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작가 동하 Jan 26. 2021

마흔이 돼서야 축구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주의 : 이 글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포함돼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축구를 좋아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다. 뻥 축구의 매력에 빠졌다. 입시 압박이 만만찮은 상황에서 뻥뻥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고1 때는 2,3학년 선배들에 밀려 운동장 한 구석탱이에서 공을 찼다. 메인 구장에 자리가 비는 날이 좀처럼 없었다. 구석이라도 좁으면 좁은 대로 경기하는 재미가 있었다. 점점 뛸 수 있는 구장이 승급 됐고, 2학년 2학기가 되면서는 메인 구장을 차지했다. 3학년들이 2학기부터는 수능에 집중하게 되면서 운동장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사 시간엔 허겁지겁 밥을 먹고 공을 찼고 체육 시간, 청소 시간 등 틈나는 대로 5분이라도 더 차려고 헐레벌떡 운동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한여름엔 온몸이 땀 샤워로 흥건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찝찝함 따위로 공 차는 열정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열정 하나였다. 눈에 공이 보이면 때렸고, 나를 제치려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섰다. 오로지 공만 보였다. 어떻게 하면 잘 파고들 수 있을까, 어떤 기술을 써야 할까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던 시절이었다. 땀 흘리는 게 좋았다.


대학을 갔더니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지금처럼 풋살장이 활성화되던 시기도 아니었다. 간혹 있던 과 대항전에서 몇 차례 뛴 정도다. 1년에 한두 번 있는 교회 소풍 땐 축구장에서 경기하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러다 단체 순서로 보물찾기, 피구가 있다며 축구 그만하라는 사회자의 진행이 싫었다. 계속 공이나 차고 싶었다.


군대에서 좋았던 건 그래도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기회가 있었다는 거다. 그때도 별다른 기술 축구는 아니었던 듯하다. 내 몸의 상태가 생을 통틀어 가장 최정상에 있을 때였으니 부족한 부분은 체력으로 만회가 가능했다.


전역을 하고 서른이 되고 취업을 하면서 주말에 한 번씩 풋살을 기 시작했다. 그렇게 직장 스트레스를 날렸다.


그러다 애 둘이 태어난 몇 년간은 다시 육아모드로, 여유가 없었다. 둘째가 말하고 걸으며 숨통이 트일 무렵 다시 공을 차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축구 인생은 온오프의 반복이었던 셈이다. 여건과 환경이 될 때는 고, 여의치 않을 땐 몇 년 쉬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온 모드일 때도 축구 기술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적어도 마흔이 될 때까진 말이다.


그러다 작년 마흔이 됐다. 내가 처음으로 축구 기술을 본격적으로 익혀야겠다 마음먹은 나이. 축구인생 2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왜 축구기술 연마를 생각하게 된 걸까. 반추해 보면 두 가지 큰 요인으로 좁혀진다. (뒤늦게 이유를 곱씹는 걸 보면 분명 연역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기술을 익혔던 건 아니다. 몸이 먼저 반응했고, 그 이유를 1년이 지난 이제 와서 정리해 보는 것이다.)


첫째는 몸의 변화다. 이젠 열정으로만 기술의 빈 공간을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인 나이가 돼 버렸다. 머리보다 다리가 그걸 먼저 깨달았나 보다. 뇌가 여전히 과거의 열정 가득하던 몸을 추억하는 사이, 고맙게도 다리가 신호를 준 것이다. 한창 몸이 잘 반응할 땐 누군가에게 제침을 당해도 이 악물고 따라잡을 때가 있었는데 이젠 달라졌다. 체력의 빈 곳을 기술이 채워주어야 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둘째는 '축구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과거보다 강해져서다. 예전엔 이기든 지든 심장이 뛰는 자체에 만족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데 갈수록 승부에 대한 욕구가 세지는 걸 느낀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좋은 신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건 지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축구는 팀 경기지만, 최소한 내 실력이 올라가면 어찌 됐든 우리 팀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니 잘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축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작년 기술 연마에 들어갔다. 나의 첫 '유튜브 스승'은 축구 강좌였다. 킥, 드리블, 전술 등 없는 게 없더라. 솔직히 20여년 살면서 '킥이 왜 이렇게 멀리 나가지 않는 걸까' '슛과 롱킥의 차이가 있는 걸까' 이런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도 몰랐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만 찼었다. 이제 와서 '이걸 왜 몰랐을까'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이런 이론도 없이 열심히 구나 싶다.


그럼에도 기특한 부분도 보인다. 이론을 몰랐지만, 실전에서 뛰면서 자연스레 체득한 기술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럴 땐 이렇게 트래핑 하는 게 효과적이구나' '이럴 땐 이렇게 방향을 바꾸는 게 좋구나'와 같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실전에서 유용하게 사용했던 것들이 있다. 그런 걸 이론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에선 "이제 공을 찰 때가 아니라 공을 칠 때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 봐도 그렇다. 온라인 카페를 통해 풋살 용병으로 참가할 때 보면 내가 최연장자일 때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다. 아직까진 좌절하기보단 자극을 받는다. 기술을 더 연마해서 2030 사이에서 최소한 1인분의 역할을 하자는 목표가 생긴다.


그런 점에선 속히 코로나 시국이 끝났으면 좋겠다. 갈고닦은 기술들을 실전에서 제대로 좀 써보고 싶다. 축구장아 기다려라. 기술을 장착한 40대 아재가 간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가족 우체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