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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책방 여행자 May 14. 2021

우리는 어디쯤 걷고 있나요?

심리학과 졸업생의 일기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올리고 있었던 '심리 학과생의 경제신문 스크랩' 시리즈가 올라오지 않아서 궁금하신 분들이 많으셨을 거라고 생각합⁷니다. 오늘은 포스팅이 안 올라오는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와 그러한 과정 속에서 느낀 것들을 메모했습니다. 기다리시는 분들께 먼저 말씀 못 드린 점 죄송합니다.




나 혼자만 괜찮은 병. '치매'

외할머님께서 '치매'십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에는 '가족 얘기를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글을 쓰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한테 소중한 분이신 만큼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했던 다짐을 되새기며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와 이별을 해본 경험이 적었기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슬픔을 대하는 방법도 서툴렀고, 보내드리는 방법도 서툴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이 어려움에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외할머니는 평생을 밭에서 일하시다가, 자신이 조금씩 사라지는 병에 걸리셨습니다. 처음에 그 당황스러웠던 기억을 잊을 수 없지만, 외할머니와의 일을 기록으로 남기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외할머니께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드리는데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치매'. 진짜 무서운 병입니다. 청소년 심리학을 공부했을 때 청소년기를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로 꼽는 이유는 청소년 시기에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는 내가 누구이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기이기입니다. 그와 동시에 심리학에서는  마지막 노년을 중요시하게 여깁니다. 바로 자신의 인생과 자아의 대통합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노년기때는 청소년기나 청년기 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다는 생각처럼 나의 인생이 그렇게 돌아왔는지를 돌아보고 행복을 느낄 수도 우울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해당 부분은 '에릭슨의 생애주기 8단계'이론에 적혀있는 내용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이 있다면 위의 서적을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래서인지 청소년들이나 어린 친구들에게 '본인'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하면 미래에 본인이 얻고 싶은 것과 현재를 비교하면서 이야기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님께 '어떤 분이신가요?' 하고 여쭤보면 본인이 살아오셨던 인생을 얘기해주시고는 '젊을 적에는 이런이런 것들을 이루고 싶으셨다'는 말씀을 하시고는 합니다. 여태까지 걸어오셨던 시간들이 당신이 되신 겁니다.


그런데 치매는 그런 시간들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나 자신이 사라지는 사라지는 병입니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 뭘 안 좋아했는지도 기억을 못 하신 채 감정만 남아가십니다.

외할머니께서는 평생을 밭에서 일하시며 6남매를 키우신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6.25 전쟁 중에서도,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으로 다시 일어났을 때도, IMF로 모두가 힘들어하던 시기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할머님께서는 밭에서 나물을 캐시고 장에 나가서 파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편찮으신 지금도 "ㅇㅇ야~ 취업은 했어? 돈은 벌고 있지?" 하시면서 돈을 버는 수단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십니다. 할머니께서는 지금. ''는 조금씩 사라지지만, 살아생전의 감정은 또렸해지십니다.



그것들은 또 전화질이야?!?!

 이론이 아닌 실제로 닥쳤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감정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내가 사라진 자리를 감정이 메꾸시는 듯합니다. 6남매를 키우셨지만, 할머니한테 잘하는 자식이 있고, 못하는 자식이 있다며, "이번 명절에는..."이라고 언급하셨던 할머님께서 기억에 납니다. 그런데 편찮으신 후에는 기다림이 분노로 바뀌신 듯하였습니다.  '전화질(전화하는 행위)!'이라는 단어를 내뱉으실 때면 얼굴이 빨개지시고 그리운 자식들 이름이 나오십니다. 그러고는 한차례에 감정 폭풍과 함께 평생 못하셨던 말들을 허공에 하시고는 합니다. 그러다가도 자주 찾아뵈는 자식, 손주들의 재롱을 보실 때면 좋아서 노래도 부르시고 춤도 추십니다. 그러고는 "어제도 밭에 나가서 일하지 않고 놀고 싶으셨다."라고 하십니다.


90년의 세월 동안 남은 감정들은 몇 없으시지만, 분노와 놀고 싶으셨던 마음을 강조하실 때면 참 안타깝습니다.



도대체 나를 어디로 팔려고 하는가..

 할머님께서는 조그만 10평짜리 방에서만 생활하셨습니다. 마당 딸린 집이었어도, 생활하시는 공간은 딱 방과 부엌, 화장실 정도셨습니다. 70이 넘어가시고는 집 앞의 밭에도 못 나가셨으니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할머니 모시고 바닷가 가기'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포스팅을 못한 이유가 할머님을 모시고 바닷가를 갔다 오느라 그랬습니다.) 작년에는 실패했었습니다. 할머님께서 차를 타고 멀리 나가시는 것을 경계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할머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다른 기억은 다 잊으셨더라도 마을 괴담은 기억하시고 계셨습니다. 할머님께서 사시는 마을에 10년 전쯤 괴담(?)이 하나 돌았었다고 하시는데 "자식들이 어디 놀러 가자고 차에 태우고는 요양원이나, 이름 모르는 곳에 버리고 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는 자식들 입장도 이해가 갔지만, 평생 정든 동네를 떠나서 이름 모를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시는 게 얼마나 무서우셨을지도 짐작이 갔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편찮으신 이후에는 차를 타고 나가시는 것을 싫어 하셨습니다.

 작년에 그러한 일화를 알게 된 후 올해는 할머님과 자연스럽게 거실에서 이야기하다가 바깥 마루에서 이야기하고, 마당에서 이야기하고, 집 앞 대문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할머니를 밖으로 모셨습니다. 그러고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최대한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대화가 정상적으로 오가지는 못했지만 할머님께서는 손주의 진심을 아셨는지 차를 구경하신다며 탑승을 하셨고, 안전벨트를 해드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는 어디쯤 걷고 있나요?

 드라마에서는 드라마틱한 연출을 위해 편찮으신 어르신들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시고는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옆에서 제가 경험했을 때 그런 경우는 적었습니다. 오히려 기억이 늘어난 고무줄.. 늘어난 비디오테이프 같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시지만, 현재로 넘어오시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시고 많은 고통을 같이 하십니다. 그래서인지 좋았을 때의 세상에서 머무시고는 합니다. 저는 손주에서 택배기사로 바뀌기도 하고, 운전기사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시고는 합니다.


들어드리는 일 말고는 해 드릴 일이 없습니다만, 할머님께서 이야기하시는 일화들을 기억했다가 할머님 말동무가 되어드리고는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님께서 무언가 말씀을 하시기 전에 "할머니 지금이 어느 때예요? 저 누구예요?"라는 질문을 꼭 여쭤봅니다.


항상 과거에 걷고 있는 할머님과 그걸 바라보시는 엄마와 이모님들을 뵐 때면 속상합니다만, 지금이 우리에게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저의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걷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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