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아직 초급입니다만
볼리비아 프란시스코 힐라리
- 회원니~임~~ 코에 물 들어갔죠? 그게 아니고 왼팔 위에 왼쪽 귀를 딱 붙이셔야 합니다.
- 회, 원님! 제발 고개 들지 마시고 옆으로 3시 방향.
- 회원님, 회원님~ 제 말 들리시죠? 머리 앞쪽을 낮춰 수면에 머리를 기대세요. 그리고 발차기는 멈추시면 안 됩니다. 계속 부드럽게 움직이셔야 합니다.
- 회원님, 회원님, 회-원--님!! 킥판 잡고 왼팔부터, 오른팔을 돌릴 때 3시 방향 측면 호흡, 아시겠죠? 한 동작 한 동작 천천히 하시는 겁니다.
- 회원님, 회원님은 그.대.로. 재등록하시면 됩니다. 다른 회원님들은 사무실 가셔서 중급반으로 변경 신청하세요.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모두 가운데로 모여 손 모아 주세요. 화이팅~!!!
유월에 시작한 수영 초급 강습. 자유형 완성은커녕 측면 호흡도 실패다. 입으로 물이 들어간다. 호흡이 안 된다. 치과 가는 날을 빼고 열심히 출석했는데 주 2회 살랑살랑 다니는 여사님보다 진척이 없다. 타고난 감각이 없어서다. 마음을 비운다. 물 위에 떠 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성과로 여기기로 한다. 힘 빼고 팔랑거리면 쑥쑥 나간다는 여사님 말씀이 참 생경하다. 팔을 쭉 뻗어 힘껏 물을 밀라더니 힘 빼고 부드럽게 하란다. 담백하게 말하면 힘 빼기라는데 도대체 어찌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여하튼 승급자와 다시 또 초급자. 스무 명으로 시작된 강습반은 현재 열 넷이다. 그중 둘을 제외하고 7월부터 중급반이다.
새로운 배움은 힘들다. 노력하고 연습하는데 늘지 않는 것은 답답하다. 몸을 써서 배우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다. 나이 들었다고 쉽게 익힐 수 없다. 인정하고 넘어간다. 잘하지 못하는데도 재밌다, 그만둘 것 같지 않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까지 드는 건 무슨 까닭인지. 늦게라도 재밌는 것이 생겨서 기쁘다.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하는 운동이 될 것 같다.
오늘의 커피는 볼리비아 프란시스코 힐라리. 이름이 참 멋지다. 남아메리카 원두지만 테베레강 왼쪽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어느 골목길이 그려진다. 휘황찬란한 불빛, 복고풍 분위기가 떠오른다. 초코맛의 긴 여운. 사과의 산뜻한 신맛이 좋다. 운동 후 피로해지는 머리를 맑게 해 준다. 마시면 멍하던 머리가 또렷해진다. 차분한 심박동이 유지된다. 수축과 이완을 오가던 역동적인 맥박이 조용해진다. 들숨과 날숨이 얽혀 찡하던 콧속이 잠잠해진다. 분홍빛으로 윤기 나는 얼굴을 하고 살포시 웃으며 마신다. 평안한 여름밤으로 인도하는 커피다. 친하게 지내는 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마시자. 새로 시작한 운동과 공부, 일에 대해 들려주면서. 사그라진 꿈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