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경, 그에 대하여

에티오피아 시다모 구지 샤키소 허니

by 만델링

회사를 다니며 입에 풀칠하고 있다. 벌이의 지겨움을 근근이 이기고 있다. 26년, 같은 데 다닌다. 앞으로 이직 가능성 없다. 밖에서 조금 극진한 대우를 받는 지위에 올랐다. 어느 모임이든 환영받고(사실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직접 본 적 없다), 업무 수행 능력 평가에서 고점을 받는다. 젊은 직원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척한다. 실제로 일은 많이 하지 않고 서류에 서명하는 일은 더 많이 한다. 그리 늙지도 젊지도 않은 체형을 지녔으며 젊은 직원들에게 자신이 쌓아온 지혜를 나눠주고 잘난 척도 좀 하고 싶어 한다. 그래도 젊은이들과 갈등을 겪거나 평판에 상처 받거나 업무 외적인 일로 다투지는 않는다.


경은 유머를 모은다. 에버노트에 하나 둘 적는다. 가끔 꺼내 소리 내 읽는다. 연습 중이다. 회식 자리에서 근사하게 읊조릴 요량이지만 경의 유머가 통할 리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나는 안 웃기지만 큰 소리로 웃어준다. 예의상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다. 그리고 내 부모님으로부터 터득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상대방이 애써 노력하는 일에 칭찬을 아끼면 싸움이 된다는 것이다. 마음의 소리는 죽이고 날마다 꾸준히 하는 일이니 장차 빛날 것이라고 말해준다.


경은 동해야 할 날이 조금 더 남았다. 아득하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지쳤고, 삶은 가볍거나 사랑스럽지 않다. 사랑이 지겨울 때가 있다더니 경의 사랑은 오래 입어 느슨해진 니트 같다. 부지런하고 야무진 경이지만 휘청거리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시간이 아쉽고 준비된 것 없는 노후가 닥질까 두렵다. 그럼에도 요즘은 정말 모든 게 피곤해서 점잖게 조용히 다 그만둘까 고민 중이다.


퇴직 후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 한 의지로 세상을 바꿀 정치인이 있는지 뉴스를 즐긴다. 늘 유튜브를 끼고 살다 보니 벌써 자연인이 되었다. 욕이 넘치고 하고 싶은 것 많은 단계가 지나버려 어떻게 하면 호젓하게 지낼 수 있는지 연구한다. 이 싫어하는 것을 꼭 할 필요가 없는 때가 도래하길 기다린다.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는 시간을 꿈꾼다. 매일 면도하고 셔츠 입는 일만 하지 않아도 꽤 괜찮은 삶이라 여긴다. 다행스럽게도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하거나 길거리에다 음식을 토하는 일은 없어서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담배를 피워대는 것도 아니어서 위층 사람이 얼굴 붉힐 일도 없을 것이다. 노후는 쓰잘 데 없는 시시한 일을 하며 조용히 잔잔히 보내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커피는 상쾌한 한라봉이다. 탱글탱글한 시원함이 있다. 한결같이 평범한 일상,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마음에 짙은 초콜릿 향이 파고든다. 바삭한 가운데 촉촉함이 있다. 쌉쌀한 풍미에 마음이 순해진다. 한 잔 마시면 큭, 하는 쓴 맛에 삶의 빈 틈을 파고드는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한다. 희미한 걱정이라 부를까 한다. 어지러운 마음에 들어온 미래의 걱정이다. 걱정을 끌어다 할 필요는 없는데 걱정을 안고 산다. 경에게 준다. 깊은 우물 속에 앉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커피다. 문득 슬프고 때때로 눈물이 날 때 마시면 된다. 서로를 책임진다, 항상 곁에 있을 것이다, 오래된 사랑에게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