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같이 놀자

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티르티라 고요

by 만델링

가고 싶은 데가 있다. 젖과 꿀과 요가가 흐른다는 우붓. 따뜻하고 날마다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과일이 있는 아름다운 곳. 해외여행 금지령이 선포된 지 어언 두 해다. 예상치 못한 감염병으로 세계지도를 보며 일시불로 질러버린 세계여행 도전기를 읽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다이내믹하게 삶의 전환점을 찾은 사람들의 용기에 매번 감탄하며 나도 거듭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행이 지난 옷을 입고 다녀도 괜찮다. 내 나이쯤이면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말발굽을 닮은 금색 로고가 박힌 가방도 부럽지 않다. 필요할 때 커피 한 잔 값으로 잠시 빌려 쓸 수 있는 인맥은 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나라 곳곳을 누비다 온 사람들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부럽다. 어떻게 하면 그런 여행의 숙수가 될 수 있는지 연구와 고민을 거듭제곱으로 한다.


제안을 했다. 친한 사람들 네댓 차 한 대로 관광을 다녀보는 건 어떠냐고. 지금은 국내 관광만 하고 사람과 닿지 않게 거리를 둬야 하는 감염병이 소멸한 후에는 비행기 타고 이름도 복잡한 나라도 가보는 걸로 하고. 내 제안이 꽤 솔깃했나 보다. 그녀들은 시간과 건강, 약간의 금전적 여유가 있다. 나는 1종 대형운전면허 소지자이며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은 길 운전과 후진에 능하다. 그녀들은 단박에 알아들었다. 주 1회, 방문할 도시를 정한다. 미술관, 전시회, 수목원, 재래시장 등 주요 테마를 정한다. 출도착 시간을 정한다. 중간 경유지와 식사 메뉴를 정한다, 가 시간을 보낼 장소를 물색한다. 그림 같은 풍경은 중요하지 않다. 혼자 놀기에 지쳤고, 장거리 운전이 힘들어 먼 곳 가기 힘들었던 처지에 내 제안은 그녀들의 숨어있던 여행 본색을 깨웠다.

누군가가 되물었다.

- 우리 다른 조치 없이 그냥 함께 다녀도 돼?

- 운전자 보험만 있으면 될까?

- 돈을 받고 하는 사업이 아니니 상관없겠지...

으으응, 글쎄 난 모르겠다. 한 번은 될 것 같고 같은 방법으로 여러 번 다니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직업이 있나 찾아봐야겠다. 우리의 이야기는 호방하게 열렸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으로 닫혔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으로 노는 방법이 다르다. 우리도 그렇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고 집안일에서 얼마간 여유가 생기자 그동안 미뤘던 욕구가 스멀스멀 나온다. 이구동성 먼저 하고 싶은 건 하루 종일 남의 동네에서 놀기다. 최소 시속 100km 거리에서 놀고 싶단다.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우리끼리만 시시덕거리고 싶다는 뜻이다.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는다. 웃음 끝에 비장하게 한마디 흐른다. 놀아도 이성을 유혹하지는 말자! 뜬금없기는.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돈이 든다. 고작 커피 한 잔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일은 하지 말자고 말하는 홍이 때문에 우리는 함께 놀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오늘의 커피는 월이 많이 흘러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파도처럼 맞닥뜨릴 때 마시면 좋을 것이다. 누군가 반려동물 키워 볼래 하고 물으면 냉큼 정의 답이 나올 때도 어울린다. 외로움을 가만히 안아주는 커피다. 마음이 둥둥 여기저기 떠다닐 때, 누군가에게 자꾸 마음을 기대고 싶을 때도 맞춤하다. 혼자가 버거운 사람이 위로받는 커피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향이 최고다. 딸기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새콤달콤 신맛의 라임도 들었다. 카라멜 맛은 기본이다. 맑게 찰랑거리며 소곤소곤 어디론가 떨어지듯 날아오르듯 사랑에 빠지는 맛이라고 말한다. 먹고사는 일에 바빠 사랑할 시간도 여유도 없는 사람은 그냥 가만히 한 잔 마시면 된다. 대단한 무언가를 쌓지 못한 내 삶이 좀 괜찮아 보인다. 감사와 잔잔함이 밀려온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임을 느낀다. 거기에 친구가 곁에 있다면 그저 같이 놀면 된다. 익숙함이 켜켜이 쌓인 그녀들은 푹신한 매트리스 같은 안전장치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전단지 붙여 사람 모아서 차 한 대로 하는 관광은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어디다 물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