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떠블로 가'는 청춘들에게

자존감 회복 시리즈 2 (피로사회, 니체에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취업시장

by 큰손잡이

"취업이 어렵다"

중학생 때 수학선생님이 되겠다던 친구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선생님이 되겠다는 친구는 대학도 수학교육과를 진학하였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지금 수학교육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닌다. 프로그래머가 상대적으로 취업이 수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친구에게 다른 친구들이 "야 그러면 학원 선생님이라도 해보면 어때"를 묻자 친구는 "그건 그쪽으로 준비한 애들이 하는 거야"라고 이야기를 했다.


잠시 후 기계공학을 다니는 친구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이 친구는 기술을 배워서 회사를 차려나가는 것이 꿈이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이 친구도 취업이 마음처럼 안풀렸다. 그러던 중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취업이 쉽다는 말에 프로그래밍을 배운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이 친구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는 이전에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연구하길 보다는 취업 잘되는 걸 배우는데 시간을 쓰는 친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면, 우리는 모두 의기소침해져 있고 기가 죽어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랬다. 스펙이 좋은 친구는 다른 스펙이 좋은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면접에서 떨어진 친구는 '난 진짜 어떡하지' 하는 고민에 우울해하고 있었다. 작은 회사를 다니다가 나온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친구는 더 했다. '이런 작은 회사에서도 버티지 못했는데'라며 말을 이어갔다. 안타까웠다. 친구들이 어깨에 힘 빠지고 풀 죽어서 이야기하는 모습은 남일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 인사팀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인사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모두가 취업준비를 잘해놨다. 그래서 더욱 사람을 뽑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기준이 높았을 리는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계속해서 '묻고 더블로 가'라는 유행어처럼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자신에 쓸모를 회사에 보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하나 더.. 하나 더.. 를 외치면서 살아갔다.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친만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까? 회사가 어떤 인재를 뽑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지만, 그전에 내가 회사에 다닐만한 사람인지 아닌 사람인지, 어떤 회사가 나한테 맡는 회사일지 생각해보고 취직을 하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회사 면접에서 "~~ 씨 우리 회사 이걸 하려고 하는데 이거 할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에 "네 할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준비만 해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묻고 더블로 가'를 외쳤을까? 어쩌면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삶을 산 것 아닐까 생각한다. 한병철의 '피로사회'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우리 사회상을 그린 대목이 있다. 먼저 니체는 차라투스트를 통해서 초인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니체는'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삶을 살 것이다. 이것이 초인이 지향하는 삶이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서 자기 발전을 해나가는 것을 피하라고 이야기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한병철은 자신의 책에서 각 시대마다 생물학적으로 병명이 세기 명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에 병이 화두인 세상이다. 그 마음에 병은 지극히 친근한 것에서 오는데, 우리는 지금 자기 자신을 학대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필요 이상에 것들을 위해서 피곤하게 사는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


묻고 더블로 가기 전에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묻고 더블로 가야 할지, 그래서 나 스스로가 독립적인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좋겠다. 그러면 더 이상 취업을 못해서, 취업이 어려워서 내 자존감이 상처 받는 일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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