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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화 Sep 09. 2024

열여덟 유럽일기 011

인연이 된다면 만나겠지

2016.09.17

Hannover, Deutschland


 이른 아침부터 들리는 사부작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얼굴을 보지 못했던 룸메이트 중 여자가 짐을 싸는 소리였다. 나름 조용히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커다란 백팩을 옮길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잠을 설쳐서인지 여자가 나가고 도로 잠에 들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찬공기에 잠이 솔솔 왔다.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11시가 다 되어있었다.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날씨에 관광은 뒤로하고 마트나 다녀오자 마음먹었다. 판트를 위해 다 마시고도 꾸역꾸역 들고 다니던 음료병을 챙겨 들고 길을 나섰다.


 독일에는 판트(Pfand)라는 재미난 제도가 있다. 물건을 살 때 재활용이 가능한 패키지의 상품일 경우 25센트 정도 병의 비용을 미리 받고 후에 병을 반납하면 그 돈을 돌려주는 제도였다. 신기하기도 하고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아 꼭 한번 이용해 보고자 했다.


 한국에서도 대형마트에서 공병을 받아주지만 독일은 그 범위가 좀 더 광범위했다. 음료 캔과 물 페트병도 판트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마트에 판트 기계가 있었다. 그 앞에는 장바구니 한가득 빈 패트를 가져와 서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동그란 입구에 페트병을 넣으면 위잉~ 거리는 소리가 나며 병이 돌아갔다. 바코드를 읽고 사라지면 다음을 넣었다. 확인을 누르자 금액이 찍힌 영수증이 나왔다. 혹시나 잃어버릴까 잘 챙기고 마트구경을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놓칠 수 없는 게 마트 구경이다. 한국에서도 마트가 재밌기는 했지만 외국의 마트는 마치 놀이공원 같다. 낯설지만 흥미롭고 어딘가 익숙한 이 장소를 둘러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사라지곤 했다.


 한참을 구경했지만 손에 들고 나온 건 물과 주스, 토마토 한팩이다. 계산할 때 판트 영수증을 주니 자동으로 금액에 할인이 들어갔다. 2유로 동전하나를 내고 거스름까지 받았다. 물과 주스를 다 마시면 나에겐 또다시 0.5유로가 생길 터였다.

 역시 장기여행으로 독일을 선택하길 잘했다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서 또 다른 룸메를 만났다. 오늘이 마지막 밤인 터키출신 남자는 내게 견과류 한 줌을 건네주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토마토를 건네주니 고맙다는 답이 돌아왔다. 남이 주는 거 함부로 먹는 거 아니라는데... 고민하자마자 남자가 견과류를 입에 넣었다. 저가 먹던 것을 건네준 것인지 맛나게 먹길래 나도 따라먹었다. 아몬드는 아니고 땅콩도 아니었다. 고소하고 맛있었다. (아마도 마카다미아가 아니였나 싶다)


 점심은 토마토와 견과류로 때우고 오후 일정을 고민했다. 식사가 부실하다는 생각에 오늘 저녁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겠다 싶었다.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신(new) 시청사는 하노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아름다운 외관과 내부도 유명했지만 전망대에 올라가는 기울어져있는 리프트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가이드북에서 읽었을 때는 가볼까 싶었지만 날씨가 날씨인지라 가도 안개밖에 보이지 않을 듯해 반쯤 미뤄두었다. 호수공원과 그 근처 박물관이나 갈까 할 때쯤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인사하자마자 쉼 없이 말을 걸던 K는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K는 베를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반쯤은 못 알아듣고 웃고 있던 나를 붙잡고 K는 영어를 쓰는 사람을 만난 것이 반갑다며 한탄 아닌 한탄을 내뱉었다. 독일중에서도 유독 여기가 영어가 안 통한다며 투덜거리던 K는 앞으로 일정을 물어봤다.

 공원을 갈 생각이라 말하자 이 날씨에 외부를 나가냐며 갸웃거리더니 본인은 낮잠을 자고 신시청사를 올라갈 거라 했다. 일정이 맞으면 저녁을 같이 먹자 하길래 5시까지 숙소로 들어오겠다 말하고 길을 나섰다.


 밖을 나오니 추울 거란 걱정과 달리 온도가 딱 좋았다. 빗방울이 미스트처럼 날렸지만 우산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도 호기롭게 모자만 쓰고 길을 걸었다.

 호수와 박물관이 목표였지만 가는 길에 신시청사가 있어 잠깐 들렀다. 막상 건물에 들어서자 여기까지 왔는데 안 올라가긴 아쉽지 싶어 티켓을 끊었다. 3유로를 내자 티켓을 건네주는 직원이 올라가서 40분을 기다리라 말했다.

