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2
여기까지 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장을 하지 않아도 이미 난 충분하다.'
'난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성장은 고되고, 때로는 잔인하다.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너무 이해된다. 만약 지금 누리는 행복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누릴 수 있다면, 누가 "너 성장해야 돼"라고 말해도 "굳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단하지 않았다.
화창한 주말 가족들과 같이 웃으며, 식사 한 끼 하는 게 그렇게 행복해 보인다. 이 행복이 영원할 수만 있다면, 큰 욕심 안 부릴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삶은 '사진' 같을 수 없었다. 직장, 가족, 자산, 건강... 어느 날은 고요했지만, 어느 날은 폭풍이 몰아쳤다. 그때마다 버티는 방법을 체득했고, 그 시간이 쌓여서, 지금의 행복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성장은 결국 "유지의 기술"이었다.
더 나아가기 위한 게 아니라, 사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기술.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려본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 삶은 행복할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성장은 꼭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집착을 비워내고, 욕망을 정리하여 마음의 자유를 넓혀가는 일이다.
무소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소유와 집착에 끌려다니지 않는 마음상태'를 무소유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불교에서 말하는 성장은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쌓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집착과 욕망을 비워내며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곧 성장이다.
사실, '집착에서 벗어나는 마음의 확장'은 자기 설계와 맞닿는 부분도 있다.
내가 말하는 자기 설계는 다섯 자산을 유기적으로 연동시킴으로써 세속적, 현실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주도한다."라는 부분이 핵심 아이디어다.
무소유가 추구하는 내적 자유와 통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다만, 쌓아서 주도성을 확보할 것이냐, 아니면 집착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것이냐가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무소유를 선택한 사람들도 성장한다. 다만, 그들이 쌓는 건 재산이 아니라 집착 없는 마음과 자율성이다. 그리고 그 과정 또한 엄청 괴로울 것이다.
무소유를 선택한 사람도, 도시 한복판에서 분투하는 사람도 결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한다.
다만, 그들이 쌓는 건 재산이 아니라 '집착 없는 마음'과 '자율성'이다.
성장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언제나 형태를 바꿔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하려 한다.
성장은 나아가는 게 아니라
방향성이 있는 적응이다.
그리고 그건, 멈춰 있는 사람조차 성장의 한가운데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