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름으로 1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세상이고 싶으셨나요?

by 큰손잡이

난 아버지와 사이가 매우 좋다. 아버지가 친구 같은 아버지는 아니시다. 오히려 엄격하신 아버지에 좀 더 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청소년기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와 사이가 이렇게 좋지는 않았다. 아버지한테 숨길 일도 참 많았고, 같이 나누고 싶지 않은 부분도 정말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일이 있어도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버지한테 여쭤본다. 때로는 투정에 형태로, 때로는 진지하게 조언을 구하며 질문을 드린다.


이렇게 질문을 많이 드릴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사는 세상은 아버지의 영향이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나오면 우리 두 부자는 음료수를 꺼내는 칸 앞에서 옥신각신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목욕탕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는 편의점에서 파는 음료수보다 1.5배 비싸다. (편의점이 1000원이면 목욕탕은 1500원이다.) 그러면 아버지가 음료수 하나 사주겠다고 하면 어릴 적 나는 "저거 비싸. 나 안 먹어"라고 말씀드리면서 거절을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이 정도는 사줄 수 있어요 이 녀석아"라고 말씀을 해주시면서 음료수를 사주셨다. 그때 아버지는 어딘가 삐지신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는 '아빠 지갑 생각해 줘도 싫데.' 라면서 뾰로통 해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내가 조카를 데리고 목욕탕을 가게 됐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어찌 그리 이쁜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면서 "갖고 싶은 거 내가 다 사줄게!"라는 말을 입에 담고 살고 있다. 그런데 하루는 조카가 "이거 엄청 비싼데... 진짜 비싼데..." 하면서 망설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정도는 사줄 수 있어~ 인석아!" 하면서 녀석이 꼬옥 집고 있던 음료수를 결제했다. 그리고는 조카 녀석 눈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어져 있었을지를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는 우리 아버지도 이랬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 초년생으로 세상을 살아보니 세상은 생각보다 '부조리'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 느낀 부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군대에서 부조리는 말 그대로 '조리(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부조리하다.'라고 부조리를 말할 수 있지만, 사회는 애당초 '조리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인간이지만, 돈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 차이에서 조리는 달라지고, 선택을 하는 사람과 선택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조리는 또 달라진다. 그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조리를 내려두고 그때그때 조리에 맞게 살아간다.


'그런 조리 없는 내 모습이 이 꼬맹이 녀석에게도 비쳤을까.. 자기 날개를 피우기 전에 자기를 숨죽이는 것부터 배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겨우 2000원짜리 음료수도 누구보다 당당하게 사주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웃기며 슬퍼진다. 하지만 그만큼 지금 내 모습이 꼬맹이에게는 강렬한 이미지로 남을 테니 누구보다 당당해지기로 다짐한다. 지금 난 2000원짜리 음료수가 아니라 당당한 세상을 선물하고 있다.


'조카인데도 이런데 우리 아버지는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 어깨에 힘을 꼿꼿이 주셨던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따라 해 본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그렇게 나도 한 발씩 어른이 돼가는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에 어깨는 작아진다고.. 하지만 나에게 아버지 어깨는 시간에 흐름에 따라 작아지는 상대적인 것이 아닌, 거목과 같다고 생각한다. 작아진다는 느낌이 들 때부터 그 어깨는 나에게 영향력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나보다 작고 약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기대하지는 않지 않은가. 하지만 아버지의 거목과 같은 아버지 어깨에 나는 다시금 그 든든함과 그 지혜를 빌리러 찾아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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