 40분? 14분을 잘못 알아들었나? 사람이 없어 보이는데 왜 그런가 싶었다. 리프트를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자 직원의 말이 한 번에 이해되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리프트 앞에서 길게 줄 서있었다. 도심에는 사람이 그리도 없더니 죄다 여기에 몰려있었나 보다.


 줄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기다림의 처음 10분은 별 탈 없었다. 숙소에서 여기까지 걸어오고 또 계단까지 올랐던 터라 조금 덥기까지 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줄이 야외로 빠지고 미스트였던 비가 조금 강해지자 '아차' 싶어졌다.

  땀이 식은 몸은 금세 열을 뺏기기 시작했고 열심히 챙겨 입은 긴팔은 너무 얇았다. 더군다나 바지는 반바지였기에 보온의 기능이라곤 없었다. 

 

 비를 맞으며 떨고 있는데 졸음까지 쏟아졌다. 오늘 11시까지 푹 잔 몸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게 잠이 쏟아졌다. 이게 저체온증인가..? 싶게 달달 떨리고 꾸벅꾸벅 졸면서 20분을 버텼다. 다행히 중간에 비가 약해졌는지라 버틸만했다.

 기다림의 끝에 탑승한 리프트는 신기했다. 그리고 굉장히 짧았다. '신기하지! 자 이제 내려!' 싶은 리프트가 끝나고 꼭대기층으로 걸어 올랐다. 금방 다시 몸에 열이 올라 땀이 났다.

 

 높은 곳에 올라가니 날씨와 별개로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난 높은 곳이 좋았다.

 날이 흐렸지만 상관없었다. 흐린 날씨는 별거 아니란 듯이 눈앞에서 붉은 지붕의 도시가 넘실거렸다.

정말 독일다운 풍경이었다


 다시 리프트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다행히 올라올 때만큼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내려와서 내부를 구경하다 도시의 모형을 발견했다. 1600년대 도심의 초기 모습과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쯤의 모습, 그리고 폭격을 맞아 황폐화된 도시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다.

 문명이란 건 정말 오랫동안 만들어지고 아주 빨리 무너지고 결국 다시 복구되는 것 같다. 전쟁 때의 독일의 모습은 대부분 '자업자득'이지만 실제 그 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속이 편하지만은 않다.


 잠깐 구경이나 할까 한 장소에 졸지에 2시간이나 있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와 박물관을 가기에는 너무 늦은듯해서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비가 그친 호수 위에서 오리 몇 마리가 바쁘게 몸장단을 했다. 땀이 식기 전에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원을 돌았다. 가지 못한 박물관의 외관도 구경하고 약속시간에 맞추어 숙소로 돌아왔다.


 K와 만나고 저녁식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레스토랑'이라면 쫄아버리는 나와 달리 K는 식당을 찾는 게 익숙해 보였다. 구글 리뷰를 돌려보던 그는 샐러드가 먹고 싶지만 고기 역시 먹고 싶다며 길을 앞장섰다.

 유럽에서의 식당 주문은 너무도 낯설었지만 용케 K를 따라 주문을 마쳤다. 샐러드와 세트인 메인요리 하나를 골랐는데 24유로나 나왔다. 가격에 비해 양과 맛은 아쉬웠지만 첫 시도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식사 내내 체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 소화불량의 원인은 옆자리에 앉은 백인 할아버지였다. 생긴 건 아저씨에 좀 더 가까운 나이였으나 내가 그에게 악감정이 있기에 할저씨(할아버지+아저씨)라 부르겠다.

 그 할저씨는 나와 k가 식당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착각이라 생각했지만 창가를 바라볼 때마다 마주치는 눈이 착각이 아니라 말해주었다. 계속되는 시선에 K 역시 불쾌함을 호소했고 메뉴판으로 시야도 가려보았지만 좁은 식당내부에서 도망칠 곳은 요원했다.

 

 본인이 밥 먹고 후식 먹고 자리를 떠 식당을 나가서도 그 할저씨는 우리를 계~~속 쳐다봤다. 본인의 일행을 기다리며 창밖에서 우리를 바라볼 때는 이쯤 되면 '내가 모르는 지인인가?' 싶어졌다. 

 식당에 머무른 1시간 반 동안 그 안에 동양인은 나와 K밖에 없었다. 

 "Old white man" K는 불편하지만 익숙한 듯 할저씨를 무시했다. '동양인 여자 둘이니 더 만만해 보였겠지.' 만약 같은 동양인이라도 내가 190cm가 넘는 거구라면 좀 편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나의 몸도, 나의 얼굴도 만족하고 사랑하지만 가끔씩 내 키가 2미터쯤 되었으면 싶다.

 팔에는 용을 박아 넣고 등판에는 커다란 범을 그려 넣으면 내 인생이 좀 더 원활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열여덟 유럽일기는 앞으로 월/목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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