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습관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같아..'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친구는 흘러가듯 내뱉은 말이었지만, 심리학 쪽에서는 습관에 대해서 꽤 많은 연구와 실험을 하였다. 사람에게 있어서 반복된 행동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은 상상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서 오늘 주제와 연관되는데, 이번 글에서 나는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 또한 연습을 통해 만들어진 생각 중 하나이므로 조종당하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심리학 역사 속에서 재밌는 명제들을 소개하고 순서대로 생각의 흐름을 짚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심리학의 재밌는 명제들을 소개하고 순차적으로 이어 나가볼까 생각 중이다.
(이다음부터는 심리학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쓸 생각이니 읽기 싫은 사람은 이번 글을 안 읽어도 상관없다.)
1. 사람은 습관에게 지배당하고 만다.
심리학의 거장인 프로이트는 지서인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를 수도 있다. 나도 프로이트를 심리학 학사과정에서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심리학 역사 속에서 최초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서 거론한 사람이다. 사람의 의식은 우리가 평상시에 살고 있는 의식과 우리도 의식을 하지 못하는 나만의 기억창고 무의식의 세상이 존재한다.
프로이트의 이러한 이론은 정말 끝내주게 혁신적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의식의 3 수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의식의 3 수준은 촬영을 할 수 없으니 프로이트가 살던 옛날에는 어땠겠는가. 아마 당시 프로이트를 미친 사람 취급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의식의 3 수준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심리학의 한 축이 꿈틀 되게 만들었다. '사람을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로 연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행동주의 심리학이 탄생하였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사람의 행동은 계속되는 반복 훈련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대표적인 실험이 '파블로프에 개 실험'이다. 그리고 그들의 실험 결과 훈련만 충분하면 아무런 의미 없는 자극에도 유기체는 반응을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다음부터는 강화물(어떠한 행동의 빈도와 강도를 높이게 하는 매개체)의 강도나 강화물을 주는 빈도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전적 조건 이론에서는 '사람은 심리학적으로 익숙한 자극에 익숙한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2. 사람은 스스로에게 득이 되는 행동들을 골라서 빈도수를 늘릴 수 있다.
고전적 조건 이론에 반대를 하고 사람의 행동에 대한 연구를 한 다른 학파가 있으니 그게 바로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 주의'이다. 조작적 조건 주의를 쉽게 설명하자면, A라는 행동을 하게 되면 상을 주고 B라는 행동을 하게 됐을 경우에는 벌을 준다. 그럼 자연스럽게 사람 및 동물들은 자신들에게 이득이 가는 행동들을 한다는 이론이다. 대표 실험으로는 '스키너의 쥐실험'이 있겠다. 상자 밑바닥에 전선을 깔아놓고 쥐가 A 버튼을 누르면 전류가 안 흘러서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A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경우 A는 불쾌한 전기 자극을 맛보아야 했을 경우 쥐는 스스로 A 버튼을 누르는 행동의 빈도를 높였다는 실험이다. 이런 스키너의 실험은 고전적 조건 주의와 다른 의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은 행동의 빈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모델 학습이론 등 많은 행동주의 이론이 있다.
3. '나만의 징크스 덩어리인 세상'에서 사는 우리. 비합리적 신념 이론 REBT에 관하여
이제 쥐 말고 오늘의 주제인 비합리적 신념 이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비합리적 신념 이론은 영어로 REBT인데, 이니셜이 아닌 풀네임으로 쓰면 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이다. 즉 합리적 마음 행동 치료인데, 앞에서 부터 순차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나의 어떠한 합리적인 생각이 (주의: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개인에게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이다.) 감정상태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럼 이 비합리적 신념이 없다면 우리는 이것을 공부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비합리적인 나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지금 독자들 중에서 자신은 단 하나의 징크스도 없다고 단언할 사람이 있을까? 징크스 또한 비합리적인 신념 중 하나이다. 그러한 나만의 비합리적인 신념들은 평범한 사건들도 다르게 느껴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며 결국 다른 행동으로서 output이 나오게 된다.
이런 나만의 비합리적인 신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쉽지가 않다. 습관 자체가 하나의 종교처럼 나에게는 신념체계로 변해있기 때문이다. 아까 1번 전제인 '사람은 습관에게 지배당한다'는 부분에서 비웃은 독자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나의 행동이 결국에는 내 생각이 됐고, 내 신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린 살고 있다.
그럼 오늘 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나만의 신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비합리적인 신념을 맞닥들이더라도 그것은 신념 그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적인 상담을 할 경우 빈 의자 기법이라더니, 무의식 탐구와 같이 눈에 안 보이는 부분을 안정화하는 작업을 한다면, REBT 심리학자들은 내담자와 논박을 통해서 비합리적인 신념의 피드백을 하는 작업을 통해 내담자의 문제와 마주한다. 즉, 비합리적인 신념은 신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뿐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서도 오늘 하루 나의 습관으로 만들어진 징크스 때문에 힘들었던 사람이 있었는가? 정말 매우 고생했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그 걱정들을 조금은 내려놔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