃을 피었다. 여행길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진짜 정말 엄청 힘들었다. 첫째 날 40km를 걷고 너무 발바닥이 아파서 가만히 서있지도 못하였고, 그 다음 날 부터는 히치하이킹도 하며 여행을 하였다. 하지만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이 어려운거를 혼자 하고 있다는 막막함이었다. 그런데 군대는 달랐다. 군대는 행군을 해도 다같이 했고, 힘들어도 다같이 힘들었다. 물론, 힘든걸 나눈다고 해서 힘듦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아픔을 같이 공감할 수 있다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옆의 사람들과 무언가를 나눈다는 거는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군대를 전역한 후 복학해서는 동기지만, 서먹서먹했던 친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대학교 1학년 때 정말 좋아했던 여자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의아한 눈빛이었지만, 잠시 후 같이 쏘주나 한잔 하자고 하였고, 그렇게 친구 자취방에 가서 밤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뒤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연애를 해도, 헤어지게 되도, 첫 회사에 합격하게 되도, 그 회사를 퇴사하게 될 때도 그친구와 술잔을 비었다.
인생의 지혜가 도서관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답은 밖에 있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었다.
[나랑 같이 여행을 떠날 사람 구함]
여행 마지막에 찍은 사진이다. 살은 다 타고, 발도 퉁퉁부었었다. 여행하며 형이랑도 엄청 싸웠고, 나중에는 형이 일정이 생겨서 혼자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하지만 여행길에서 사람들에게 배웠고, 사람들 덕분에 살았고, 여행 끝자락에서는 사람때문에 다시 일어났다.
이번 소년의 여행기_ 걸어서 국토횡단 편은 내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국도에서 감자떡 떡을 팔던 이모, 간이 역장님에게 점심빵 장기 한판, 울면서 먹은 솜사탕 등등의 에피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