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핀란드 여행에서 온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커다란 배낭을 메면 너무 여행객처럼 보일 것 같아서 에코백에 노트북과 책, 카메라를 꾸역꾸역 넣고 나왔다.
핀란드 중앙역 근처에 바구니처럼 생긴 독특한 건물이 있다. 아파트 2-3층 정도 높이인데 벽이 나무로 된 원통형 구조이다. 시내를 오가다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건물이고 침묵의 교회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종교가 없고 교회에 흥미가 없어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이다. 그런데 교환학기에 종강을 하고 15개국 유럽 여행을 하며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유럽은 덜 흥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억울했다. 그래서 신앙심은 없지만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예배나 미사를 드리지 않더라도 교회나 성당에 자주 들러보았다. 이번 핀란드 여행 전에도 침묵의 교회에 꼭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왔다.
교회 내부는 생각보다 작았다. 한 편에 여섯 줄씩 총 열두 줄 의자가 있고 앞쪽에는 촛불과 성경책과 십자가가 있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려 하지 않는데 왼편에 놓인 촛불 하나는 왜인지 위태로워 보였다. 한 번씩 사람들이 일어서서 나가면 문이 닫히고 30초나 지난 뒤에 휘청이기 시작했는데 그걸 보면서 이 텅 빈 공간의 밀도가 상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운데에는 8분의 1쯤 펼쳐진 성경책과 십자가가 놓여있었고 두 시간쯤 뒤에 다시 오면 반쯤 펼쳐진 채 놓여있을 것 같았다.
안에 있는 몇 사람들은 눈을 감고 기도를 하거나 초점을 버린 채 어떤 것을 응시하거나 눈알을 도륵도륵 굴리고 있었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로 아무리 둔한 사람도 그곳에서만큼은 한껏 예민해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요에 짓눌려 못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따금씩 누군가가 내는 깊은 한숨소리가 내 숨통까지 틔어주는 듯했다. 중간에 앉아 멍을 때리면서, 글을 쓰면서, 사람과 촛불과 십자가를 관찰하면서 ‘침묵’이라는 단어도 그 공간의 무거움을 표현하기엔 좀 가볍다고 생각했다. 저기 위태로워 보이는 촛불도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에 깔려 낮게 구부러진 채 흔들리는 게 아닐까 하는 비과학적인 문장을 떠올리며 종교와 공간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했다.
당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데도 들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커다란 기도를 하고 나왔다.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는 어떤 계기들이 있을까. 경험하지 않은 것을 믿지 않는 나에게도 오늘이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