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바라본 철학이야기 1
이번에 데카르트에 방법서설을 읽으면서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가 계속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속에 나오는 주인공 로봇인 베이맥스에 존재에 대해서 과거에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어서 일 것이다.
먼저, 이 이야기를 하려면 기본적인 빅 히어로에 대한 내용 이해가 필요하다. 빅 히어로는 두 명에 천재 형제가 영화 주인공이다. 형은 성실한 모범생 스타일인 반면에, 동생인 히로는 머리가 좋은 나머지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을 가고 논문을 쓰는 평범한 일상을 재미없는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동생이 걱정되었었던 형은 동생에게 자신에 LAB실을 보여줌으로써 동기를 부여해주고, 동생에 입학 작품을 같이 준비해 준다. 이때 동생을 LAB실로 데려가서 보여준 로봇이 베이맥스이다. 시간이 흘러 히로에 로봇은 사람들에게 열광을 받고, 히로에 입학은 확정이 되지만, 화재로 인해서 형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형에 사망으로 인해 히로는 좌절을 하고, 형이 말 들었던 베이맥스라는 로봇이 형 자리를 대신해서 동생에 성장을 이끌어 준다는 내용이다. 내용만 보면 데카르트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수 있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이 데카르트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히로와 베이맥스는 시공간에 갇힐 뻔한다. 둘 다 동시에 탈출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베이맥스는 한 가지 선택을 한다. 바로 자신에 머릿속에 있는 메모리칩을 히로에게 줌으로써 상황을 탈출하는 것이다. 탈출 이후 베이맥스와 똑같은 모델에 로봇을 히로는 만들었고, 로봇에 메모리칩을 집어넣음으로써 베이맥스는 다시 살아 돌아온 것처럼 영화가 끝이 난다. 이 장면에서 나는 크게 흥분하였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싸웠다. ‘베이맥스는 터널 안에서 이미 죽었다. VS 애당초 베이맥스는 죽는다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일단, 첫 번째로 베이맥스는 본인 스스로가 신체도 갖고 있으며,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도 알고(치료로봇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치료하기 위함이 자신의 존재 목적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와의 기억들로 인해서 인격들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이차원에 공간에서 자신에 신체를 정지함으로써 주인공인 히로를 구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렇게만 본다면 베이맥스는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베이맥스는 베이맥스가 아닌 베이맥스 비슷한 로봇일 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베이맥스가 이 공간에서 갇히고 히로가 다시 베이맥스를 만들어서 재생시켰을 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던 관람객들은 열광하였다. 베이맥스가 마치 살아 돌아온 것처럼 흥분하였고, 나 또한 영화를 보는 동안은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칩을 뽑기 전에 베이맥스는 살아있었고, 현실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베이맥스는 과거에 베이맥스를 복사한 인형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베이맥스가 살아 돌아왔고 같은 인격체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로봇이기에 소프트웨어만 같다면, 하드웨어가 달라도 같은 로봇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베이맥스는 확실하게 인격체로 부상된다. 하지만 영화 끝에서 세상에 딱 하나인 존재가 아닌 양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열광한다. 난 바로 이 부분이 데카르트가 말한 ‘존재’로써 베이맥스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데카르트는 자신에 방법서설에서 세상 모든 것이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것이고 우리는 어떠한 프로세스에 따라서 세상을 인식한다는 전재하에 가장 철저하게 존재하는 것들을 찾아간다. 그러다 그 끝에서 ‘생각하는 존재야 말로 결국에는 생각하는 개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IT시대 인공지능들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개인들 스스로가 생각도 하지만 결국에는 복사가 가능한 시스템들이다. 즉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들 각자들을 개체들로 인식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