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디카페인 콜롬비아 엑셀소

by 만델링

구직 중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다. 일 4시간, 주 20시간. 평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주급이든 월급이든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있다. 대졸 이상, 여성, 나이 무관, 12개월 이상 연속 근무 가능자. 딱 원하는 근무 조건이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이름, 나이, 학력을 썼다. 더 쓸 게 없다. 나를 무엇으로 말하나. 서른 이후 돈을 벌지 못했다. 좋게 말하면 공생, 적나라하게 말하면 기생. 아주 오래 얹혀사는 중이다.


쓸 것도 없는데 소설처럼 써야지 하는 심정이다. 45년 해방되는 해, 가난하여 일찍 독립해야 하는 운명으로 태어난 남자아이가 있었다. 갓난쟁이였을 때부터 키가 크고 얼굴이 훤했다. 46년 눈이 내려 뒷산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던 날 태어났다. 아기의 엄마는 퉁퉁 불은 몸으로 미역국을 손수 끓여야 했다. 늘 일손이 부족한 가난한 집의 첫째 아이로 세상에 나왔다. 흰 눈 내려 고요한 세상의 밝음 대신 배고픔을 먼저 안 총기 있는 아이였다. 한 해 차를 두고 세상에 나온 두 아이의 공통점은 집이 가난했다는 것과 첫째라는 것이다. 이후 성인이 되어 두 사람은 69년 벚꽃은 지고 잎만 성성한 늦봄에 만났다. 내 엄마가 되기 전 마는 양장점 재단사로 일했다. 친구 소개로 만난 남자는 누가 봐도 잘생긴 사람이었다. 육군 병장 만기 제대를 했고 새시 조립 공장에서 유리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었다. 70년 둘은 결혼했다. 결혼 전 모은 돈으로 방 한 칸과 부엌이 있는 작은 상가를 얻었다. 그곳에서 유리점을 하고 살림을 했다. 네 명의 아이를 낳고 밥을 벌고 청춘을 다 쏟았다.


유리 집 첫째 아이는 감기 한 번 없이 10대를 보냈다. 동생들이 줄줄이 콧물, 마른기침, 열감기를 할 때도 옮지 않았다. 매일 아침 거르지 않고 줄넘기를 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국립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과에 간신히 입학했다. 학문의 전당에서 공부하기보다 존재의 오롯함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왔다 갔다 했다. 부모님께 받는 용돈이 부족해서 과외하러 다녔다. 중 3, 고1 수학을 가르쳤다. 열정적으로 살지 않는 내 모습에 엄마는 실망했다.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았지만 너그러웠던 엄마는 안타까워하셨고 이후로 내게 기대라는 걸 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빨리 알아챘다. 엄마의 예견처럼 내 인생은 반짝거리지 않았고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아이를 낳고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었다. 애써서 살았다. 노력하는 재미를 알았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됐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매일 끼니를 차려주던 엄마의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깨쳤다. 아이들이 편히 사는 세상을 바랐고 선한 의지가 가득한 사회에서 발 딛고 살길 원했다. 내가 아니라 아이가 중심이 되니 대체로 순해지고 좋아하는 것이 많아졌다. 에게 잘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무심하고 무뚝뚝한 내 마음이 예뻐졌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어른이 되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무용해졌다, 나이 무관이라는 말은 40 이하를 말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쓴 내 자소서는 그냥 일기가 되었다. 밥벌이를 하고 1인분의 몫을 다하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다. 나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 공생하는 삶에 감사를 표한다. 진심이다.


오늘의 커피는 시나브로 아끼고 좋아하게 된 커피다. 늦은 오후에 마셔도 좋다. 잠을 걱정하는 사람도 마셔도 된다. 모닝커피를 마신 사람 또한 마셔도 된다. 흑설탕의 달콤함, 오렌지의 밝은 산미, 헤이즈 넛의 고소함, 코코넛의 풍미가 있다. 진하고 크림처럼 매끄럽다. 스팀 우유의 하얀 거품이 입가에 붙는 부드러움이 있다. 겉모습은 평범한데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사람을 닮았다. 독특한 향기도 매력적이지만 나른하게 가라앉는 쓴 맛이 사람을 붙잡는다. 인생의 바닥과 천정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좀 더 애써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말하는 커피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처럼 맛있는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